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66장: 주의 영광

해설:

1절부터 6절에서 이사야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주이심을 천명하신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소유하시는 하나님은 당신의 집이 아니라  경건한 사람을 찾으신다(1-2절). 제사장들은 가증한 우상을 섬기면서도 제사 의식을 행한다. 그것은 거룩한 제사가 아니라 역겨운 학살 행위다(3절).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심판하실 것이다(4절). 하지만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5절)을 지켜 주실 것이다. 주님은 그들을 억압하는 대적들을 예루살렘으로부터 몰아내실 것이다(6절).

7절부터 17절까지는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예언이다. 이 예언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어머니’에 비유하신다. 임신한 여인이 진통이 오기도 전에 해산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원수들에게 짓밟힌 예루살렘을 속히 회복시키실 것이다(7-9절). 그 때가 되면 그들은 예루살렘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어머니처럼 그들을 위로해 주실 것이다(10-14절). 하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은 심판이고 재앙이 된다(15-17절).

18절부터 24절까지는 예루살렘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알려질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시는 날, 모든 민족이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18-19절), 세상 모든 나라들이 예물을 들고 성전으로 모여들 것이고(20절), 주님은 이방 민족들을 가운데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실 것이다(21절). 구원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 것이며(22-23절), 심판 받은 사람들의 고통은 영원할 것이다(24절). 

묵상:

믿는 이들이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주가 영광을 드러내어 너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우리가 한 번 볼 수 있게 하여 보아라”(5절)고 말하며 조롱합니다. 그들은, 믿는 이들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믿는 이들 자신들도 때로 그런 의문과 회의에 사로잡힙니다. 미혹하는 자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듯, 고난에 처할 때 믿는 이들의 가장 큰 도전은 외부로부터 오는 조롱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회의입니다. 그러한 조롱과 회의와 싸우며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믿음 즉 신실함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2절)고 하십니다. 주님은 고난 중에도 주님의 뜻을 따라 신실하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을 회복시키셔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 없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이며, 당신을 믿는 이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구원의 빛이 너에게 비치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60:1)고 말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66장: 주의 영광”

