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9장: 하나님의 영과 사회 정의

해설:

1절부터 8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유다 백성의 죄악을 고발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난을 겪게 된 원인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1절). 그들이 불행을 당하는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다(2절).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들은 죄에 깊이 물들어 있고(3절), 그로 인해 세상에는 공의와 정의가 사라졌다(4절). 그들은 마음에 헛된 생각을 품고 악한 일을 꾸민다(5-7절). 그들은 길을 굽게 만들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위험을 당하게 만든다(8절). 

9절부터는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가 사용된다. 이사야는 유다 백성의 죄악을 비판하고 책망하면서 자신도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는 자신들이 사는 땅에 공평이 멀고 공의가 없다는 사실로 인해 탄식한다. 세상은 깜깜한 밤이 되었고, 모두가 눈먼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살아간다(10절). 그로 인해 그들은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운다”(11절). 

12절부터 15절 상반절까지는 이사야가 유다 백성을 품고 하나님께 드린 기도다. 그는 자신들의 죄가 자신들을 고발하고 있으며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12절). 그들의 죄는 하나님께 등을 돌린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생각과 말과 행실로 죄악을 범하고 살았다(13절). 세상에 “공평”과 “공의”와 “성실”과 “정직”이 사라진 이유는 모두가 하나님에게 등지고 살기 때문이다(14절). 그 결과 “악에서 떠난 자”(15절 상)까지도 고난을 당한다. 

이사야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15절 하). 하나님은 “중재자”(16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고칠 사람)가 없는 것을 보시고 악한 자들을 심판하고 의로운 자들을 구원하실 채비를 차리고 계시다(17-18절). 그분이 심판 하시는 날이 되면,  “해 지는 곳에서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해 뜨는 곳에서 주님의 여광을 두려워할 것”(19절)이다. 그 때가 되면 주님께서 “죄를 회개한 사람들에게”(20절) 오시어 구원해 주실 것이다. 또한 예언자에게 임했던 영이 모두에게 임하여 머물게 될 것이다(21절).

묵상: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를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라고 부릅니다. 과거에 진리로 인정되던 모든 것들이 부정 당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 증상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부쩍 심해졌습니다. 이제는 엄연한 ‘사실’까지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도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라고 강변합니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모두 가짜 뉴스라고 부정하고, 거짓말을 거짓말로 변호합니다. 그로 인해 지난 수백 년 동안 공들여 쌓아올린 공평과 공의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고, 사회적 약자들은 사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에 유다 사회를 보시고 “놀라신 주님”(16절)은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고도 놀라실 것입니다. 아니, 더 크게 놀라실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고개 숙이고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면서 “공평이 뒤로 밀려나고 공의가 멀어졌으며, 성실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정직이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성실이 사라지니, 악에서 떠난 자가 오히려 약탈을 당합니다”(14-15절)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사야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그 악에 가담하고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실하게 회개할 수 있고, 그럴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21절의 약속 즉 예언자에게 머물렀던 영이 그의 모든 자손들에게 임하여 머물 것이라는 약속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너의 자손”은 “혈통의 자손”이 아니라 “믿음의 자손”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우리에게 성령께서 임하시고 머무르십니다. 그 성령은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이 땅에서 공평과 공의와 성실과 정직을 실천하며 살게 하십니다. 그렇게 이 세상 속에서 중재자로 살아갈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오늘도 찾으십니다. 사회 정의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씨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59장: 하나님의 영과 사회 정의”

