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8장: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

해설:

임마누엘에 대한 예언(7:13-17)을 주신 후,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서판을 가져다가 태어날 둘째 아들의 이름을 적으라고 하신다. 그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1절)로서 “노략이 속히 임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7장 16절과 17절에서 예언한 전쟁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그 예언을 받은 다음, 이사야는 아내와 동침하였고, 예언대로 아내는 임신한다(3절). 하나님은, 아이가 “아빠, 엄마”를 부를 줄 알기도 전에 앗시리아 왕이 “다마스쿠스”(시리아의 수도)와 “사마리아”(이스라엘의 수도)를 약탈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신다(4절).

5절부터 10절까지는 유다가 당할 일에 대한 예언이다. “실로아 물”(6절)은 예루살렘 바깥에서 성 안으로 물길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수로와 연못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에 대한 비유다.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좋아하니”라는 말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부터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책망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도움은 느리고 약해 보이고, 인간의 도움은 빠르고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유다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곤란을 당한다.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을 정복한 앗시리아는 내친 김에 유다까지 침공한다(7-8절). 이 전쟁으로 인해 유다는 심한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유다는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약속하신 대로 “임마누엘” 즉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8-10절).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인간적으로 제 아무리 좋은 전략과 군사력을 가지고 대비한다 해도 무용하다. 

주님께서는 이사야를 강력하게 사로잡으시고 “이 백성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11절)고 하신다. “이 백성의 길”은 다른 나라와의 동맹에 의지하는 길을 말한다. 12절과 13절에 “너희는”이라는 이인칭 복수 대명사가 나오는데, “너는”이라고 읽어야 한다. 이사야에게 주시는 예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 백성이 모의하는 음모”(12절)에 가담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 음모는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원조를 얻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진정으로 의지할 분은 하나님 뿐이고, 진정으로 두려워할 대상도 하나님 뿐이다(13절). 그분은 “이스라엘의 두 집안” 즉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에게 있어서 “성소”인 동시에 “거치는 돌”이 될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 즉 유다 백성에게는 “함정과 올가미”가 될 것이다(14절). 하나님은 구원자인 동시에 심판자이기 때문이다. 아니, 심판자이시기에 구원자이시다. 

이사야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예언을 적어서 밀봉해 보관한다(16절). 유다 백성이 자신의 예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당분간 예언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신이 예언한 대로 일이 일어나고 나면 봉인한 문서를 보여 주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비록 야곱의 집에서 얼굴을 돌리셔도”(17절)라는 말은 유다가 심판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사야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 “나는 주님을 의지하겠다”고 말한다. 심판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이 “시온 산에 계시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시는, 살아 있는 징표와 예표”(18절)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가 이렇게 뚜렷한데도 사람들은 “신접한 자와 무당”(20절)을 찾아간다. “산 자의 문제에 교훈과 지시를 받으려면 죽은 자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20절)는 미신 때문이다. 이것은 신접한 자와 무당을 찾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은근히 비꼬는 표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신에 속아 짙은 흑암에 떨어질 것이다(21-22절).

묵상:

“이 백성이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싫어하고”(6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유다 백성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실로아”는 기드론 계곡의 물을 지하 수로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끌어 들여 조성된 연못을 가리킵니다. 수로를 통해 실로암 연못으로 들어오는 물은 천천히 그리고 고요히 흘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에 대한 좋은 비유입니다. 하나님은 느리게, 조용하게, 보이지 않게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그 조용하고 느린 손길에 익숙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차게 넘쳐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물”(7절)을 더 좋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좀처럼 그렇게 드러나게, 신속하게, 드라마틱하게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급해져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사람에게 의지하고 군마를 의지하며 돈의 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 외에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무서워하지도 말아라”(12절)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분 안에 있으면 그 무엇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심판자인 그분은 또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의 두 얼굴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구원 행위의 일부입니다. 구원하실 뜻이 있기에 심판도 하십니다. 따라서 심판은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증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반증입니다. 그것을 믿기에 이사야는 “주님께서 비록 야곱의 집에서 얼굴을 돌리셔도, 나는 주님을 기다리겠다”(17절)고 고백합니다. 심판하시는 분은 또한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이사야서 8장: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

