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30장: 위기 앞에서 

해설:

1절부터 7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이집트에 의존하려는 유다를 책망하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주전 705-701년 사이에 유다는 앗시리아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이집트에 사절단을 보냈다. 주님은 그것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고 하신다(1절). 그들은 이집트가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것은 망상일 뿐이다(2-3절). 이집트로 내려간 사신들은 수치와 치욕만 안고 돌아올 것이다(4-6절). 이집트는 “맥 못쓰는 라합”(7절, “라합”은 바다에 사는 신화적 괴물을 뜻한다)이 되었기 때문이다. 

8절부터 17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유다의 죄악을 고발한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유다 백성에게 가서 주님의 뜻을 전하라고 하신다(8절). 그들은 “반역하는 백성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손”(9절)이다. 그들은 선견자와 예언자의 말을 거부하고(10-11절) “억압과 사악한 일을 옳은 일로 여겨서, 그것에 의지하였”(12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심판을 당할 것이다(13-14절). 그들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15절).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16절). 따라서 심판 밖에 답이 없다(17절).

18절부터 26절까지는 심판 후에 올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예언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마지막 행동이 아니다. 이사야는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신다”(18절)고 전한다. 그 날이 오면, 주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고(19절) 스승들을 보내셔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20-21절). 그들은 섬기던 우상들을 스스로 내다 버릴 것이며(22절), 수고하는 대로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이다(23절). 그들이 기르는 가축까지도 은택을 입을 것이며(24절) 산천과 초목도 번성할 것이다(25절). 그 날이 오면, 하나님의 빛이 깃들어 모든 상처와 장애가 치유될 것이다(26절). 

27절부터 33절은 앗시리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은 앗시리아를 “진노의 몽둥이”로 사용하셔서 여러 나라들을 심판하셨다. 그것은 앗시리아의 죄악을 묵인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선택한 죄악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이다. 때가 이르러 그들의 죄악의 분량이 채워질 때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심판을 시작하실 것이다(27-28절). 그 때가 되면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보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29-33절).

묵상:

히스기야 왕은 앗시리아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사절단을 이집트로 보냅니다. 그것은 거대 제국으로부터의 위협을 또 다른 거대 제국의 힘으로 막아 보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차제에 유다를 군사 대국으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왕실의 내분으로 인해 이빨과 발톱이 다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를 “맥 못쓰는 라합”(7절, 개역개정 “가만히 가라앉은 라합”)이라고 부르십니다. 겉으로는 무서운 괴물처럼 보이지만 아무 힘도 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계획은 “수치와 치욕”(5절)만을 안겨 줄 것입니다. 

앗시리아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그들이 할 일은 이집트에 사신을 보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그들 자신의 타락상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억압과 사악한 일을 옳은 일로 여겨서, 그것에 의지하였”(12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붕괴될 성벽”처럼 되고 “깨어진 항아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13절).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너희는 회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15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살 길은 하나님께 돌이키는 길 뿐인데,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의 행동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삶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궁여지책으로 위기를 때우려 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합니다. 하지만 위기 앞에서 자기를 고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그 위기를 모면할 궁리만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찾기 보다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묘수를 찾고 계획을 세우고 수단을 구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조금만” 도와 주시기를 청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주권자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 알파의 도움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11절)을 업신여기는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30장: 위기 앞에서 ”

