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64장: 우리가 기댈 언덕

해설:

64장은 65장 15절 이하에 나오는 기도의 연장이다. 기도자는 이방 나라들에게 주님의 능력을 떨쳐 달라고 구한다(1-2절). 그는 출애굽 사건과 시내산 사건을 회상하면서(3-4절) 주님은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과, 주님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5절)라고 고백한다. 그 기준에서 보면 유다 백성이 심판을 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6-7절).  

기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가 구원을 호소하는 유일한 근거는 주님이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요 아버지라는 사실이다(8절). 잘못을 저지른 자녀가 부모의 사랑에 호소하는 것처럼, 기도자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용서와 구원을 간구한다(9절). 기도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광야와 같이 되었고 성전이 황폐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린다(10-11절). 형편이 이러하니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12절).

묵상:

이사야는 유다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 진리와 정의와 공의의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유다 백성은 거짓과 불의와 부정의 열매를 드렸습니다. 따라서 그는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두 가지 근거에서 구원을 호소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입니다. 그분은 유다 백성을 지으신 분이고 낳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도자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유다 백성이 처한 참담한 상황입니다.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이제 충분한 대가를 치렀으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기댈 것은 오직 그분의 사랑과 은혜 뿐입니다. 그분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도록 힘쓰지만,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서게 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 설 때는 항상 부족함을 자각하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의지할 뿐입니다. 절대 완전의 하나님 앞에서 절대 부정의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의 사랑과 자비 뿐입니다.

은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 은혜를 가볍게 여깁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방종과 타락의 기회로 삼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제대로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에 사로잡힙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거룩하고 의롭게 살려고 힘쓰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쌓는 의는 하나님 앞에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Comments

2 responses to “이사야서 64장: 우리가 기댈 언덕”

  1. 세상에서 자랑할것이 하나도없는 더럽고 악취가나는 존재이지만 온세상의 죄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십자가외에는 다른길이 없기때문입니다. 죄악이 팽배한 세상에 살고있지만 만와의 왕 만유의 주님으로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권세와 영광에 싸여서 오시는 메시야 예수님을 소망으로 기쁘게사는 삶을 세상에 보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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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사야의 간절한 기도가 우리를 위한 기도로 들립니다. 이 시대 이 지구 곳곳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형편을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 하는 기도로 들립니다. 12월이 되면서 한국은 계엄선포와 계엄 해제의 숨가쁜 상황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12월 8일에는 시리아의 독재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아랍의 봄’을 꿈꾸며 일어난 민중봉기는 수백만명의 사상자와 난민이 뿌린 피 속에서 13년이 걸려 일단락을 맺었습니다. 예수의 무리를 찾아내려고 걸음을 재촉하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쓰러진 데가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이제는 그곳이 새나라를 세우는 일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인종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서로 반목하고 대치하는 여러 집단들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구상하며 협력해 나갈지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기도는 한국 국민의 기도이기도 하고 시리아인들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전쟁 속에 놓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의 호소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탄원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기도자는 하나님께 오시기를 청합니다. ‘하늘을 가르고 땅으로 오시면’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종말의 때를 그리는 것 같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구원의 때이니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삶과 세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도자는 세상의 종말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롭게 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탄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에 기대는 자의 탄원입니다. 종말일지라도, 시작일지라도 오직 주님의 자비 만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독재가 끝나고 새나라가 오는 때, 한 정부가 물러가고 새 정권이 들어서는 때,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는 때…주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봄을 바랬으나 겨울보다 더 추운 날들이 몰려올 때 주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살기를 원했으나, 일어나기를 바랬으나, 그만 두기를 바랬으나…원한 것은 오지 않고 원치 않는 것은 계속되는 바로 그 때에 주님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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