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8장: 금식의 이유

해설:

1절부터 12절까지에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이중성을 책망하신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유다 백성의 죄에 대해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신다(1절).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기를 즐긴다(2절). 그들은 금식과 여러 가지 고행을 즐겨 행한다. 하지만 금식을 행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향락을 즐겼고 일꾼들에게 무리하게 일을 시켰다(3절). 서로 소송을 하고 다투면서도 금식일은 성실하게 지켰다(4절). 주님께서는 그들이 금식의 의미를 망각하고 형식만 지키고 있다고 책망하신다. 그런 금식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5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 주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6-7절).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진실하게 “통회하며 괴로워”(5절) 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게 된다. 진정한 금식은 공의를 행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렇게 금식하며 그 의미를 실천할 때, 주님께서는 그를 돌보아 주실 것이고 빛나게 해주실 것이다(8-11절). 그들은 또한 폐허가 된 성읍들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12절).

13절과 14절은 안식일 준수에 대한 말씀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정기적인 휴식을 보장하려는 뜻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안식일의 본래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를 고백하고 선포하고 축하는 데 있다.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 자신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축하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생계를 위한 모든 일을 멈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자구책을 멈추고 내가 오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감사하고 축하한다. 그렇게 할 때 “주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14절). 

묵상:

영적 생활을 신실하게 지속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영적 생활과 일상 생활이 분리되지 않아야 합니다. 일상 생활의 방향과 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영적 생활은 무익하거나 해롭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 생활은 부정한 일상 생활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거나 영적 도피처가 됩니다. 그것은 자신만의 도피처를 만들고 그 안에서 영적 황홀경을 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그분의 눈과 마음으로 일상 생활을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관심사에 묶여 있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깨어나 이웃을 돌아보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유다 백성의 형식화 된 영적 생활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열심으로 금식일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금식 행위는 그들의 일상 생활과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 지은 죄책감을 가리는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심해질수록 금식 행위는 더 떠들썩 해졌습니다. 금식을 지키는 그들의 태도는 안식일을 지키는 방식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바울 사도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것을 경고했는데, 유다 백성이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약 1:27)라고 했을 때, 그는 이사야를 통해 주신 이 예언의 말씀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그 능력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세우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58장: 금식의 이유”

  1. 골방에 앉아서 금식하며 기도하지 말고 고아와 과부와 병약자를 찾아 돌보는것이 갈팡질팡하는 지도자와 거짖과 위선으로 포장된 정치인이 대부분인 조국을위해 주님께 간구하는 사귐의 소리 가족들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안식일 (일요일)에 안식하기는 커녕 더 많은 ‘일’로 분주하게 지내는 현대 생활에 대해 학자와 성직자 뿐 아니라 일반 신도도 고민을 해왔습니다. 스포츠가 가장 인기 있는 종교로 등극을 하고, 하루 24시간 전체가 활동가능 시간대로 확장되면서 일요일도 평일과 같은 날이 되었습니다. 가게를 하기 전엔 누가 장사 때문에 교회에 못 온다고 하면 이마부터 찡그렸습니다. 예배에 못오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기 보다 일요일에도 장사하는 사람의 ‘심리상태’부터 못마땅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 내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금식을 위한 금식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게를 하면서는 일요일에 일할 수 있다는 직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주일에 예배 만이라도 드리고 가게에 일하러 갈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요. 일요일에 가게를 닫지 않는게 매상 때문 만은 아닙니다. 서비스업에선 손님의 입장이 중요합니다. 공급을 하니까 수요가 있다는 말이 틀리진 않지만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공급자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소비자의 수요를 잘 맞추는 것이 서비스업계가 하는 일입니다. 일주일 내내 가게를 열지만 일요일 가게 풍경은 좀 다릅니다. 가족이 교회에 갔다가 들리기도 하고, 몇 몇 가정이 가게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오기도 합니다. 3대, 4대가 같이 오는 것도 일요일일 때가 더 많고, 아이를 재촉하거나 꾸짖는 엄마가 덜 보이는 날이 일요일입니다. 요즘처럼 연말 샤핑이 한창일 때는 피곤해서 쉬어가는 (당충전?) 손님도 있습니다. 카운터에 서 있는 나도 일요일엔 평일과 다른 기도를 올립니다. 혼자 요거트를 즐기는 손님의 여유, 가족과 친구와 함께 나누는 손님의 즐거움, 분주함 속에서 누리는 잠깐의 휴식… 나도 같이 감사하며 샬롬을 빕니다. 안식이 무엇인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여전히 잘 모릅니다. 금식하는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받으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사는 모습과 형편, 의도와 바램도 보시고 받으신다고 믿습니다. 주님께 맡기라는 것이 안식하라는 명령일 것입니다. 너와 함께 있으니 마음을 놓으라는 것이 안식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안식일에 나 자신을 돌보고, 나를 돌보듯 타인의 평안함을 돌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Like

  3. fully39f6bbe2e9 Avatar
    fully39f6bbe2e9

    241204 이사야58장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며, 대대로 버려 두었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를 두고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 이라고 부를 것이다.”‭‭(이사야서‬ ‭58‬:‭6‬-‭12‬ ‭)

    대한민국의 상황이 연일 나의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이 때가 나라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야 하는 때라는 마음이 든다.

    어제부터 한끼 금식을 시작했다. 결단하고 시작한건 아니지만, 참담한 마음에 평안히 지내는 것이 사치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어둠이 가득한 지금이 부르짖어야 하는 때라고 말씀하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대한민국과 분쟁중인 나라 가운데, 모든 무거운 멍에와 폭력을 없애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이 어둠이 짙을수록 예수님의 빛이 더욱 찬란하게 비추게 될 것을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기도하자.

    Like

Leave a reply to young mae kim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