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22장: 나라를 위한 통곡

해설:

1절부터 14절까지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환상 골짜기”(개역개정 “이상 골짜기”, 1절, 5절)는 예루살렘을 떠받치고 있는 시온 산 주변의 골짜기를 가리킨다. 이것은 환상을 좋아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영적 타락을 비꼬는 표현이다. 이 예언의 역사적 배경은 히스기야 왕이 군사대국화를 시도하다가 앗시리아에게 침략 당한 사건이다. 

이 전쟁에서 유다가 패할 것인데,  그 이유는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행태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었기 때문이다(2-3절). 이사야는 이 참담한 미래를 예언하면서 통곡한다(4절). 앞으로 일어날 일이 그의 눈에 선하게 보였기 때문이다(5절). 

“엘람 군대”와 “기르 군대”(6절)는 앗시리아와 함께 유다를 공격 했던 나라들이다. 앗시리아는 예루살렘 성을 함락 시키지는 못했지만, 심대한 피해를 입혔다(7-10절). 그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까닭이다(11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통회하며 회개 하기를 촉구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먹고 마시며 죄악을 즐겼다(11-13절). 그들은 심판을 스스로 끌어 들였다(14절).

15절부터 19절까지는 히스기아 왕을 보좌 했던 궁내대신 셉나에 대한 예언이다. 그는 예루살렘 성 안에 자신을 위해 화려한 무덤을 건축했다(16절). 국가의 안위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신의 영화를 키우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끌어 내리겠다고 하신다(17-19절).

20절부터 25절은 셉나가 몰락한 후에 그 자리에 앉게 될 엘리야김에 대한 예언이다. 그도 역시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국정을 도맡게 될 것이다. 그는 셉나와 달리 정사를 훌륭하게 살펴서 그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겠지만, 그의 노력은 유다의 운명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심판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묵상:

지도자의 책임은 시대를 분별하고 국민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위기를 당했을 때 지도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 해집니다. 앗시리아의 공격으로 인해 위기 앞에 처했을 때 유다의 지도자들은 백성과 함께 회개하고 바른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13절)면서 닥쳐 올 위기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이런 와중에 셉나는 자신의 무덤을 건축하는 일에 막대한 재정과 인원을 동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백성을 내버려 두고 먼저 도망 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로 세움 받은 사람들은  국가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국민의 안위를 위해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지도자로 세움 받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것을 봅니다. 가진 사람들이 제 각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과 불의를 일삼는 것을 보면 국민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자기 살 길만 찾습니다.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는 ‘막 가자 식’의 풍조가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면 그 나라의 미래는 불을 보듯 분명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마음에 조국의 정치적 현실이 생각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몸 붙여 살고 있는 미국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처럼 “다들 비켜라! 혼자서 통할 터이니, 나를 내버려 두어라!”(4절)고 말하고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22장: 나라를 위한 통곡”

  1. 지금 조국과 살고있는 미국에 대한 주님의 경고를 2600년전에 예언 하신 말씀입니다. 정치가들이 부패했을뿐만 아니라 polarization이 매우 심각합니다, 지금이라도 영적 대각성을 이루고 모두가 십자가밑에서 무릎을 꿇으면 살수있는것을 세상에 알리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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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미국 지사 근무를 발령 받은 남편이 한 달 정도 먼저 오고, 나와 아이들은 다음에 왔습니다. 30년 전입니다. 그 때 떠나온 한국은 지금의 한국과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때 도착한 미국도 지금 살고 있는 미국과 많이 달랐던 걸로 기억합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이 다른데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게 과연 몇 개나 있을까요. 겉이 달라지는건 세월 때문이라고 치고, 속이 달라지는 것도 세월이 스며들어서 일까요. 나이가 들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얼굴은 고유한 생김새 만을 뜻하는게 아니지요. 인상과 분위기, 표정과 성품을 합쳐서 얼굴이라고 하는거지요. 겉에 보이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나의 인격을 잘 대변해 주기를 바래서 집에 있을 땐 ‘맨 얼굴’ ‘민 낯’이지만 밖에 나갈 땐 얼굴을 매만지고 다듬어서 나갑니다. 사회는 어떤가요. 사회의 얼굴이 겉에 보이는 도시의 화려함, 자연의 넉넉함이라면 겉에 보이지 않는 사회의 ‘인격’은 어떤 것일까요. 미국이 전과 같지 않다는 말도 많이 합니다.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닐겁니다. 국격이, 사회의 인격과 품위가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인격 하락이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끌어 올릴 수 있는지 연구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많이 있을겁니다. 아는 것 별로 없는 할머니지만 경제가 문제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과히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대 국가들의 경제관, 경제철학이 ‘내일 죽을 지 모르니 오늘 먹고 마시자’는 예루살렘 백성의 경제관과 철학을 닮았습니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을 자랑하고, 없는 자는 없는 것을 한탄하며 자기 배만 생각합니다. 다윗 성에 갈라진 틈을 조사하고, 저수지에 물을 모으고, 낡은 집들을 헐어 그 돌을 성벽 수리에 쓰는 (9,10,11절) 지혜는 있었어도 백성과 임금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You looked and looked and looked, but you never looked to him who gave you this city (메시지 성경). 경제를 보는 눈은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를 알려줍니다. 집안 살림, 사회 정책, 나라 재정이 규모만 다를 뿐 운용하는 사람의 철학에 달렸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사야를 읽으면서,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을 믿느냐 부귀한 강대국에 의존하느냐 앞에서 잘못 결정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고 이해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믿어야지. 눈에 보이는 ‘힘’에 굴복하면 안 되지. 단순하게 표피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의 경제관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담겨 있지 않으면, 나의 세계관 안에 버림 받은 자, 연약한 자, 모자라는 자들이나 내가 동등한 인격체라는 깨달음이 들어 있지 않으면 자기만 좋은 데 묻히겠다고 높은 바위에 무덤을 파는 셉나 (16절)보다 나을 게 없는겁니다. 맘몬 (재물, 자원, 물질)을 믿는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맘몬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우상숭배요 가증한 일인겁니다. ‘예수 주식회사’가 된 교회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만듭니다. ‘예수 주식회사’의 건물에 박힌 못이 삭아서 부러져 떨어질 것이고 거기에 매달린 것도 다 깨져버릴 것이라는 말씀 앞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게 하소서. 음식을 덜 먹어서 소식 뿐 아니라 욕심을 덜어내는 소식을 하고 싶습니다. 나 혼자 넓게 앉아 편하게 가는 여행길이 아니라 옆 사람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살피면서 얘기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누는 여행길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심판을 늦춰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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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023 이사야22장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

