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61장: 희년의 개인적 실현과 사회적 실현

해설:

1절부터 3절까지는 ‘기름 부음 받은 사람’에 관한 예언이다. 여기서 “나”(1절)는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시고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눅 4:22)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것이 당신을 위한 예언임을 알리셨다. 히브리어 ‘메시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얽매인 것을 풀어주고 억압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며 왜곡된 것을 바로잡아 주시는 구원자이시다. 

“주님의 은혜의 해”(2절)는 레위기 25장 6-13절에 나오는 “희년”을 가리킨다. 안식년(7년)이 일곱 번 반복된 다음 해 즉 오 십년 째 오는 해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빚을 탕감해 주고 구입한 토지를 원주인에게 돌려주며 노예로 잡힌 사람을 풀어 주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새출발을 하게 하는 해방과 자유와 회복의 해다. 그 때가 되면 참된 “위로”(3절)가 유다 백성에게 임할 것이다. 주님께서 그들을 유다 땅에 다시 심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회복된 유다 백성은 “의의 나무”라고 일컬어질 것이다.

4절부터는 예언자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음 받은 종을 통해 회복시키시면 유다 백성은 황폐해진 성읍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4절), 다른 민족들이 와서 그들을 위해 일해줄 것이다(5절). 그들은 유다 백성을 “주님의 제사장”으로,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6절)로 부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그들은 과거에 받았던 수치와 모욕에 대한 갑절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7절).

8절과 9절은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은 “정의(쯔다카)와 공의(미쉬파트)”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시며,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도 정의와 공의를 요구하신다. 그 하나님은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통해 유다 백성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실 것인데, 그것은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그 언약으로 인해 그들의 자손들은 “주의 복을 받은 자손”으로서 만민에게 알려질 것이다.  

10절에서는 3절에서 끊긴 “나”의 말이 이어진다. 그는 주님께서 구원과 의의 옷으로 자신을 단장해 주셔서 그분 안에서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할 때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묵상:

구원에 대해 말할 때 보통 “영혼 구원”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성경에도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 가령, 베드로 사도는 “여러분은 믿음의 목표 곧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벧전 1:9)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의 “영혼”은 인간 존재의 ‘한 부분'(육신과 분리된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중심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는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다고 믿었지만, 히브리적 사고에서는 영혼과 육신은 하나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의 구원”이란 “육신과 분리된 영혼만의 구원”이 아니라 “육신을 포함한 인간 존재 전체의 구원”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영으로 기름 부으셔서 구원자로 세우신 것은 우리의 영혼만을 빼내어 천국으로 옮기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1-3절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신 후에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억압 당하는 이들, 차별 당하는 이들을 찾아 다니며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해 주셨습니다. 희년법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정의롭고 공의로운 세상을 회복시키려 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영혼만을 보신 것이 아니라 외면과 처한 상황까지 보셨고, 정의와 공의가 깨어진 것에 대해 아파하시면서 그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에 관심하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살전 5:23)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희년의 개인적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믿어서 변화된 이들을 통해 희년의 현실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희년의 사회적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고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일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고 소망하며 이 땅에서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입니다. 


Comments

2 responses to “이사야서 61장: 희년의 개인적 실현과 사회적 실현”

  1. 어둡고 혼란한 세상에 살고있습니다만 빛과 생명이신 주님이 오셨고 세상의 모든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주님의 영으로 주관하시고 다시 만왕의 왕 오시는 공평과 공의의 주님으로 오시는 소망으로 살고있습니다, 지난밤 집사람과 저에게 보여주신 꿈을 마음속에 항상기억하며 낙심할때에도 꿈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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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은 교회 회의가 있는 날이라 ‘사귐의 소리’ 묵상을 올리지 못하고 새벽 예배에 갔습니다. 예배 후에 회의를 했는데 면접도 있었고 새해 전에 처리해야 하는 안건들이 많았습니다. 회의를 할 때마다 드는 ‘회의’가 있는데, 이민교회의 문화가 그런건지 아니면 회의에 들어오는 개인이 별도로 토론 공부와 실습을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지, 나부터 ‘우리는 회의를 참 할 줄 모른다’는 자채감과 실망감입니다. 가나안 (안나가) 성도들도 그렇고, 교회 일에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는 신자들이 늘어나는 이유가 회의에 대한 부정적인 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남편의 말처럼 회의를 할 때는 솔직하게 의견을 내고 충분하게, 때론 피튀기듯 열띠게 토론한 뒤에 어떤 지점에서 합의를 이루어 결정이 되면 모두 결정을 수용하고 같이 협력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따지는건 은혜가 안된다, 교회 일은 우리보다 목사님이 더 잘 알고, 더 많이 기도한다 좋은게 좋은거다, 교회와 세상은 달라야 한다, 아멘!하고 결정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신다…이러니 회의는 그저 장식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교회 회의 만 그런 것이 아닐겁니다. 자기 의견을 내는 일도 어렵고, 여러 의견을 수렴한 뒤에 절충과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내는 일도 어렵고, 어떤 결정 방식을 택할 것인가 어려운 일입니다. 회의를 리드하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진행이 순조롭기도 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산으로 가기도 합니다. 가게에 와서 이사야서 61장을 읽으니 하나님의 구원 외에는 우리가 기다리고 사모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구원이 올 때까지 손을 놓고 있으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은 이사야서의 오늘 본문을 읽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고향에 도착한 예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사이에 이루어졌다! 선포하십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기름 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당신 자신이라는 선포입니다. 이를 듣고 사람들이 웅성거립니다. 요셉의 아들 아니냐? 이 사람이 지금 뭐라는거냐고 당황해 합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이 때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회당 안에서, 고향 사람들과 부딪치는 예수님입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벼랑 밑으로 밀쳐 떨어뜨리려고 (죽이려고) 합니다. 기득권과 새내기의 싸움 같기도 하고 세대간의 충돌로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일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수용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걸 봅니다. 예수님은 얽매인 사람, 왜곡된 것을 그저 넘기지 않았습니다. 리셋 reset 할 수 있는 것은 꼭 리셋해 주셨습니다. 희년을 실천하신겁니다. 희년은 오 십년이라는 시간적인 기한을 채우면 당연하게 오는 선물이 아닙니다. 희년의 법칙은 오 십년이요 지켜야 하는 명이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여기가 좋은 사람들, 내가 가진 것을 굳이 왜 나누어야 하느냐는 이들은 리셋이 불필요하고 불편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른다는 고백은 리셋을 원한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잘 안 풀리는 삶을 리셋 해주세요 하는 기도만이 아니라, 안정되고 편안한 이 삶을 흔들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고 하셔도, 주님 감사합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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