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62장: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

해설:

1절부터 5절까지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대한 구원을 완성 하시기까지 “잠잠하지 않겠고” “쉬지 않겠다”(1절)고 다짐하십니다. 여기서의 “나”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너”는 예루살렘(유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온전히 회복되기까지 쉬지 않으신다. 그 때가 되면 이방 나라들이 시온의 영광을 볼 것이며, 유다는 주님께서 주신 “새 이름”(2절)으로 불릴 것이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주님 손에 들려 있는 아름다운 면류관”이요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3절)으로 만드실 것이다. “버림받은 아내”와 같은 신세였던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내로 회복될 것이다(4-5절). 

6절부터 9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 하기를 쉬지 말라고 권한다. 성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밤이나 낮이나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6절).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는 말은 수사적 표현이다.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 늘 기억할 것은 유다 백성이다. 또한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세상에서 높임 받을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7절)고 강조한다.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은 수사적 표현이다. 1-5절에서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기까지 쉬지 않겠다고 하셨다. 따라서 쉬지 못하게 할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끝까지 믿고 의지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다시는 이방 사람들에게 침량 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8-9절). 

10절부터 12절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행하실 것을 믿고 그 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준비하라는 명령이다. 포로로 잡혀 갔던 사람들이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길을 닦고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리라고 한다(10절). 주님께서 포로들을 데리고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11절).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요 “주님께서 속량하신 백성”이라고 부를 것이고,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이라고 부를 것이다(12절). 

묵상:

이사야는 유다 백성에게,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늘 주님께 상기시켜 드리라고 말합니다(6절).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7절)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여 “하나님으로 일하시게 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지치도록 몰아부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능력자”는 목청이 쉬도록 하나님을 들볶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로써 하나님의 뜻을 꺽은 “기도의 무용담”이 은혜로운 간증으로 유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하라”는 말도, “하나님으로 잊지 말도록 상기시켜 드리리”는 말도 수사적 표현입니다. 그것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잊으실 리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항상 일하십니다. 두 가지의 수사적 표현은 기도하기를 쉬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게 일하시는 하나님에게 눈 뜨고 그분께 의지하려는 노력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몰아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에 눈 뜨고 그분의 섭리를 따라 사는 일을 멈추지 않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눅 18:1-8)를 통해 동일한 교훈을 전하십니다. 이 비유를, 하나님이 항복할 때까지 기도로 들볶으라고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재판관은 의롭지 못하여 과부의 억울한 사정을 알면서도 모른체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우리의 딱한 사정을 보고 모른체 하지 않으십니다. 억울한 상황에 처하여 기도 하기를 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신다는 믿음을 붙들려는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강짜에 지쳐서 손 드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께 대한 우리의 신실한 믿음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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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이사야서 62장: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

  1. 예루살렘을 내친족들과 교회와 더나아가서 나라를 예루살렘으로 이해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멀리떠났던 친족들 힘들었던 교회 형편 혼란한 모국과 온세상을 향하여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때가되면 떠났던 친족들이 돌아오고 고난에 처해있는 교인들이 회복되고 새나라와 새땅의 약속을 믿고 감사하며 간절히기도하는 사귐의소리 식구 모두가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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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 하나님께 매달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조르고 졸라 응답을 받아 내는 것이라고 믿는 사모님이 우리 교회에 계십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해서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간절히 꾸준히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분이 젊었을 때 집을 사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기도해 집을 샀는데 이게 별로 좋은 결정이 아니었는지 집으로 인해 여러 문제가 생겨서 마음 고생을 하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곤란을 겪게 되어 또 하나님 앞에 눈물로 나갔답니다. 왜 말리시지 않았냐고 기도했더니 ‘니가 하도 집 사달라고 지x을 해서 들어주었다’고 답을 해 주셨답니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어 집을 팔고 고민에서 풀려났답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와 흡사합니다만 사모님의 이런 ‘기도 스타일’이 불편하고 따라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또 능력도 안되는 나는 될 수 있으면 사모님과 길게 이야기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그분이 오랜만이라며 내 옆에 앉으셨습니다. 테이블에 먼저 앉아 있던 이들과 백내장 녹내장 수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사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과 검진을 하니 안압이 높다고 안약을 줬는데 좋아지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안약을 넣을 때마다 ‘하나님, 장님도 고쳐 주셨는데 이까짓 안압 하나 못 고치십니까. 낫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하고 기도했더니 안압이 내려가 정상이 되었으니 수술이 필요 없다고 의사가 말했답니다. 나는 ‘사모님, 복 받으셨네요. 다행이예요 안압이 내려가서.’ 말했습니다. 사모님이 듣고 싶어할 말을 한 것이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지만 그분의 굳건한 믿음을 흔들어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요즘엔 우리의 믿음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믿음의 표현이 다른 것인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주님께 간구하고 은혜를 (응답을) 경험합니다. 집을 사고 싶어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기회가 오면 이게 하나님의 답이구나 확신하며 계약하는 사람이 있고, 이유가 뭐든 그 때 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약으로 안압을 다스릴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은거지만 나처럼 수술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아가 나처럼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해도 본인은 전에 없던 불편을 겪어 실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들이 수술하자고 하는게 다른 생각이 있어서라는 시니컬한 결론이 나오는 현실도 문제지만, 매사 자기가 바라는 결과를 놓고 하나님의 뜻을 적용하면 내가 하나님인거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잘 되면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는거고, 잘 안되면 하나님이 덜 사랑하시는걸까요. 아닐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 못보는 사람은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냐고 물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 –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을 위해서 그리 된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능력을 걸고 맹세하신 (8절) 일은 평강과 공의가 이루어지는 하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룰 메시야가 오신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헵시바가 되고 뿔라가 되는 (4절) 그 날이 오기까지 하나님이 일하실테니 우리도 일하라는 명령이며 초대라고 생각합니다. 초자연적인 기도의 능력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내 경험과 머리로 해석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는 세상은 정말 허술하고 작고 멋없는 세상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dwell) 삶의 자리에선 경탄할 만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경탄, 신비, 아름다움, 매혹…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도가 그분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만지고 지나가시면 내 눈이 잠깐 그분의 영광을, 초자연적인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 잠깐이 늘 지속되기를 바래서 기도하는 겁니다. 그분의 영광을 또 보려고, 늘 보려고 기도하는 겁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부족하고 부실하고 허술하고 연약한 우리의 삶을 닮은 아기로 오시는 주님.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시고 성화하신 십자가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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