이사야서 10장: 인간의 악행과 하나님의 섭리

해설:

1절부터 4절까지는 앞 장에 나오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의 일부다. 여기서는 특별히 사회적 약자들(양민, 가난한 자들, 불쌍한 백성, 과부들과 고아들)을 억압하고 착취한 것에 대해 책망하신다.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들의 형편을 기준으로 그 사회의 정의도를 평가 하신다. 하나님은 부정과 불의를 일삼은 지도자들을 심퍈에 부치실 터인데, 그것이 심판의 전부는 아니다.   

5절부터 19절까지는 앗시리아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앗시리아는 주전 742년부터 701년까지 무서운 기세로 주변 민족들을 점령하며 제국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패망하고 남왕국 유다는 701년에 공격을 받아 심한 타격을 입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앗시리아를 “나의 진노의 몽둥이”(5절)로 사용하여 “경건하지 않은 민족”과 “나를 분노하게 한 백성”(6절)을 심판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신다. 산헤립 왕에게 정복 전쟁의 야망을 심어준 분은 하나님이시다(7절). 그렇다고 해서 그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이미 여러 나라들을 정복 하였기에 하늘 끝까지 교만해져 있다(8-10절). 그는 여세를 몰아 유다까지 점령하려 한다(11절).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다 이룬 후에 산헤립을 심판하실 것이다(12절).

산헤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날수를 헤아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이룬 모든 승리가 자신의 지혜와 능력에 의한 것인 줄로 착각하고 기고만장 해 있다(13-14절). 그는 일꾼의 손에 들린 도끼요 톱일 뿐인데, 나무를 쓰러뜨린 것이 자신인 줄로 착각한 것이다(15절). 하나님은 결국 그 교만에 대해 심판하실 것이다(16-19절).

20절부터 23절까지는 패망한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의 예언이다. “그 날”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날을 가리킨다. 앗시리아가 심판을 받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진실로 의지할 대상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20절).  그 때가 되면 심판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 올 것이다(21-22절). 심판은 되돌릴 수가 없다(23절). 

24절부터 27절까지는 앗시리아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앗시리아나 이집트 같은 강대국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다(24절). 하나님께서 그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25절). 그 옛날 미디안 사람들과 이집트 사람들을 치신 것처럼 앗시리아를 치셔서 유다의 고난을 벗겨주실 것이다(26-27절). 하지만 심판의 날이 오기 전까지 앗시리아는 준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당시 앗시리아는 남왕국 유다를 점령하기 위해 남하하고 있었다(28-32절). 유다는 이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멸망 당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만군의 주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이다(33-34절). 

묵상:

앗시리아의 마지막 왕 산헤립은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잔인하게 주변 민족들을 점령했습니다. 그는 자신 위에 아무도 없고, 주변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 조차도 자신에게는 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가 잠시 동안 절대 권력자로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내버려 두신 이유는 그의 죄악을 묵인하거나 승인 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고 또한 그의 악행을 통해 당신의 섭리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회개의 기회를 모두 소진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루고 나면 하나님은 그를 심판에 부치실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찌 저런 사람을 그대로 두고 보시나?”라는 질문을 합니다. 혹은 “하나님이 왜 저런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셨나?”라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산헤립을 “진노의 몽둥이”이로 사용하시고 나중에 그 몽둥이를 불에 태워 없애신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악행까지도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나서 그 사람의 죄악을 심판하십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인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의 구원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해서 유다의 죄가 용서 받을 수는 없다. 하나님은 유다의 배반 행위를 내버려 두셨지만, 애시당초 그런 죄를 마음에 품은 것은 유다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선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행과 악행, 실수와 사고를 엮어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시편 139편에서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가 그분의 다스림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의롭고 선하게 살아서 그분의 계획에 쓰임 받느냐 아니면 불의하고 악하게 사는 것으로 쓰임 받느냐 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살면 때로 타인의 악행으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예기지 않은 사고로 인해 고난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산헤립에게 하신 것처럼 그 악행과 사고를 바로 잡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10장: 인간의 악행과 하나님의 섭리”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두렵습니다. 인간의 악함과 연약함을 심판하시는 주님의 방법과 결과가 두렵습니다. 주의 은혜 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것과,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며 심판을 유예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게 종이 한 장인 듯해서 두렵습니다. 언제까지고 좋을 줄로 여기는 미련함이 무섭습니다. 주님의 심판은 왕들에게만 내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크기에 따라 심판이 달라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나라 전체 백성 모두가 심판의 고통을 같이 받습니다. 각 사람대로 그리고 공동으로 주의 진노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말할 때 흔히 ‘모든 것이 주의 은혜’였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모든 것, 여기까지 온 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간 속에서 경험한 구체적인 은혜의 기억이 있습니다. 주께서 함께 하신다, 주께서 나를 아신다고 깨닫던 때의 구체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침묵이나 진노에 대해서도 막연한 두려움을 지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깨달음까지 가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소서’하는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겠지만 나는 나의 죄와 허물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덤덤하게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고와 예언을 듣고, 마헬살랄하스바스 문자를 보고 동요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회개해야 할 것을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침묵을 나의 시끄러움으로 덮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나를 살피고 나의 주변을 돌아보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은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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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즐거운때나 슬픈때나 편안한때나 힘들때나 항상 주님앞에 있는것을 기억하고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습관을 간구합니다. 주님을 바로 제대로 알고 내자신을 바로 제대로 아는 분별력을 원합니다.사랑과 은혜의 주님 채찍도 감내하며 지팡이와 막대기로 선한목자가 인도하시는 거룩한 길이 천국의 길인것을 알고 새하늘과 새땅을 기리며 누리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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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009 이사야 10장

