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37장: 상황에 휘둘리지 않기

해설:

랍사게의 말을 사절단으로부터 전해 들은 히스기야 왕은 울분을 참지 못하여 옷을 찢고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 한 편(1절), 사신들을 이사야에게 파견한다(2절). 그는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유다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한다(3-4절).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었으며 그 일에 대해 곧 징계하실 것이라고 답을 준다(5-7절).

그러는 사이에 랍사게는 립나와 전쟁을 하고 있는 산헤립 왕을 돕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물러간다(8절). 그 때 산헤립 왕은 에티오피아 왕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출전했다는 소문을 듣는다(9절). 산헤립 왕은 에티오피아와 유다가 연합하여 공격할 것을 예상하고 히스기야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다시금 심리전을 펼친다. 한번에 두 나라와 전쟁을 하다가는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앗시리아를 맞서 자신의 민족을 지켜 준 신이 없었다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그들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그러니 항복하라고 회유한다(10-13절).  

이 편지를 받은 히스기야는 성전으로 올라가 주님 앞에 그 편지를 펴 놓고(14절) 다른 민족의 신들은 우상일 뿐이지만 주님을 살아계신 분이시니 앗시리아의 위협으로부터 구해 달라고 기도한다(15-20절).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셨다는 사실을 알고(21절)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앗시리아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알린다(22-35절). 

얼마 후, 앗시리아 군 진영에서 하루 밤 사이에 십팔만 오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36절). 자중지란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에티오피아 군에게 습격 당했을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났든,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기에 성서 저자는 “주님의 천사가 …… 쳐죽였다”고 묘사했다.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타격을 입은 산헤립은 정복 전쟁을 포기하고 니느웨 도성으로 돌아간다(37절). 

상심에 빠져 있던 그는 어느 날 그가 섬기던 니스록의 신전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의 두 아들이 그를 암살하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한다(38절). 그의 다른 아들 엣살하돈이 왕위를 이어받지만, 이 일로 인해 앗시리아는 급전직하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묵상:

37장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히스기야 왕의 낙심과 두려움을 보고 다른 한편으로 랍사게와 산헤립의 오만과 교만을 봅니다. 

앗시리아 군대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몸소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기도 했고,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의 뜻을 묻기도 했습니다. 이사야는 그에게 유다를 지켜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의 불안과 두려움을 완전히 잠재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부여잡고 그 불안의 나날을 견뎌 냅니다.

히스기야 왕과 예루살렘 주민들을 흔들기 위해서 산헤립이 한 말(10-13절)은 그가 얼마나 오만해져 있었는지를 보게 해줍니다. 산헤립은 정복 전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가 자랑하는 대로 그의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민족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 어떤 신도 그들의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하늘끝까지 교만해지게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그 교만의 끝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만났습니다. 그 어느 신도 자신들을 이길 수 없다고 자랑했던 산헤립은 그가 수호신으로 섬기던 니스룩 신전에서 암살 당합니다. 

물리적으로 상황이 좋아지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마치 자신이 신이나 된 것처럼 교만해집니다. 반면, 상황이 나빠지면 심하게 낙심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연약한 인간으로서 물리적 환경에 따라 일희일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믿음이란 그러한 마음의 조화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의 중심을 붙드는 것입니다. 만사형통, 승승장구 한다고 해서 신이나 된 듯이 들레지 않고, 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처럼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묵묵히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37장: 상황에 휘둘리지 않기”

