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6장: 만민이 기도하는 집

해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당신의 구원이 가까웠고 당신의 의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절). ‘의’ 혹은 ‘공의’라고 번역된 ‘쩨데카’는 ‘올바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공의’ 즉 ‘미쉬파트’가 이루어진다. 그것이 구원이다. 

2절부터 8절까지는 하나님의 의를 따라 공평을 지키고 공의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말씀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따라 공의를 행하는 일이다. 율법에 따르면, 이방 사람과 성소수자(‘고자’)는 부정한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따라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겠다고 하신다(3-8절).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7절)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구별하고 차별하던 기준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두 제거될 것이다.  

9절부터 12절에서 하나님은 유다 지도자들(왕과 관리들, 제사장, 예언자 등)을 탄핵 하신다. 지도자를 세운 까닭은 백성을 보살피고 복된 길로 인도하라는 뜻인데, 유다의 지도자들은 모두들 저 좋을 대로만 하고 제 배만 채운다(11절). 하나님은 그들을 “도적들”(12절)이라고 부르신다. 그들은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먹고 마실 것만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들짐승에게 “나의 백성을 잡아먹어라”(9절)고 명령하신다.  

묵상: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면서 7절의 말씀(“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을 인용 하십니다(막 11:17). 또한 그분은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십니다. 이사야가 활동할 시대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활동하실 때에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만의 성을 쌓아 놓고 그 안에서 탐욕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규정된 사람들(이방인, 장애인,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성매매 여인들 등)을 철저히 배제하고 성전을 “그들만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내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7절)라고 하셨을 때 우선적으로 이방인과 성소수자(고자)를 염두에 두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어서 “내가 이미 나에게로 모아 들인 사람들 외에 또 더 모아 들이겠다”(8절)고 하십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회중에서 제외시킨 사람들을 모두 모아 들이겠다는 뜻입니다. “내 집”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분을 섬기려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에 따라 행동하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죄인으로 규정하고 멀리하던 사람들을 찾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시고 식탁으로 초청하여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로써 그분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는 경악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예언자라면 그 부정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아야 했고, 그 일을 계속한다면 그분은 거짓 예언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예수님을 의심하고 배척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고래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고 담을 쌓아 왔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 선을 지우고 그 담을 허물도록 우리를 흔드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어렵고 힘들고 불편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우리같은 사람들만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 놓기를 원합니다. 이사야 시대도 그랬고, 예수님 시대도 그랬으며, 오늘 우리 시대도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빗장을 걸어 잠근 문을 열라고 우리를 흔드십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56장: 만민이 기도하는 집”

  1. 문턱이 없는 교회를 허락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방인들과 장애인들과 부정한 사람들에게도 차별없이 은혜를 주시는 공평의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내용은 없고 겉모양만경건하게 보이는 신세까지도 품어주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피부색갈과 문화와 이념이 다른것에 상관없이 모두함께 하나되어 십자가의 용서를 감사하며 주님께 예배와 기도드리는 교회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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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성경을 처음 읽기 시작한 때는 중학교쯤이었을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읽었을테고 레위기를 넘어가지 못한 채 신약으로 건너 뛰었을겁니다. 66권을 커버 투 커버로 다 읽은 것은 15년쯤 전에 성경쓰기를 하면서였습니다. 그 때 했던 성경쓰기는 공책에 펜으로 쓰는 성경필사가 아니라 교회에서 알게 된 성경쓰기 웹사이트에 접속해 성경을 읽으면서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컴퓨터 자판으로 쓰니까 (타이핑) 크게 힘들지 않아 하루에 여러 장씩 읽고 쓸 수 있었습니다. 눈으로 읽은 것을 손으로 쓰니까 읽은 것이 금방 없어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서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그렇게 성경쓰기를 한 번 하고 다시 시작해 두 번째 하던 중에 사이트에 문제가 생겼는지 접속이 되지 않아 성경쓰기 그룹이 중도에 없어져 버렸습니다. 수영할 때나 발성할 때 길고 깊게 숨쉬는 연습이 필요하듯이 독서에도 긴 호흡이 있다면 그 때 성경쓰기 하면서 호흡이 조금 길어진 듯 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인물이 있습니다. 위대하거나 유명한 인물은 물론이지만 마이너 캐릭터인데 눈길을 끄는 인물입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예수님을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그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생에 대해 다 알 것 같은 나이이고, 지위도 높은 사람이 예수님을 밤에 몰래 찾아와 과외공부하듯 배우고 갔다는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유대인이고 지식인이면서도 예수님을 존경하는 사람이라는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각인된 인물 중에 이디오피아 환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이디오피아 여왕의 신하인 내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빌립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또 과외공부) 세례를 받은 다음에 자기 나라로 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고 경배하고자 하는 사람은 ‘내시라도’ 괜찮다는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격이 있다 없다를 따지는 우리와 다르시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56장은 빌립과 만났던 내시와도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고자들과, 사회 주변부를 서성이는 여러 형태의 약자를 위한 특별한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쉽게 무시하는 위치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집에 들어올 수 있다는 선포는 하나님은 진정 만민의 하나님이라는 선포입니다. 누구든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엘리트 유대인 니고데모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고, 이디오피아의 내시도 이사야서가 말하는 주의 종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매일 주님을 만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옵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놀라운 은총입니다. 세상 사는 동안 우리가 원하고 구하고 이루는 자격이, 지위와 서열이, 자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다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누구나 주님의 백성, 종, 자녀입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을, 바로 오늘 말씀을 예수님도 읽고 묵상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가…깊이 깊이 묵상하셨을 것입니다. 주의 은혜입니다. 주의 사랑과 공의가 나를 숨쉬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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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202 이사야 56장

    “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아들땅을 두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낫게 하여 주겠다.
    그들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한 명성을 그들에게 주겠다.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이방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여 주님의 종이 되어라.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이방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또한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바친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내가 기꺼이 받을 것이니,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사 56:4-7)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복의 대상은 선택하신 백성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였다.
    “비록 고자라도…”
    성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다른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처럼 기도하는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된다고 믿는 절대적인 기준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율법이 자신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지키는 것을 생명과 같이 여겼다. 그들이 생각하는 율법의 기준하에 어긋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생명을 해하는 것 조차 마땅히 여겼다. 예수님을 십자가의 메달아 죽인 것도, 바울이 스데반 집사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며 그들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 것도 율법의 기준에 벗어난 자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율법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살해’도 서슴치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신은 하나님이 아닌 율법을 빙자한 인간의 탐욕임을 보게 된다.

    혹자는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며,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이분법적인 잣대로 구분짓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 전체를 읽다보면,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오래참고 인내하시며, 약한자들을 돌보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

    오늘 말씀에서도 “비록 고자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기도하는 집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인간을 선택하고, 바라보시는 기준은 나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본다.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앙의 기준이 나의 신념이 된다면 하나님의 기준이 내 안에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가치가 정해지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내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도 구별없이, 차별없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여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모인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전이 될 것이다. 교회의 원형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기도하는 곳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는다.

    오늘도 나의 생각과 가치기준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섰던 것을 다시한번 주님 앞에 내려놓고, “비록 고자라도” 하나님을 찾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개어 놓길 원한다.

    12월이 시작되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가?”
    올 겨울은 매일 이 질문을 하며, 예수님을 더 깊게 묵상하게 되는것 같다.
    눈 보다 더 희게,
    나의 죄를 씻으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분의 삶을 기억하며, 예수님 닮는 삶 살도록…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기도한다.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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