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편: 가짜 뉴스의 시대에 

해설:

11편에서 다윗은 원수들이 발호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실 때까지 믿고 기다리겠다고 고백했다. 12편에서는 악이 편만한 사회상에 대해 묘사하며 속히 구원해 달라고 기도한다. 

다윗은 “주님, 도와주십시오”(1절)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한다. 그가 이 기도에서 문제 삼고 있는 사회악은 거짓이다. “신실한”은 “믿을만한”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두 마음”(2절)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이익을 따라 거짓말을 일삼는다. 그들은 거짓말로 누구든지 속여 넘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4절). 하지만 그것은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다(3절). 거짓말과 아첨하는 말은 그 누구보다도 “가련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5절)에게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악에 대해 묘사한 다음, 다윗은 하나님을 묵상한다. 악한 자들에게서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그분의 말씀은 순도 백퍼센트의 진실이다(6절). 그 믿음에 근거하여 그는 하나님께 간구한다(7절). 지금 그는 그분의 도우심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7절).

묵상:

이 시편에서 다윗은 3천 년도 지난 과거의 사회 상황을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묘사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3천 년 전과 동일하게 “신실한 사람도 끊어지고, 진실한 사람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1절)는 것입니다. 

마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할 언어가 마음을 숨기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명백한 악에 대해서도 억지 논리로 변호하고, 만천하에 드러난 사실도 공개적으로 부정합니다. 가짜 뉴스와 가짜 영상이 만들어져 유포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신력 있는 매체를 외면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개인 유투브 방송을 청취하며 스스로를 개스 라이팅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관에 함몰되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악마화 하고 제거하려 합니다. 거짓말로 불의를 옹호하면서도 얼굴 붉히지 않는 능력 즉 “후안무치”가 오늘의 미덕이 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 시편 마지막에서 토로한 그대로입니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8절, 개역개정). 

그래서 이 시편을 읽고 기도하는 마음이 절실 해지고 간절 해집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음이 깨끗한 사람”(마 5:8)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진실하고 신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후안무치”의 악덕을 경계하며 “여린 마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절대 다수가 비열함을 택할 때 고결함을 택하기를 기도합니다.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뛸 때 잠잠히 의인들 가운데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서 다시금 진실과 정의가 입을 맞추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Comments

2 responses to “시편 12편: 가짜 뉴스의 시대에 ”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세월이 천, 이천, 삼천 년이 지나도 흙탕물 같은 인간 사회의 추함은 여전한가 봅니다. 어느 사람이 지옥이라는 데를 구경갔더니 사람들이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고통을 받는게 아니라 물 위에 고개를 내놓고 멀뚱멀뚱 있어서 ‘지옥이라고 해도 살 만 한가 보다’ 했더니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나고 ‘휴식 끝! 다시 잠수!!’ 명령이 떨어졌다지요, 오물탕 속에 천 년 동안 잠수하고 십분간 휴식하는 지옥의 형벌 광경이었다는겁니다.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이 그 농담 속 지옥의 광경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귐의 소리’에서 시편을 묵상하는게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씀을 읽다보면 구체적인 뉴스 기사가 떠오릅니다. 시편과 현실이 완전히 싱크 sync 된 느낌입니다. 상상력을 쓰지 않아도 시인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문학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한 표현이라고 넘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아프고 슬픕니다. 인간의 역사 가운데 어둡지 않았던 시대는 없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그러하듯 좋은 날과 힘든 때가 같이 찾아 옵니다. 삼한사온의 법칙도 안 맞고, 질서 있게 차례를 지켜 오지도 않습니다. 좋은 시간은 짧게 지나가 버리고 괴로운 밤은 한없이 길게만 느껴집니다. 이 시대도 그럴까요. 언제가는 ‘좋은 것도’ 있었다고 기억하게 될까요. 헨델의 메시야 싱얼롱에 같이 갔던 권사님이 그럽니다. “그 옛날에 이렇게 멋있는 음악을 만들었다는게 너무 놀랍지 않아? 천재야 천재. 옛날 사람들이 더 똑똑했던것 같아.” 백퍼센트 동의하는 말입니다. 또 한편으론, ‘천재’의 업적 만 세월의 부식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남는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오고 오는 세대까지 좋은 영향을 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만 보존되는 일종의 법칙이 작용하는건지도 모릅니다. 처음 모습 그대로로 세월을 이겨내는 것은 아닙니다. 헨델의 메시야도 시대를 지나며 연주기법이나 원곡의 해석 면에서 수정되었습니다. 악기 자체도 변화했습니다. 시대적인 요청 (수요)이 새로운 해석 (공급)을 가능하게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대로 있지는 않겠지요. 천재의 작품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후지고 허접하고, 산만하고 가볍고, 빈약하고 얄팍한 가짜 투성이들을 우리 스스로 거부하고 치우는 때가 오겠지요.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서 보는 눈, 생명의 뜻을 진지하고 고귀하게 듣는 귀가 생기면 이딴 거짓 세상의 오물들을 걷어내는 힘과 의지도 생기겠지요. 어제 해설에서 배웠듯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악을 거부하는 우리의 의지가 강해야 우리의 일솜씨도 좋아지고 매서워집니다. 가짜를 거부하기를 원합니다. 가짜에 마음을 주지 않기를 결심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의 진리와 빛에 집중하도록 성령님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주님. 흙탕물 속에서도 당신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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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희들에게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가짜 뉴스가 진실같이 느껴집니다. 사회에선 물론이고 심지어는 교인들가운데서 가족들 가운데서도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형편입니다. 세상에 믿을놈 하나도 없다는 옛말이 현실입니다. 오직 성경만 꼭붙잡고 묵상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올때까지 아니면 마지막 숨쉴때까지 영원한 본향을 향해 우직하게 걷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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