  1. 떠나온 모국과 살고있는 미국을 지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공의와 공평이 점점 사라지고 거짖과 탐욕과 위선이 팽배해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군림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고난받는 사회를 지적하고 한탄해왔지만 그토록 부조리한 세상이 된것이 우리의 책임인것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위선자들을 투표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남을 탓하지말고 십자가 밑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사회의 정의를위해 회개하고 성령의 인도하싱을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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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신앙으로 산다는 말 속에는 성경 말씀과 생활이 일치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신앙인은 삶에 말씀을 적용해 살겠다는 결단을 자주 합니다. 삶 속에서 말씀이 실현되기를 바란다는 기도도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려면 것이 말씀과 삶이 한 곳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 둘이 만나는 약속 장소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통해야,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 묵상을 하게 된 뒤에 언어가 달라졌습니다. 사용하는 어휘는 같을지라도 단어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적’이라는 단어입니다. 정치적이라는 말을 쓸 때는 보통 계산적이라거나, 기회에 예민하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파악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는 사람을 정치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묻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묵상하고,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알아보면서 부터는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정치적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지만 성경적인 삶은 정치적 사고를 요구한다는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이지만 달리 돌려서 말할 수 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에 관한 성찰은 즉각적인 성향의 변화를 일으키진 않지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회 정의’라는 단어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경찰서에 붙어있던 간판이요 구호였던 사회 정의가 성경의 주요 메세지요, 신앙인이라면 관심있게 봐야 하는 주제라는 것도 말씀 묵상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인은 일상의 언어를 성경의 언어 안에서 걸러내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익숙한 단어, 교인들끼리 잘 쓰는 단어를 자주 쓰자는 뜻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이 성경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지 살펴본다는 뜻입니다. 말의 무게를 성경의 저울로 달아본다고 할까요. 11절에 ‘우리 모두가 곰처럼 울부짖으며 비둘기처럼 슬피 운다. 정의를 바라지만 정의는 없고,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그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다’고 되어 있습니다. 참 절절한 표현입니다. 곰이 울부짖고 비둘기가 슬피 우는 때가 언제인지, 왜인지 잘 모르지만 ‘배가 고파서’ 아닐까요. 바라는 것이 있는데 채워지지 않아서 그러는게 아닐까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정의와 구원을 바라는 우리는 서로에게 정의와 구원을 베푸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신자는 ‘정의’와 ‘구원’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새벽에 하나님께 우리 사회의 정의를 이루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합니다. 나도 그 일에 관심을 갖겠다고, 관심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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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ully39f6bbe2e9 Avatar
    fully39f6bbe2e9

    241205 이사야59장

    “주님, 

    주님께 지은 우리의 죄가 매우 많습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를 고발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가 발뺌할 수 없으며, 

    우리의 죄를 우리가 잘 압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주님을 부정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물러가서, 

    포학한 말과 거역하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을 마음에 품었고, 

    또 실제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공평이 뒤로 밀려나고 공의가 멀어졌으며, 

    성실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정직이 발붙이지 못합니다. 

    성실이 사라지니, 

    악에서 떠난 자가 오히려 약탈을 당합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보셨다. 

    공평이 없는 것을 보시고 슬퍼하셨다. 

    압박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재자가 없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놀라셨다. 

    주님께서는 직접,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반드시 공의를 이루시려고, 

    당신의 능력을 친히 발휘하실 것이다.” 

    (‭‭이사야서‬ ‭59‬:‭12‬-‭16‬)

     이사야는 유다백성들의 죄를 고발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죄가 자신의 죄라고 여기고 통화함으로 회개하며 나아갔다. 

     이사야의 기도를 통해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나에게도 있음을 보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나도 하나님 앞에 다루어지지 않으면, 내가 비판하는 누군가와 다름없는 존재이다. 

     진정한 기도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데에서 출발한다.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 거기서부터 새롭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내가 살기 위한 방법으로 ‘거짓말’과 ‘ 속임’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위기를 넘어서는 능력이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이것에 길들여지면, 진실로 돌아가기가 어려워진다. 반복된 거짓말과 속임을 통해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실패자가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공평이 없는 것을 보고 슬퍼하셨다. 압박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재자가 없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놀라셨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타락한 유다백성의 죄가 자신의 죄라고 여기며 기도할 때-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은 사랑으로 나를 용서하시고, 자유케 하신다. 그리고 그 사랑과 용서와 자유가 내가 대신 죄를 회개하는 그 대상에게도 임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 땅이 공평과 정의로 하나님 나라가 되길 바라신다. 그래서 내가 무너진 곳에서, 결렬된 틈에서 압박받는자를 돕기 원하시고, 중재자로 있길 원하신다.

     대한민국과 다른 나라들의 죄를 나의 죄로 여기며 회개하자.그리고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로 용서하시고, 다스리시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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