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9장: 만군의 주님의 열심

해설:

1절부터 7절까지는 앗시리아에 의해 패망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다. “어둠 속에서 고통받던 백성”(1절)은 이민족의 압제 하에 있던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이방 사람이 사는 갈릴리”는 모두 이스라엘의 영토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이다(2절). 이민족의 압제로부터 구해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 미래를 바라보면서 기도 드린다(3-5절). 그는 미래에 일어날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한다. 이것을 “예언적 완료시제”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미래애 행하실 일에 대해 이미 완료된 것처럼 표현함으로써 그 확실성을 강조하는 어법이다.

그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다윗의 가문에서 장차 태어날 그 통치자에 대해 이사야는 네 가지의 표현을 사용한다(6절). 1) “놀라우신 조언자”(‘펠레 요아츠’, 개역개정 “기묘자, 모사”)는 탁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은 ‘엘 기뽀로’의 번역인데, 백전백승의 전투력을 가진 전사를 가리킨다. 3)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아비아드’의 번역인데,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백성을 돌보는 지도자를 가리킨다. 4) “평화의 왕”은 ‘샤르 살롬‘의 번역으로서 “섬기는 왕”이라는 의미다. 

구원자로 오실 왕은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섬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왕이 다스리게 되면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7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언하면서 이사야는,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8절 이하는 멸망 하기 이전의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다. 시기적으로 보자면, 앞의 예언(1-7절)보다 이전에 받은 예언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이를 것이라고 예고한다(8절). “에브라임”(9절)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 역사 후기에 에브라임 지파가 왕권과 귀족 세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마리아”는 북왕국의 수도였다. 그들은 심판을 직면하고 있음에도 교만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벽돌집이 무너지는 것“과  “뽕나무가 찍히는 것”(10절)은 왕이 살해 당하는 것에 대한 비유다. 멸망 하기 전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왕실은 모반과 암살로 인해 여섯 번이나 교체 되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데도 이스라엘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아 넣으신다(11-12절).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여전히 완고하다(1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장로와 고관들” 그리고 “거짓을 가르치는 예언자들”(14-15절)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심판에 직면한 가장 중요한 책임은 지도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16절). 하나님은 이 심판에서 사회적 약자들조차도 같은 화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모두가 속속들이 부패해 있었기 때문이다(17절). 그들을 불태운 것은 그들 자신의 악이다(18절). 나라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도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신다. 그들의 악행에 대한 진노 때문이다(19절).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 그들은 서로를 물고 뜯어 자멸할 것이다(20절).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두 지파 이름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참담한 골육상쟁의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21절). 하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다한 것이 아니다.      

묵상:

8절부터 21절까지 나오는 심판에 관한 예언은 주전 722년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밖으로는 주변 열강들에 의해, 내부로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으로 인해 쇠락해 가던 이스라엘은 결국 앗시리아의 공격을 받아 비참하게 멸망 됩니다. 이사야는, 그 모든 재앙이 그들의 악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들을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그들이 택한 죄악이 그들을 불살라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는 것을 내버려 두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내버려 둠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노의 끝에서 취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죄악을 따라 멸망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은 그 길로부터 우리를 돌이키기 위해 책망 하기도 하시고 호소하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끝내 돌이키지 않으려 할 때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재앙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받습니다. 탁월한 지혜와 능력으로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백성을 섬길 지도자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왕은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 그 왕권을 영원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7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복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빌로니아에게 멸망 당했던 남왕국 유다는 칠십여 년 후에 회복되었는데, 북왕국 이스라엘은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언은 실패한 예언인가? 이사야가 헛 소리를 듣고 예언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이 예언이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라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예수께서 오신 이후의 일입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체포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마 4:13)고 기록합니다. 그러면서 이사야 9장 1-2절을 인용합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실로, “한 아기”로 태어나신 메시아(그리스도)는 탁월한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모두가 불경건하여 악한 일을 하고, 입으로는 어리석은 말만”(17절) 하고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고통 받았고”(1절)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서”(2절)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영원한 나라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의 백성이 되며 그분은 그들의 왕이 되십니다. 

헨델은 오라토리오 ‘메시아’에서 세 곡(10, 11, 12)을 이 장에 할애합니다. 두 곡의 베이스 영창 후에 이어지는 “우리를 위해 나셨네”(For Unto Us a Child Is Born)라는 합창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인해 회복될 기쁨과 행복을 잘 표현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그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고, 장차 그분의 나라가 완성될 때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7절)이 그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9장: 만군의 주님의 열심”

