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32장: 공의로 다스릴 왕

해설:

1절부터 8절까지에서 이사야는 “공의로 통치하고” “공평으로 다스릴”(1절) 지도자를 염원한다. “공의”로 번역된 ‘쩨데크’는 “올바른 상태”(righteousness, 분배적 정의)를 의미하고, “공평”으로 번역된 ‘미쉬팟’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음”(justice, 교정적 정의)을 의미한다. 그 왕은 백성의 필요와 요구에 귀를 기우리고 사려 깊게 행동한다(3-4절). 그 왕은 백성들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게 될” 것이며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고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과 같을”(2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모든 백성이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6-8절).    

9절부터 14절까지에서 이사야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여기서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9절)은 불의와 불공정을 일삼는 지도자들을 남편으로 둔 덕분에 지금 호의호식하며 걱정 거리 없이 사는 부인들을 가리킨다. 부정의와 불공정의 열매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이사야는 일 년도 되지 않아서 그들이 참혹한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9-10절). 따라서 지금은 웃고 즐길 때가 아니라 베옷을 입고 몸부림 쳐 회개해야 할 때라고 요청한다(11-14절). 

하지만 그 심판이 마지막은 아니다. 그 심판 후에 하나님은 다시 영을 보내 주실 것이고(15절), 그렇게 되면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16절)이다. 공평(미쉬팟)과 의(쩨데크)가 자리를 잡으면 평화와 안전이 찾아온다(17절). 그 때가 되면 백성은 안전하게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다(18절). 우박과 폭우가 쏟아질 때 피해가 발생하지만 그 후에는 풍성한 물로 인해 초목이 살아나는 것처럼(19-20절), 심판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하나님은 결국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묵상:

과거,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면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우리 모두는 가슴 설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마땅한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인 번영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17절)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쉽지만 정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역사 상 어느 통치자도, 어떤 정권도 만족할만큼 공정과 정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상과 목표를 높게 제시하는 정권일 수록 더 큰 실망감과 배반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이룰 수 있는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 정치인에게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조금 더 나은 지도자를 택하는 것 뿐입니다. 

완전한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오직 하나님 나라에만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래서 현실 정치에 실망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이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1절)라는 예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와 공정에 대한 우리 믿는 이들의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의 현실이 좀 더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 가까워지도록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32장: 공의로 다스릴 왕”

  1. 내일이 미국의 대통령, 하원의원 전부, 상원의원 일부를 선출하는 날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2600년전에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지도자들을 기대하지 않지만. 어느정도 공의와 공평으로 민초들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선출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완전한 사랑의 왕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사랑과 평강의 나라를 이루시는것을 믿습니다, 그나라를 미리맛보며 사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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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한국은 한국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암울한 정치 현실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내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동전을 던져 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초박빙의 선거라고들 말합니다. 우리는 몇 주 전에 우편 투표를 마쳤고 결과에 대해 마음을 비웠습니다. 현명해져서 마음을 비운게 아니라 그냥 마음이 비워졌습니다. 이사야서를 읽고 있어서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통치자들이 공평하게 재판하는 나라 (1절)가 있을까요. ‘바람을 피하는 곳’ 같고, ‘폭풍우 속의 피난처’ 같은 통치자가 다스리는 나라는 살아 생전 이 땅에서 보고 겪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32장 뿐 아니라 이사야서 곳곳에 나오는 악한 지도자들은 약자를 짓밟는 못된 인간들입니다. 자기 배를 채우려고 ‘악을 도구처럼 이용 (7절)’합니다. 만만한 약자들이 일차 대상이지만 실은 타인을 전부 그렇게 대합니다. 자기 욕심을 따라 상대방을 대합니다. 이용하고 써먹고 함부로 부립니다. 그런데 악한 지도자들만 이러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9절부터 11절에 나오는 ‘평안히 사는 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면, 적극적으로 악에 가담하지는 않지만 악이 빚어내는 열매와 혜택을 입고 즐기는 이들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평범하고 무해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악의 동조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핑계를 댄다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태도는 어때야 할 지 생각해 봅니다. 선과 악을 또렷하게 구분해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평소에 핑계로 대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인지 몰랐다, 남들도 다 하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대안이 없지 않느냐, 남들 사정까지 살필 여유가 없다…’ 악은 가깝고 선은 멀게 느껴집니다. 악은 쉽고 선은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악은 평범하고 선은 까탈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평안히 사는 여자’가 되나 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공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주소서 입으로는 기도하면서 나의 의식과 행동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어리석습니다. 십자가의 은혜 아래에 있는 것은 좋아하면서 타인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일엔 늘 굼뜨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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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104 이사야32장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이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사32:1)