    “그 날에,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통독하고 슬피 울라고 하셨다. 머리털을 밀고, 상복을 몸에 두르라고 하셨다.
    그런데 너희가 어떻게 하였느냐?너희는 오히려 흥청망청 소를 잡고 양을 잡고,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하였다.
    그래서 만군의 주님께서 나의 귀에대고 말씀하셨다.
    “이 죄는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한다.”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22:12-14)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것을 말씀하시지만, 백성들은 들은채도 안했다. 오히려 “내일 죽을 것이니 흥청망청 마음껏 살다가자.”하며, 더 먹고 마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심판에 대해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죽어서도 영원한 형벌 가운데로 들어갈 것을 말씀하신다.
    그들의 이러한 교만하고, 악한 태도는 평소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이스라엘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전쟁에 죽은 사람들은 칼을 맞아 죽은 것도 아니고, 싸우다가 죽은 것도 아니다.
    너희 지도자들은 다 도망치기에 바빴고, 활도 한 번 쏘아보지 못하고 사로잡혔다.
    사로잡힌 너희들도, 아직 적군이 멀리 있는데도,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다가 붙잡혀서 포로가 되었다.”(사22:2-3)

    전쟁이 왔을 때, 그들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버려두고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가기 바빴다. 적군이 멀리 있는데도 싸워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도망하는 사람들. 이미 그들은 전쟁이 나기도 전에 패배한 사람들이었다. 전쟁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만 봐도 그들의 지도자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자기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 살았는지 엿볼 수 있다.

    그러니 하나님이 회개와 심판을 말씀하셔도, 엎드리고 회개하기는 커녕 어차피 죽을거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리자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은 반성은 커녕 오만과 교만, 욕심과 자만으로 얼룩진 타락한 백성들에게 진노하셨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 사람의 리더가 그 공동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보게 된다. 지도자는 자신의 선택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자신에게는 단호하게 대하며 겸손해야 한다. 또 선출된 권력이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망각한채 이 권력과 명예가 영원한 것처럼 행동하고, 사유화 시키다보면 어느순간 자정능력을 잃고 자신의 소견대로 권력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게 가장 고통받는 자들은 백성들이다.
    비록 악한 왕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고통의 소리를 들으신다. 그리고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여신다. 바로 회개와 통회하는 마음.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가난한 마음이 어떠한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설령 악한 지도자로 인해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고 해도 우리가 살 수 있게 하는 소망이 된다. 그러나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음에도 이들의 교만한 마음은 더 악한길로 가게 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이다. 죄를 자복하며, 엎드리고 진심으로 통회하는 심령.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회개’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회개의 길이 아닌 더 악한 길을 선택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길로 가지 않고, 마음을 돌이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이자 축복이 아닐까?

    아침에 생각난 몇 가지 일들에 대해 회개할 것에 대한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며, 나의 죄를 자복했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서 나는 주님의 은혜와 긍휼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러면서 내 마음 깊은 심령가운데, 이런 회개의 기도를 일으키신 것이 전적인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잘먹고, 잘살며 남들앞에 괜찮아 보이는 무언가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하나님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티끌같은 죄라도 사랑하지 않는 것. 오직 내 안에 예수님만 사셔서 그분만 존귀케 되시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그 과정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다.

    깨닫는 은혜와 순종의 행동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경험했던 아침을 보내고, 묵상을 하기 위에 자리에 앉았는데- 동일한 마음을 주신다.
    나에게 빛으로 오셔서 어둠을 몰아내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이 땅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듣는 것에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그래서 구원의 이르는 길에 서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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