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13장: 바빌론이 멸망하다

해설:

13장부터 27장에는 이스라엘 주변 열강 들에 대한 심판 예언이 묶여 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온 우주와 모든 생명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예언의 말씀 후에 주변 열강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묶어 놓은 것이다. 

13장은 바빌론에 대한 심판 예언이다. 성경에서 언급된 바빌론은 주전 612년에 메대 제국과 연합하여 앗시리아를 패망시킨 신바빌로니아를 가리킨다. 바빌론은 주변 민족들을 차례로 정복하는 중에 앗시리아의 침공을 간신히 버텨낸 유다를 멸망시킨다. 주전 597년의 일이다. 

바빌론의 잔인성은 앗시리아의 그것을 뛰어 넘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바빌론은 절대악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천년을 지속할 것 같던 바빌론은 주전 538년에 신흥 강국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고 만다. 이 때 메대(혹은 메디아) 제국이 페르시아를 도왔는데, 그래서 17절에 “메대 사람들”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히 구별한 사람들”(3절)을 불러내어 바빌론을 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페르시아 군대를 “주님의 군대”(5절)라고 부르신다. 그분이 심판하실 때 위대한 왕국 바빌론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 것이다”(19절).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심판 후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 떨 것이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에 앗시리아가 패망 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바빌론이 유다를 멸망시키고 신흥 강자로 위세를 떨칠 때에도 그 나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절대 왕국 바빌론은 백년을 채우지 못하고 지도에서 사라진다. 

그러므로 바빌론에 대한 심판을 예고한 이 예언은 당시 사람들에게 뜨악하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앗시리아도, 바빌론도 그리고 페르시아도 “주님의 날”(9절)을 맞았다. 

묵상: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찬란한 바빌론, 바빌로니아 사람의 영예요 자랑거리인 바빌론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때에,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 것이다”(19절)는 예언은 비단 바빌론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절대 강자가 되어 호령했던 모든 제국들에게도 해당되는 선언입니다. 인류 역사에 영원한 제국, 영원한 권세는 없었습니다. 한 시대를 호령하고 사라질 뿐이었습니다. 인간의 권력이 커질수록 죄악도 커졌기 때문입니다. 절대 군주들은 하나같이 신의 자리에 앉은 듯 죄악을 일삼아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인간이 죄악을 쌓아갈 때, 심판은 반드시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 날은 절대로 연기되지 않는다”(22절)고 경고합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 제자들이 성전의 위용을 보고 감동하자, 예수님은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한 개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눅 21:6)라고 하셨습니다. 정치 권력 뿐 아니라 종교적인 것들조차도 타락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눈동자”로 여기고 있던 성전이 심판 받으리라는 사실은 털끝만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바라 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 땅의 그 어느 것에도 절대적 신뢰를 두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히 자중하며 작은 것에 마음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위대한 나라”가 아니라 “거룩한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고, “큰 교회”가 아니라 “진실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만사형통”이 아니라 “바르게 살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땅의 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제국과 함께 소멸하지만,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그 나라와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13장: 바빌론이 멸망하다”