  1.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때 두려워하고 초초한 심정으로 자주 낙심하는 가련한 존재입니다.항상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모든 상황을 관조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우선 자신을 되도라보고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삶을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것이 주님의 은혜인것을 감사하며 앞으로의 삶도 은혜 충만의 소망으로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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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일희일비하며 아둥바둥 사는 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이라면 그리스도은 이를 넘어서는 의연함과 의젓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답게 의젓하고 담담해야 할텐데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미국 대선 결과를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옵니다. 두 후보가 박빙일 것이라고 전망했던 여론들을 보란듯이 무릎 꿇린 압승 결과 앞에서 정치 분석가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이번 선거를 복습하고 있습니다. 유권자의 의식구조가 4년 전, 8년 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분석하고 성별, 인종, 연령, 학력 등의 다양한 분류 조건과 투표성향을 결부 시키기도 합니다. 어제 읽은 어떤 글은 유권자들이 공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분석을 했습니다. 트럼프의 공약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예를 들어 미국으로 들어오는 상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는 공약은 물가상승의 결과로 이어질텐데 – 유권자들이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는 진단입니다. 대놓고 유권자의 ‘무식’을 지적하는 분석이었습니다. 착잡했습니다. 4년 뒤에는 ‘무식한’ 유권자들이 유식해질까요, 아니면 더 많아질까요.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의 한인 교인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지고 존경을 받는 김기석 목사님이 책 열 권을 추천한 유튜브가 있습니다. 그 중에 독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책이 있습니다. 분량도 방대하고 내용도 심오하며 촘촘한 이 책을 소개하면서 목사님은 그 유명한 ‘다스 만 das Mann’의 개념을 소개합니다. 다스 만은 보통 사람, 평균적 인간, 세인, 일반인이라는 뜻입니다. 다스 만의 특성을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는데 잡담과 호기심, 모호성입니다. 잡담은 정겨운 수다나 흉허물 없이 나누는 세상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지만 하이데거가 말하는 잡담은 빈말, 별 뜻 없는 말, 책임지지 않는 말, 그냥 지껄이는 말들로 시간을 허비하는 세상 사람의 특징입니다. 두번째 호기심은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창의성의 기본 재료일 때도 있지만 하이데거는 새로운 것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마음, 진득하게 머물지 못하는 마음, 아름다움을 찾을 때까지 마음에 담아 두지 못하는 상태라고 봅니다. 끝으로 그가 지적하는 현대인의 특징은 모호성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호성은 참된 인식에 이르지 못한 채 대충 알면서 다 아는 것 같은 태도를 뜻합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상투적이고 표피적인 이해에 그치면서도 마치 다 안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 세인의 특성이라는 겁니다. 김목사님은 이런 다스 만의 특성이 퇴락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본다면 이제 자기의 본래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 가는 것이 삶의 과제요, 믿음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벌써 40년이 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다닌 교회의 목사님은 현대인의 특징이 조급성과 표피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럴싸해 보이는 것에 정신이 팔리고, 진심을 기울여 듣지 않고 대강 듣고 넘깁니다.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습관이 이렇게 들면. 앗시리아의 왕은 유다 백성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불안과 회의에 휩싸인 백성을 요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도움을 청하고, 본인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히스기야에게 표적이 있습니다. 올해와 새해에는 들에서 나는 (변변찮은 양의) 곡식을 먹겠지만 삼 년째 되는 해에는 심고 거두리라, 포도밭을 가꾸어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일희일비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롱게임이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하는대로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 의젓하고 의연하게, 땅에서 살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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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109 이사야 37장

    “히스기야는 사신들에게 이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런 다음에 주님의 성전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편지를 펴놓은 뒤에 주님께 기도하였다.”(사37:14)

    “그런 다음에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서, 앗시리아 군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명을 쳐죽였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에, 그들은 모두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사37:36)

    앞서 앗시리아의 협박을 받던 히스기야왕은 또 다시 협박에 시달린다. 협박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읽은 히스기야왕은 주님의 성전으로 올라가 협박편지를 펴놓고 기도하였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고백하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들을 기억하시도록 자신의 심경을 고스란히 하나님 앞에 가져갔다.
    이 후 승승장구하던 앗시리아는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로부터 십팔만 오천명의 군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그리고 앗시리아왕 산헤립은 자기 신 니스록 앞에서 예배할 때, 그의 두 아들로 부터 죽임을 당하였다.

    인생을 살다보면 협박처럼 느껴지는 서슬퍼런 칼날이 나의 생명을 겨누고 있음을 경험할 때가 있다. 실제적으로 오는 협박, 감정 형태로 오는 협박, 상황으로 부터 오는 협박 등, 사방히 막혀 도무지 살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순간이 온다. 그럴 때 숨이 쉬어지지 않을만큼의 고통이 느껴진다.

    당시 히스기야의 심정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 때, 히스기야왕은 그 협박편지와 두려움의 마음을 갖고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선포하며 기도한다. 그의 참혹한 심경을 아뢰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앗시리아를 기억해달라 간구한다.
    히스기야의 태도를 보며, 고통스러운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얻는다. 나에게 직면한 그 문제 그대로를 하나님 앞에 펼쳐놓는 것. 히스기야가 협박편지를 주님 앞에 펼쳐놓고 기도했듯이,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내가 직면한 문제들을 펼쳐놓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께 나의 문제를 토스함으로서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한다. 기도는 단순히 간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하나님깨 속해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나의 문제조차 하나님의 것임을 맡겨드리는 과정이다. 그럴 때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다.

    앗시리아 군에게 천사들을 보내셔서 밤새 십팔만 오천명을 죽이셨던 것 처럼, 두 아들로 부터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앗시리아 왕처럼…
    기도를 통해 나의 문제가 하나님께로 토스될 때-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일하신다.

    요즘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을 배워가면서,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장 겸손한 태도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내 뜻이 하나님의 뜻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통해 두려움을 가져가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평안과 자유함을 맛보게 된다.

    어제도 나에게 힘든 시간이 찾아왔을 때-
    나에게 찾아든 두려움과 불안, 답답함의 협박편지를 들고 주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나의 내면의 협박편지를 주님 앞에 펼쳐놓는 순간, 이 문제가 나를 떠나 하나님께로 토스되었음을 깨달았다. 그저 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왕 되심을 선포하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면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오늘 그 일을 직접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다. 문제가 해결된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그동안 주님 앞에 나아가 머물렀던 그 모든 시간을 주님이 세심하게 살피고 계셨다는 것에 더 큰 감격과 감사가 몰려왔다.

    내가 연약할수록, 나를 더욱 귀히 여기시는 주님.
    나를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숨겨주시고,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주님.
    주님 앞으로 달려나가자. 엎드리자. 기도하자.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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