  1. 지금의 현실이 약소국가가 강대국을 믿고 의존하는 형편입니다, 전지전능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온갖 첨단과학기술을 동원하여 대량학살무기를 만드는데 온 힘을 쏟아 붓고있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Pax Romana 가아니고 진정한 Shalom을 원합니다. 새나라와 새땅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마라나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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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성경에서 현실의 모습을 본다는게 참 무서운 일이구나 싶습니다. 말씀을 현실 여기 저기에 ‘갔다 붙이는’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은 말씀의 권위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입니다. 신자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 담긴 책입니다. 성경이 지금 우리가 보는 책의 형태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성경 안에 담긴 글들을 읽고 이해하는 방식이 무척 많다는 것과 읽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이해의 폭과 넓이도 달라진다는 것도 우리는 경험해 보았습니다. 읽는 이가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해석과 적용이 보편성을 가지려면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사적인 견해나 발견, 관찰, 깨달음, 가설 같은 것이 학문으로 자리를 잡기 까지는 오랜 시간 속에서 여러 단계의 검증과 실험을 거쳐야 합니다. 객관성의 확보는 ‘감’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감’은 시작일 뿐 인내와 성실, 협동, 겸손 등이 다 필요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요즘 한국에서 나오는 뉴스들이 떠올랐습니다. 2절에서 ‘그들이 먼저 내 뜻을 묻지 않고’ 이집트 파라오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부분에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최고 권력자들이 나라를 경영하는 일을 놓고 누군가의 뜻을 묻는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이스라엘이 주의 뜻을 묻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집트를 의지했다는 사실을 야단칩니다. 기독교의 장로가 최고의 자리에 있었을 때 그는 매일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와 그의 기독교 인맥은 하나님께 수시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랬으나 그의 정권은 좋은 결실을 내지 못했습니다. 현재 권력자는 손바닥에 ‘왕’자를 썼습니다. 영적으로 용한 도사들에게서 조언을 받는답니다. 성경을 잘 풀이한다는 이들, 영험한 것을 체험한다는 이들, 남들은 모르는 세계를 보고 안다는 이들…이런 이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선한 것인지요. 주님의 뜻을 먼저 묻는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되려 무서워질 때가 있습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 연민과 부드러움이 없는 사람에게 말씀은 ‘몽둥이’가 되기도 한다는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주님 앞에, 서로에게 겸손하게 머리 숙일 줄 아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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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101 이사야30장

    “이 백성은 반역하는 백성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손으로서, 주님의 율법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자손이다.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미리 앞일을 내다보지 말아라!”하며, 예언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사실을 예언하지 말아라! 우리를 격려하는 말이나 하여라! 가상현실을 예언하여라!
    그 길에서 떠나거라! 그 길에서 벗어나거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야기는 우리 앞에서 제발 그쳐라”하고 말한다.”(사30:9-11)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신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복되도다.”(사30:18)

    유다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거역했던 사람들이였는지 이 말씀을 통해 보게 된다. 그들은 반역, 거짓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죄를 범하게 되었다. 어쩌다? 우연히? 죄를 범한 것이 아니였다. 하나님이 수많은 시간을 걸쳐 많은 예언자들과 다양한 방식들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듣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라고 하며, 심지어 하나님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인간의 죄의 단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유다백성들도 처음에는 가벼운 죄를 지었을 것이다. “실수로, 어쩌다가, 한번쯤은 괜찮겠지…” 그러나 죄의 경중을 내가 결정하며, 죄와 타협하는 순간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까지 이르게 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하와는 분명히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뱀이 그녀에게 선악과에 대해 보여주며 이야기 할 때, 하와의 눈과 마음은 이미 빼앗긴 상태였다. 처음엔 맛있어 보였고, 그 다음엔 보기에 좋아 보였으며, 결국 나를 지혜롭게 만들어 줄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죄에 눈길을 주는 순간 먹음직해 보이고, 보암직해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사람은 죄의 열매가 아름답게 비춰진다. 그리고 거기서 멈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가 나를 완전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한번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가볍게 여겼던 죄와 타협하는 순간 그 죄를 범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내 안에도 일상에서 짓는 죄들을 가벼히 여기지는 않았는지 점검해본다. 쉽게 내뱉는 말, 이것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영역들을 있지 않았나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타협하는 순간 나의 죄가 하나님을 향해 칼끝을 겨누게 될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도, 처음에는 그저 위기를 모면하고자 또는 그 상황에 대한 나름의 해법으로 죄와 타협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결국 그 시작은 엄청난 부정과 부패와 비리로 더이상 손쓸 수 없을 만큼 곪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보편화된 가치로 인정되기 시작할 때,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죄가 스스로를 묶게 된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자. 작은 죄라도 주님이 미워하신 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주님 앞에 나아가 오늘도 내가 가볍게 여기는 죄가 있었는지 여쭙고, 회개하자.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시다. 회개하며 마음을 찢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공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 분이시며, 인자하신 분이심을 기억하자. 내 죄가 주홍빛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삶, 우리의 가정, 이 나라와 온 열방 가운데 미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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