    <남은 자들>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과 야곱 겨레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다시는 그들을 친 자를 의뢰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인 주님만을 진심으로 의지할 것이다.
    남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고 하여도, 그들 가운데서 오직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사10:20-22)

    하나님은 앗수르를 사용하셔서 ‘경건하지 않은 민족’, ‘불순종한 민족’인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심판하신다. 이사야 말씀 한장 한장을 묵상할 때, 보이는 패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노와 회복의 말씀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사야 10장에서도 심판의 말씀으로 시작하지만, 후반부에서는 남은자들을 구원하시는 회복의 말씀이 나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 목적이 멸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들이 죄를 자복하고 돌아오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다림과 인내, 사랑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묵상 본문 이사야 10장20절에서 22절에 보면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만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그들을 치러 온 자들을 의지하였다(20절)고 언급한다. 그들을 멸망시키러 오는 두려움의 존재인 앗수를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들에게 약속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친 자자들을 의지하였다.

    두려움이 몰려올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다보면 하나님이 아닌 두려움의 대상을 의지하게 된다. 즉,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나를 두렵게 하는 것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온지 어언 두달이 지나간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내 안에 의식하는 무엇인가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인종차별’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로 내가 누군가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 아시안의 비중이 적다는 것과 코로나 이후 미국내에서 아시안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점, 그리고 나의 영어실력의 부족함으로 소통되지 않는 불편함들이 미국인들로 부터 내가 차별받을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마음이 내면안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괜히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고, 혹여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차별받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고, 차별이 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문제는 내가 미국에 사는한 평생 씨름해야 하는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제 앞에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니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인종차별’에 대한 이슈였지만, 나의 평안함을 빼앗고 경직되게 하는 요소는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안에 이러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잡고 있으니 인종차별을 피하기 위해 굳이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아이들에게는 밖에 다닐 때 한국말로 크게 떠들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나의 이러한 행동은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아시안으로서 차별받을 것을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해서 애초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나만의 해결 방법이었다.

    그러나 오늘 묵상을 통해, 나의 이러한 행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을 의지하는 것임을 발견하게 하셨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을 미리 예단하고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있다. 지금 나의 행동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부터 나온 것인지 점검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을 친 자들을 의뢰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인 주님만을 진심으로 의지하는 자.”(사10:20)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심판 때에도 구원받을 수 있는 ‘남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 나의 힘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마지막 때에 ‘남은 자’로 살게 될 것이다.

    <시퍈46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져도,
    바닷물이 솟아나고 넘치고, 산이 흔들리는 재난의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시고, 힘이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 되시기 때문이라는 시편의 말씀이 오늘 유독 마음에 와닿는다.
    다시한번 나의 힘이시고, 능력이 되시는 분. 유일한 소망이자 해답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의 삶을 정렬시킨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피할길을 내시고, 방법을 생각나게 하시며, 돕는 손길들을 일으키셔서 보호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을 신뢰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시 1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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