  1. 주님의 얼굴과 영광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습니다만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주님을 대면하는것은 죽는것인것을 깨닫게하신 성령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성도들과 교회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세상에 있습니다만 십자가의 은혜를 꼭 붙잡고 주님의 지성소(교회)에 들어갑니다. 영생과 천국을 미리 맛보며 오시는 평화의 왕을 세상에 알리는 대림절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고난의 문제는 신도에게 늘 도전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좋으면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 아닌 믿음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고난에 대한 보험 정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66장에서 하나님은 헛된 제사를 싫어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하시고 이어서 제사를 위해 짐승을 잡아 올리는 이들의 가증스러움을 지적하십니다. 자기 멋대로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서 백날 올리는 제사가 역겹다는 말씀입니다. 제사는, 예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간의 경배 행위입니다. 감사와 탄원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무속에서 굿을 하는 이들은 빌고 또 빕니다.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빕니다. 하늘 (신)이 노여워할까봐 걱정하며 화를 푸시라고 빕니다. 음식이든 제물이든 바치면서 노여움을 풀고 떠나시라고 빕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무속의 제사와 다른 부분은 감사와 찬양인지도 모릅니다. 고난의 유무와 관계없이, 상황이 어떻든,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예배를 올리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대접’하는 일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교회 장로님의 고된 삶을 생각하며 우리의 인생의 가치가 무엇일까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인생 이야기가 그분의 삶에 국한되고, 그의 시간이 다할 때 그의 스토리 또한 끝나는 것이라면 이상이나 꿈, 완전이나 영원과 같이 인간의 세계에선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염원하고 추구할 필요 자체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지도, 하나님을 생각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지만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새 예루살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신자에게 이 부분이 도전이요 과제입니다. 장로님처럼 아버지의 능력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집안에서 자란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의 큰 오빠는 교회 장로님의 스토리와 시작은 같으나 현재 모습은 아주 많이 다른 경우입니다. 친구의 오빠도 아버지의 재산을 믿고 청년 시절에 자기 사업을 벌렸습니다. 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망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경제 감각이 남다르게 뛰어난 분이고, 운까지도 좋았는지 하는 일마다 잘 되어 당신 가족은 물론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을 다 서울로 불러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분입니다. 친구 말이 큰 오빠가 첫사업에 실패를 하자 아버지는 오빠한테 ‘너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저 내가 주는 돈이나 잘 관리하고 맡기는 재산만 잘 간직하면 된다. 넌 사업 할 줄 모른다. 할 생각을 아예 말아라.’ 이런 취지의 말씀을 했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거의 백 살이 되실 때까지 사시면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경제활동을 하셨습니다. 아들 셋과 딸 둘에게 큰 재산을 남기시고 가셨는데 친구의 큰 오빠는 전통적인 유산 분배법과 아버지의 특별한 배려로 가장 큰 몫 (동생들 생각엔 재산의 거의 전부를)을 물려 받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큰 오빠가 참 대단했다 싶었습니다. 처음 하는 사업에 실패했다고 그대로 손을 떼는 일이 말처럼 쉽겠습니까. 재력이 있으니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연구하고 실수를 잘 복기한 뒤에 새로운 결심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무 것도 하지 말란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쉬웠을 리 없습니다. 아버지로서, 장남으로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요…친구의 오빠도 교회 장로님과 연세가 비슷합니다. 인생의 마무리에 관심을 갖는 시절을 맞이했습니다. 친구 오빠의 스토리는 장로님의 스토리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오빠가 신앙 생활을 하는지 나는 잘 모릅니다. 경제적인 고난이 없었으니 남보다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다 잘못되어 실망과 고통을 겪는 세월 속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 그래도 괜찮은 것에 감사하며 ‘없는 듯’ 살았던 세월 속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믿습니다. 고난이 있고 없고를 감사의 기준으로 삼으면 예배하는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으로 살려면 하나님께 맡기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는 날 (13절)까지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 안에 새 영을 부어 주시고 새로운 존재로 지어 주소서. 주님을 사랑하며 찬양하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Like

  3. fully39f6bbe2e9 Avatar
    fully39f6bbe2e9

    241213 이사야6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 받침대다. 그러니 너희가 어떻게 내가 살 집을 짓겠으며, 어느 곳에다가 나를 쉬게 하겠느냐?” 주님의 말씀이시다.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며,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이사야서‬ ‭66‬:‭1‬-‭2‬ )

    이사야서 묵상이 오늘도 끝이 난다. 66장이나 되는 이사야서를 묵상하면서 보게된 공통점은 진노와 심판 예언과 더불어 회복을 말씀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인 인간을 멸절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예언을 통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뼈아픈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믿기지 않은 현실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을만큼 몰입이 되어 있고, 기도하면서도 심신이 지쳐감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땅의 모든 상황이 하나님 손에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즉, 상황은 가슴아프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민국이 있고,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이 땅을 이끄실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시고 만든 백성이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때가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속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내가 해야 할 것은 이사야 66장 2절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 겸손한 사람
    • 회개하는 사람
    •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나와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내 개인의 죄 뿐만 아니라 위정자들의 행악질들이 나의 죄인 것처럼 여기며 대신 회개하는 것. 그리고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경외감으로 주님 앞에 순복하는 것.
    하나님은 이런 자를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렇게하는 것이 이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이다.

    다시한번 높아진 마음을 주님 앞에 꺽는다. 그렇게 꺽어질 때,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소망의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 ‭2‬:‭9‬-‭10‬ )

    내가 온전해 지는 길은-
    대한민국과 온 나라와 열방이 온전하여 지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아는 것이다.

    이사야 전체를 통해 하나님 앞에 마음을 깨드리고 순복하는 일이야 말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길임을 배운다. 그리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자체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임을 깨닫는다.
    놀라우신 주님. 찬양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합니다!

    이사야서 묵상을 기억하며, 매일 주님과 더 깊은 사귐 가운데 초대해주신 주님께 감사한다.

    Like

Leave a reply to fully39f6bbe2e9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