  1. hurricane Helene 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그보다 더 큰 hurricane Milton 이 오고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손실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1년전 하마스의 공격으로 사망자와 피해가 점점 더커지고 두전쟁이 확산되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거짖말을 마구 하기에 민초들이 어두움에서 고통을 당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전능의 왕, 평화의 왕, 은혜의 예수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새하늘과 새땅을 소망으로 주님을 좀더알고 주님 사랑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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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들으면 처음엔 얼래고 달래면서 좋게 말하다 그래도 안되면 침묵을 선언하면서 겁을 주기도 합니다. silent treatment 를 하는건데 한시적으로 무시하고 포기한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침묵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대개 이런 경고를 합니다. ‘이제 엄마 아무 말 안할거야. 너 하고 싶은대로 해. 너가 엄마 말 안듣는데 엄마도 너 말 들을 수가 없지.’ 아이가 어릴 때는 백발백중 통하는 작전이지만 머리가 크면 잘 먹히지 않습니다. 엄마의 침묵을 불편하게 여겨야 효과가 있는 작전인데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면 침묵의 ‘협박’이 그다지 무섭지가 않아집니다. 아이한테 뿐 아니라 부부나 친구 사이에서도 silent treatment 는 자주 동원됩니다. 뭔가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상대방과 연락을 끊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때와 침묵하시는 때를 물리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사람 음성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고 모으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알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뭔 소리냐, 헛소리다, 그렇게 믿고 싶은거겠지…남들은 이렇게 말할지 몰라도 나의 내면에 울리는 주의 소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침묵하신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마음의 활기가 사라집니다. 무수한 질문들 만 생기고 걷기는 걷는데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고 앞으로 나가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하나님의 침묵은 내가 경험하는 일시적인 길잃음이나 경고와 같은 사일런트 트리트먼트가 아닐겁니다. 무수한 경고와 훈계를 했음에도 듣지 않는 완악하고 교만한 지도자에게 내리는 심판입니다. 침묵하는 상태는 관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의 신체 컨디션이 좀 안 좋아 보이면 이마를 짚어서 열이 있는지 보듯이 아이가 평상시보다 말수가 적은지 어떤지를 살펴서 내면의 온도를 잽니다. 사람은 거의 다 기분이 좋으면 말이 많아집니다. 침묵은 특별한 목적 속에서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대하는 태도와 반응에서 우리의 수준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하나님이 꼭 필요하기에, 사일런트 트리트먼트를 하시지 말라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침묵하시면 내가 살 수 없겠노라고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소서. 주의 은혜와 열심으로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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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008 이사야 9장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히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사9:6-7)

    “이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잘못 인도하니, 인도를 받는 백성이 멸망할 수 밖에 없다.”(사9”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유독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잘못 인도할 때, 그 백성은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가정에서는 가장, 또 사회에서는 사장이나 대표, 교회에서는 목사, 나라에서는 대통령 등..
    각 계층에 있는 리더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공동체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본다. 매일 급변하고 있는 중동의 정세만 봐도 리더들의 의해 결정되는 선택에 의해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생사의 길목에서 살고 죽는지를 목격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도 리더의 잘못된 선택으로부터 시작한 것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엿보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멸망은 궁극적으로 그 리더를 선택한 백성에게도 책임이 있다.

    모세 때문에 우리가 망하게 되었다고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과거의 더한 노예생활을 오히려 그리워했던 그들의 오만함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부터 비롯되었다. 그들의 그러한 죄성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나타난다. 임마누엘 하나님.
    다윗의 가문에서 장차 오실 왕인 예수그리스도 예언함으로 그들을 향한 심판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나타내신다.

    <그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다윗의 가문에서 장차 태어날 그 통치자에 대해 이사야는 네 가지의 표현을 사용한다(6절).
    1) “놀라우신 조언자”(‘펠레 요아츠’, 개역개정 “기묘자, 모사”)는 탁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은 ‘엘 기뽀로’의 번역인데, 백전백승의 전투력을 가진 전사를 가리킨다. 3)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아비아드’의 번역인데,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백성을 돌보는 지도자를 가리킨다.
    4) “평화의 왕”은 ‘샤르 살롬‘의 번역으로서 “섬기는 왕”이라는 의미다.

    구원자로 오실 왕은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섬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왕이 다스리게 되면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7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언 하면서 이사야는,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
    – [사귐의 소리]에서 발췌

    장차 오실 왕. 이사야의 예언에서 백성들을 이끌 리더가 어떤 존재인지, 참된 왕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지 말씀하신다. 온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왕이지만, 낮고 낮은 이땅에 오셔서 평화의 왕으로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
    바로 이 예수님을 닮는 삶이야 말로, 진정한 평화와 소망의 길로 가는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바로 지금.
    왕되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이 아픔과 고통, 분쟁과 다툼의 곳곳에 필요한 때이다.

    “왕이신 하나님.
    기묘자요, 모사이신 하나님. 지혜의 신이시자, 전지전능하신 분.
    인자와 자비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으로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 내가 사는 지역, 이 나라, 모든 분쟁지역과 아픔이 있는 곳, 하나님을 모르는 곳, 북한 땅, 온 나라와 열방 가운데 함께 하여주시고, 다스려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기심과 오만, 욕심으로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생명을 경시하는 각 나라의 리더들의 눈을 여셔서 그들이 깨닫게 하여주시고, 죄로부터…악한 길로 부터 돌이켜주시길 간절히 구합니다.
    절망 가운데에서도, 이제 망하게 되어 소망이 없어보이는 곳에서도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광야의 길을 내시며, 메마른 땅에 생수의 강물을 흐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길이 오늘날 고통받는 모든 자들에게 열리게 하여주시옵소서.
    미국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잘못된 지도자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선한길로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많은 자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리더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리더의 잘못을 질책하고, 원망하기 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피할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하여주시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리더들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여주시고, 본이 되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맡기신 양들을 돌볼 수 있게 하여주소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언제나 선하시고, 변함없으시고,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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