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20장: 나의 도움은 어디에 있는가?

해설:

불레셋의 아스돗 왕은 앗시리아에게 대항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려 한다. 이 연합 전선에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군사력에 있어서 가장 믿을만한 나라들이었다. 당시 에티오피아 왕실이 이집트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라고 표현했다. 아스돗 왕은 유다에게 사절단을 보내어 반앗시리아 연합군에 참여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 사르곤이 다르단 장군을 보내어 불레셋의 수도 아스돗을 점령하고(1절), 아스돗의 통치자 야마니는 이집트로 도피한다.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겉옷을 벗고 맨발로 다니라고 말씀하신다(2절). 이것을 ‘예언자의 상징행동’이라고 부른다. 행동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 명령에 따라 이사야는 3년 동안 엉덩이까지 드러나도록 벌거벗은 채 맨발로 지낸다. 예언자로서 그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나 이사야는 순종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예언을 주신다. 불레셋의 요청을 따라 앗시리아에 맞선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 당할 것이며, 이집트 백성은 이사야처럼 벗은 몸에 맨발로 포로가 되어 끌려 갈 것이다(3-4절). 그렇게 되면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를 의지하던 나라들은 두려워 떨 것이다(5절). 이집트가 멸망한 마당에 의지할 만한 다른 나라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해변에 사는 백성”(6절)은 불레셋 사람들을 의미한다.  

묵상:

주전 3천 년 즈음부터 시작된 이집트 왕국은 주전 664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 당하기까지 절대 제국으로 위세를 떨쳤습니다. 위로는 지중해가 있고 좌우편에는 거대한 사막 지대가 있어서 외세의 침략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집트와 가까운 지역에 있었던 불레셋이나 이스라엘, 유다는 감히 이집트를 넘보지 못했고, 팔레스타인 북쪽과 동쪽에 형성된 제국들은 사막 지역을 지나 이집트를 공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 가끔 참전하여 유익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불레셋, 이스라엘, 유다 같은 작은 나라들은 자주 이집트에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곤 했습니다. 

앗시리아가 불레셋을 침략했을 때, 이사야는 벌거벗은 몸에 맨발로 지내면서 삼 년 후에 이집트 백성이 자신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에게 기대어 앗시리아로부터의 위협을 막아내려 했던 유다 왕실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끊임없는 왕실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국력이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앗시리아 왕 사르곤은 전쟁 일지에서 이집트를 “상한 갈대”라고 묘사했던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대단한 것 같지만 실은 속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이사야의 행동과 그가 전한 예언을 보고 들은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을 것입니다. 2천 5백 년 넘게 한 번도 외세에 침략 당한 적이 없는 이집트가 앗시리아에게 침략 당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삼 년 후에 그 일은 결국 일어났고, 그 이후로 이집트는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에 의해 차례로 지배 당하면서 이름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집트가 앗시리아에 의해 침공 당할 때 불레셋 백성들은 “우리가 의지하던 나라, 앗시리아 왕에게서 구해 달라고, 우리를 살려 달라고, 도움을 청한 나라가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어디로 피해야 한단 말이냐?”(6절) 하고 탄식합니다. 그들은 겉모습에 속아 희망이 될 수 없는 것을 희망하고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저 옛날, 순례자들이 불렀던 노래가 생각 납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시 121:1-2). 지금 나는 무엇을 희망하고 있고 무엇에 의지하고 있는지 잠잠히 돌아 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20장: 나의 도움은 어디에 있는가?”

  1. 나라와 나라가 연합해서 전쟁을 하는 세대입니다, 첨단 과학으로 대량학살 무기와 핵으로 무장된 군사력에 겁먹지말고 전지전능의 사랑의 하나님을 기리고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폭풍이 다가처와도 십자가의 은혜를 꼭붙잡고 마음의 평안을 갖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온세상이 점점더 혼란해지는것은 새하늘과 새땅이 가까이 오고있는 징조인것 같습니다. 마지막 숨쉴때까지 말씀을가지고 각자의 삶의 영역에 나아가 빛과 소금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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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지금도 도움이 어디서 올까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람과 집단이 있습니다. 종교의 유무나 종류에 관계 없이 어디선가 구조와 자선의 손길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위급한 때를 지나지 않고 산 사람은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 없었던 사람, 그 누구의 관심을 받지 않은채 살아남은 사람은 없습니다. 생명을 유지하며 산다는건 도움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됩니다.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면서 이집트와 이디오피아의 쇠락을 알렸습니다. 그를 보면서 나도 저런 행색이 되면 어쩌나, 저 사람 말하듯 우리 모두 길을 헐벗은채 헤매고 다니지는 않겠나…하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지금 길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듯한 무숙자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때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 순간에, 곳곳에, 우리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모습으로 -혹은 더 어려운 모습으로- 사는 난민과 이재민, 전쟁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숫자가 매일 늘어나고 있을 겁니다. 도움이 어디서 올까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산다는 말은 서로를 도우며 산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대국에 기대어 그들을 믿고 산 이스라엘이 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말은 서로에게서 눈을 떼라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며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살아 있음, 살아 감, 삶을 유지함…이런 말 속에 들어 있는 신성한 명령을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도움을 받으며 오늘 나도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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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020 이사야20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인가?>

    “그 해에 주님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시켜서 말씀하셨더.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허리에 두른 베 옷을 벗고, 밭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씀대로, 옷을 벗고 맨발로 다녔다.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종 이사야가 삼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면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게 표징과 징조가 된 것처럼,
    앗시리아 왕이, 이집트에서 잡은 포로와 에티오피아에서 잡은 포로를, 젊은이나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벗은 몸과 맨발로 끌고 갈 것이니, 이집트 사람이 수치스럽게도 그들의 엉덩이까지 드러낸채로 끌려갈 것이다.”(사20:2-4)

    강성했던 이집트. 유다는 그런 이집트에게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도 앗시리아의 포로가 될 것인데, 어떻게 끌려가게 될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이사야 선지자가에게 허리에 두른 베 옷을 벗고, 신을 벗은채로 3년을 다니게 하셨다. 3년 후 이사야 선지자의 모습처럼 아니, 그 보다 더 비참하고 수치스럽게 이집트 사람들을 앗시리아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저 말로 예언하게 하지 않으시고, 왜 이사야에게 3년이라는 시간동안 벗은채로 다니게 하셨을까?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사야의 순종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말이 3년이지, 선지자가 벌거벗고, 그 당시 초강대국을 상대로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예언한다면 보나마나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가 아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
    자신의 수치심이나 명성에 금이 갈 것에 대한 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는 것이 이사야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다.

    유다를 포함하여 에돔, 모압, 블레셋 등은 앗시리아 왕의 침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기력한 이집트와 에디오피아를 의지했다. 살 길을 찾기 위해 강해보이고, 안전한 길을 찾는 사람들. 그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눈에 보이는 안정감과 안락함이었다.

    수치와 모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하신 것에 가치를 두고 순종한 이사야.
    그리고 완전해 보였던 세상의 기준에 가치를 둔 유다, 에돔, 모압, 블레셋.
    대비되는 이 상황을 통해, 진정한 소망과 생명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나는 눈에 보이는 가치와 방법에 나의 소망을 두는 사람인가?
    아니면 비록 당장은 이해할 수 없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하나님께만 가치를 둔 사람인가?
    오늘 묵상을 통해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편에 좋은 것을 선택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해답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시한번 나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정렬하길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만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 길 소망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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