    “그러나 고귀한 사람은 고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 고귀한 뜻을 펼치며 삽니다.”(사32:8)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비록 삼림이 우박에 쓰러지고 성읍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도,) 씨를 뿌리는 곳마다 댈 물이 넉넉하고,어디에서나 안심하고 소와 나귀를 놓아 키울 수 있으니, 너희는 복이 있다.”(사32:17-20)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한국에서도 나는 일년 중 예수님이 나신 성탄절을 가장 기다렸다. 추위에 약한 나는 겨울을 보내는것을 힘들어하는데,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이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10월부터 좋아하는 성탄 찬양들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그렇게 하루하루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이 큰 기쁨이다.
    미국에 오니 벌써 아이튠즈에는 새로운 크리스마스 앨범들이 올라오고, 상점들도 트리와 오너먼트 등 성탄절을 준비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할로윈을 가열차게 보내고, 추수감사절을 지나 성탄절로 이어지는 가을겨울. 왕 되신 예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묵상하며 이 계절을 보내고 싶다.

    오늘 이사야 32장 첫 절에서는 ‘장차 한 왕이 나와서…’라고 시작한다. 이 땅의 유일한 왕이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단번에 떠올리게 된다. 장차오실 왕인 예수님. 이 구절 읽으니 자연스럽게 성탄절이 떠오르게 되었던 것 같다. 높고 높은 보좌를 떠나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매번 마음이 울컥한다. 감사와 기쁨을 지나 다함없는 은혜로 인한 감격이 잔잔하게 자리잡게 된다.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은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한다.

    <공의> 쩨데크 / 올바른 상태(righteousness, 분배적 정의),
    <공평> 미쉬팟 / 그릇된 것을 바로잡음”(justice, 교정적 정의)
    (_사귐의 소리 묵상 해석에서 인용)

    장차 나실 한 왕은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신다. 이 공의는 ‘올바른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통치자들은 ‘공평’으로 다스리는데, ‘그릇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을 의미한다.

    통치자들이 그릇된 것을 바로 잡은 공평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공평의 기준. 정의의 기준이 그들안에 마련되어 있을 때, 공정함으로 다스리고 그릇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저마다 자기의 기준이 옳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기준에 대한 정의를 수없이 주장해도, 결국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가게된다. 혹, 그것이 선량한 기준이며 타인을 위한 길이라고 해도, 주변의 어려움들에 봉착하게 되거나 마음을 놓게 되면 힘을 못쓰고 그대로 주저 앉게 된다. 이것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공평의 기준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상대적인 기준이 될 때, 결국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떤것을 기준으로 그릇된 것을 바로 잡는 ‘공평’을 행사할 수 있는가?
    먼저 ‘공의’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져야 한다. 공평의 기준은 ‘공의’로 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을 ‘공의로 다스릴 왕’이라고 말한다.

    왜 하나님이 공의의 왕이신가? 공의는 ‘올바른 상태’를 말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올바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본성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해 회개해야 죄사함을 받고, 그리스도로 인해 의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올바른 상태 자체이며, 그것을 행사하실 수 있는 권한을 갖고 계신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아무리 ‘공평’으로 다스린다고 한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다면 불완전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된 상태는 평화와 평안으로 나타난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사32:17)

    통치자들의 공평은 하나님의 공의로 부터 나오고, 그 공의가 다스리는 곳은 평화와 평안과 안전이다.

    나의 내면에 평안함이 없다면 반드시 내 안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있는지를 점검해봐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있는 나의 죄나 연약함, 불안함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막고, 다스림을 거부하게 한다.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깊은 평안함을 빼앗을 것이다.
    이 논리는 정확하게 가정이나 나라에도 적용이 된다. 깨어진 수많은 가정들이나 분쟁지역의 국가들만 봐도 ‘하나님의 공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없는 곳. 하나님의 공의가 없는 그곳에 서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막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이 다스리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와 평안, 안전이 우리 안에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미국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미국의 차기 리더가 누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어려운 미국 내 상황이나 어지러운 국제정세가 미국의 리더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 안에 불안감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어느 때 보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필요한 때이다. 그러하기에 오늘 나를 부르신 이 땅에 서서 공의의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시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평안과 평화를 주시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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