  1. 인류역사가 말합니다, 강대국일수록 사치와 쾌락과 부패가 심해서 멸망하고 사회와 가정이 편안하고 부유해도 주님이 함께하시지 않으시면 결국 퇴패하는것을 보여줍니다. 오직 영원한 평강은 주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의 향기를 이웃에게 풍기는 삶을 살아내는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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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나라도 개인도 권력의 맛을 보면 빠져 나오기 어려운가 봅니다. 무력과 경제력이 든든한 나라는 부강한 나라라고 스스로를 높이고 주변에서도 우러러 보며 부러워합니다. 개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서 웬만한 재산과 명예를 가졌다 싶으면 어깨와 눈에 힘이 들어갑니다. 좋게 말하면 당당한거고 정확하게는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가르치신 교훈 가운데 첫번째가 ‘마음이 가난한 자는…’입니다. 여기서 마음이라는 것은 영혼의 상태일테고, 하나님과 가깝지 않다고 느낄 때의 안타까움을 가난이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거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고 느껴지는 마음을 허투루 여기지 말라는 뜻일겁니다.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될 때,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어 헛헛할 때가 하나님께 나올 시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강한 사람, 잘 사는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일입니다. 부족함이 없이 사는 사람은 -가난한 마음 상태를 느낄 겨를 없이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앞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어디쯤에 있는지가 더 큰 관심사가 됩니다. 바빌론 제국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제국이면서 매사에 부족함이 없기를 바라는 우리의 바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어메리컨 드림’의 상징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어메리컨 드림의 꿈은 여전합니다. 노력하면 자기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어메리카라는 것이 어메리컨 드림의 핵심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어메리카라는 겁니다. 바빌론이 망하고 페르시아도, 로마도 다 망했으니 현대의 열강들도 망할 것이라고 이해하고 본문을 덮는 것은 너무 쉬운 묵상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흥망성쇠의 싸이클을 가르치려고 이사야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이 겪게 될 끔찍한 일들을 동원해 멸망의 때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목적이 부흥의 때를 즐겼으니 이제 쇠락의 우울함을 겪어 보아라 일 수는 없겠습니다. 할 수 있었을 때 하지 않았던 것들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되면 죄로 바뀌어 내 앞에 섭니다. 잘 살 때, 강할 때, 멋질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았던 바빌론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바빌론이 전에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여서’ 사람들의 자랑거리였지만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바빌론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어떤 일들이었을까요 바빌론이 하지 않은 일은. 서로를 돌보지 않은 일, 자신을 낮추지 않은 일, 욕심을 조절하지 않은 일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이름 때문에 성적인 문란이 가장 큰 죄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타인에게 나의 죄를 대신 씌우는 ‘프레이밍’으로 발전합니다. 아닐겁니다. 바빌론 제국의 죄는 공의와 평강을 추구하지 않은 죄, 기울대로 기운 세상을 그대로 방치한 죄일겁니다. 나의 비겁함과 소심함이 이 사회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까지 가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의 시시한 잘난 체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해도,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는 나의 불성실함을 안 좋게 보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는 모습을 내내 두고 보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멸망의 예언을 나의 메시지로 듣게 하시고, 오늘 우리 세대의 과제로 받게 하시고 기도와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인으로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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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012 이사야 13장

    <영원한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찬란한 바빌론, 바빌로니아 사람의 영예요 자랑거리인 바빌론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때에,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 것이다.
    그 곳에는 영원토록 사람이 살지 못하며, 오고오는 세대에도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아랍 사람도 거기에는 장막을 치지 않으며, 목자들도 거기에서는 양 떼에게 풀을 뜯기지 않을 것이다.” (사13:19-20)

    당대에 강성했던 바벨론은 유다를 멸망시키고, 그 위세를 곤고하게 다지는듯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바빌론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였다.
    이사야 13장은 바빌론에 대한 예언의 메세지가 담겨있다.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바빌론에 대한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전세계 많은 나라들 중 가장 찬란했던 바빌론이었지만, 그들이 영예요, 자랑거리고 삼았던 그들의 찬란함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영원토록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욕심으로 쌓아올린 공든탑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 심판대에 서게 되는 나라가 비단 바빌론 뿐일까? 전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에 와서 이 땅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님을 떠나 죄로 물든 영역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게된다. 불평등과 빈부격차, 주마다 다른 불안한 치안, 인종차별, 만연한 동성연애, 마약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린 노숙자들… 외부에서 보면 미국은 강대국이지만, 그 내부에는 곳곳에 생명이 없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의 박해를 피해 종교적 자유를 찾아 이 땅에 발을 내딛은 청교도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새롭게 세워진 미국이라는 이 나라가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소견을 옳은대로 행했을 때- 그 왕성했던 과거의 명성을 잃고, 내부적으로 신음하며 분쟁과 갈등으로 서서히 폐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평안함이 나의 의로 왔다고 생각한다면, 나 역시 오만의 길, 교만의 길, 죄로 인해 스스로 사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40:8)

    이 세상의 모든 것의 결국은 죽음이다. 모든 만물들은 끝이 있다. 그 때가 언제 올지는 알지 못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와 상황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이것도 그 끝이 있다.

    이사야의 예언으로 부터 모든 것이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계신 분.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시는 처음과 나중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를 만드셨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생명없는 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신 사실을 믿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찬란함과 평안함을 의지하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자. 유일한 생명의 빛이시며, 구원자가 되시는 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만 영원한 유일한 분이심을 믿자.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며, 얘배하고 높이는 삶을 살기를 갈망하며 기도하자.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도, 교회도, 미국도, 대한민국도, 온 나라와 열방도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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