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편: 가진 것이 올무가 되지 않도록

해설:

2편은 1편과 같은 ‘도입 시편’이다. 1편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묵상의 삶을 격려하고 있다면, 2편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순종의 삶을 격려한다. 

1편에서 시인은 “악인”에 대해 말하는데, 2편에서는 악한 나라들에 대해 말한다. 뭇 나라와 뭇 민족 그리고 모든 임금들과 통치자들이 “주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거역하면서 반역을 꾀한다(1-3절). “기름 부음을 받은 이”(메시아)는 주님에 의해 왕으로 세움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보통 명사 메시아는 나중에 고유 명사가 되어 하나님께서 보내실 영원한 구원자의 이름이 되었다.  

왕들과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에 취하여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을 것처럼 교만해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실 때면 가소롭기 짝이 없다(4절). 참다 못한 주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시며 당신이 세운 왕을 내세우신다(5-6절). 그러자 기름 부음 받은 왕이 나와서 말한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뭇 나라를 점령하도록 허락하셨다고 선언한다(7-9절). 

이 선언에 근거하여 시인은 세상의 모든 왕들에게 경고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과 그의 아들을 섬기고 찬양하라고 명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분의 진노하심이 그들에게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로 피한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을 것이다(10-12절).

묵상:

시편 1편이 일반 백성에게 주어진 권면이라면, 2편은 권력자들에게 주어진 권면입니다. 1편에서 시인은 하나님에게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악인”, “죄인” 그리고 “오만한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불신앙은 교만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악을 일삼고 살아갑니다. 

2편에서는 임금들과 통치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등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힘(정치 권력, 군사력, 경제적 힘 등)이 주어지면 그의 죄악은 더욱 커집니다. 때로는 악한 권력자들이 연대하여 자신의 권력과 권세를 영구화 하려 합니다. 1편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런 왕들은 “악한 왕”, “죄 된 왕”, “오만한 왕”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그들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분은 당신이 기름부어 세운 사람을 통해 그들을 징벌하실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11절)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종말이 “지체없이”(12절) 이를 것입니다.  

정치 권력을 가지고 오만을 부리고 있는 이들에게 이 말씀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거대한 부를 일구고 그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이들이 말씀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도 혹시나 작은 것으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을까, 삼가 돌아 봅니다. 가진 것이 재앙의 올무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시편 2편: 가진 것이 올무가 되지 않도록”

  1. 시편이 내 개인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기도가 삶으로 이어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든 생각과 언행과 삶과 몸과 재물 모든것을 주님 발아래 부럽지않게 내려놓는 용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모든 왕들과 권세자들이 조롱하고 비난할지라도 진정한 왕의 왕 만유의주가 오셨고 또 오시는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며 잠시의 고난과 핍박을 감수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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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인정한다는 것은 수용한다, 동의한다, 순종한다, 깨닫는다,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 삶의 모든 부분에 미치는 그분의 권능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2편에서 이사야서 끝부분에서 느끼던 하나님의 마음을 또 보는 듯 합니다. 시편이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들의 고백을 담은 책이요 바빌론 포로시대 이후에 최종 편집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감안하면 이사야서와 시편이 중첩되는 것 같은 느낌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살면서 성경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알고 싶을 때, 지금 내게 필요한 말씀을 알고자 할 때 성경을 엽니다. 그랬을 때 특별하게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고, 별 깨달음 없이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 경험을 ‘해석’하는 능력도 성령의 인도요 은혜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성경말씀을 만나도 우리에게 다 같은 양식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권력자를 향한 권면이지만 해설에서 보듯 보통 사람인 우리도 가진 것이 올무가 되지 않도록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가진 것이라고 해서 부, 명예, 권력 같이 많을수록 좋은 ‘재산’ 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겁니다. 내게 있는 것 -내가 만들어 이룩한 것과 처음부터 내게 있었던 나의 고유한 것들을 합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언제라도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애써 가꾼 재산 (혹은 물려받은 큰 재산), 정성들여 만든 사회관계, 갖고 태어난 신체 조건, 재능…인생에 플러스가 된다고 여긴 것들이 마이너스가 되어버리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잔인한 트릭 때문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 떨리는 마음 (11절)을 잃어버린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교회가 필요한 이유가 이것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을 해석하고 은혜를 분별하는 일을 교회 안에서 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나 특정 교인이 해 줄 것이라서 교회로 가는 것이 이라는 뜻이 아니라 교회생활의 원칙,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제 1원칙은 자기부정 (=하나님 인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는 ‘타자를 위한 삶’을 배우는 곳입니다. 권력자들의 오만은 타자를 볼 줄 모르는 데서 옵니다. 나 좋을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나 편한대로 은혜를 누리는 어리석음을 버리기를 원합니다. 내가 나의 올무가 될까봐 교회를 주셨는가 봅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저마다 산속으로 들어가 도인이 되고 신선이 되지 않은 까닭이 그래서인가 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지혜를 주소서. 매일 주님의 권능을 찬양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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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ully39f6bbe2e9 Avatar
    fully39f6bbe2e9

    241216 시편2

    “그러므로 이제, 왕들아, 지혜롭게 행동하여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경고하는 이 말을 받아들여라.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시편‬ ‭2‬:‭10‬-‭11‬ )

    나이가 먹을수록 서글퍼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멘토’가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앞서 인생을 살아가신 부모님, 선생님, 영향력 있는 권위자들이 나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조언도 해주시고 방향을 잡아주셨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40이 넘어가니 누군가 작정하고 쓴소리를 해주는 어른이 내 주변에 없다는 것이 한편으론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선택할 결정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책임이 반드시 따르는 일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살아온 시간만큼의 지혜가 쌓여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경우 독불장군처럼 누구의 소리도 듣지 않고 자신이 옳은대로 행하는 것을 종종 본다. 나 역시도 나의 고집과 그동안 경험한 것을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문제는 이것에 대한 파급력이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결혼을 하면 배우자에게, 부모가 되면 자녀에게, 한 그룹의 리더이면 그 공동체에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수장이면 그 나라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준다. 그리고 내가 속한 그 곳에 운명을 좌우할 만큼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오늘 시편2편 말씀에서는 세상의 군왕들에게 이 메세지를 전한다.
    악한 길로 가는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행동해야 하는데,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윤리적인 가치관을 갖고, 양심적으로 행동을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자정작용을 통해 잘못된 길로 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있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 본래 죄인인 인간은 이것에 한계성을 갖게 된다. 즉, 부던히 노력하여 어떠한 불이익에도 선한 양심을 지키려는 신념이 없이는 누구나 도덕적으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 보니 권력자들은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양심적 유혹을 받게 되고, 권력을 유지하게 위한 더 악랄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최고의 권력자는 나야.”
    “그러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이것으로 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이 비극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길은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를 인식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내가 제일 높은 자리에 서있는 것이 아닌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모든 비극을 끊는 시작이다. 그리고 이것의 적극적 행동은 <하나님을 찬양> 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의 왕으로 군림하며,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 생명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수님은 길을 잃은 양처럼 우리를 보신다. 누구보다 멘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그분은 단순한 조언자가 아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다.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사셨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만 영광받으시도록 하셨다.

    가장 지혜로운 길, 세상의 평화와 안녕의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며, 경외함으로 예배하는 것.

    오늘 나의 삶에 찾아오신 주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오직 주님 한 분만 경외함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고 싶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와 이 땅의 수많은 나라에 있는 지도자들이 왕의 자리에서 그 자리가 영원한 것처럼 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만 경외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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