  1. 강국(super power) 들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중요시하고 대량학살 무기를을 생산할려고 안간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헤즈볼라 심지어 이란을 대항해서 전쟁을 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삼키려고 애매한 민초들을 살상하고 있습니다, 조국과 미국의 정치가들이 서로 중상모략하는 형편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오직 사랑과 은혜의 살아계신 전지전능의 하나님만 바라보고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이 살수있는 길인것을 세상에 선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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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강대국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다왕 아하스를 보면 신앙적인 측면에선 저러면 안되는데…비난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국제관계나 군사력 관련 일들을 떠올리면 아하스의 고민이 보다 리얼하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오늘 8장에서 이사야에게 쓰라고 하는 문구 ‘마헬살랄하스바스’는 지금 이 시간 어딘가에 써있을 것 같은, 어쩌면 한 군데가 아니라 여기 저기서 ‘노략이 속히 임할 것’ ‘빨리 빼앗길 것’이라는 빨간 경고문자가 셀폰 화면에 뜰 것 같은 무서운 상상도 하게 만듭니다. 임마누엘의 표적을 거부한 아하스는 마헬살랄하스바스의 표적도 거부했습니다. 시리아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협동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 겨우 살아 남았지만 유다를 기다린 것은 앗시리아라는 강국의 말발굽이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길이 하나 만은 아니어서 신학자들의 추천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필요나 상황에 ‘답’을 주기를 바래서 성경책을 펼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매일 아침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도 ‘오늘 하루 사는데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구하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을 때가 많습니다. 이사야서 같은 예언서도 그렇게 읽어야 하는지, 그렇게 읽는 것으로 충분한지 묻게 됩니다. 이사야와 아하스라는 인물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환경 등의 역사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 앞서서 바울의 서신들을 읽을 때 각 교회의 처지를 염두에 두었듯이 – 어떻게 읽고 묵상해야 좀 더 풍성하고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겠는지, 어떤 메세지가 이 시대 우리에게 양식이 되겠는지요. 그런 의미에서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개인적인 가르침 (나는 이제 이렇게 살아야지)을 넘어, 시대 정신에 대한 도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 시대의 기술 발전은 따라갈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또 그 변화에 적응할 것을 요구합니다. 변화를 위한 변화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과연 고요히 흐르는 물과 같이 살 수 있을까요. 마헬살렐하스바스의 뜻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속히’ ‘빨리’ 빼앗긴다, 당한다…눈 뜨고 코를 베이는 세상을 예언한 것이라면 지금이 그 세상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나는, 그리고 교회는 이사야의 경고에 어떻게 귀를 기울여야 할까요. 세상의 서두름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것. 차근차근 따져 보는 것. 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이들을 답답하게 여기지 않는 것. 슬퍼도, 울어도, 쓰러져도, 망해도 하나님 품에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평소에 내가 하던 생각과 다릅니다. 아닌 줄 알았는데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었던거군요.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내 안을 비워 주시고 주의 고요한 물이 새롭게 흐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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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1007 이사야 8장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이 증언 문서를 밀봉하고, 이 가르침을 봉인해서, 나의 제자들이 읽지 못하게 하겠다.
    주님께서 비록 야곱의 집에서 얼굴을 돌리셔도 나는 주님을 기다리겠다. 나는 주님을 의지하겠다.”(사8:16-17)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유다백성들에게 예언하게 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야는 예언이 담긴 증언 문서를 밀봉하고 읽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주님을 기다리고, 의지하겠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이사야를 통해 유다백성들에게 말씀하셨지만, 듣지 않는 완악한 마음을 가진 그들을 볼 때 이사야의 심정은 어뗐을까 생각해본다. 이샤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백성들에게 왜 나를 세우셔서 말하게 하시는지 불평하거나 그들의 반응에 따라 낙심하지 않았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적은 문서를 봉인함으로 그것을 기억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외면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마음은 한결같다는 것을 고백한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의지하겠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표현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나간다고 해도 벽과 같은 장애물을 만날 수 있다. 분명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마음 주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결단하며 나아가지만 뭔가 모를 답답함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것이 맞는지 의심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럴 때 나의 마음의 주인이자 내 삶의 주체가 누구인지 점검해 봐야한다.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저 통로일 뿐이다. 통로는 스스로를 주장할 권리가 없다. 비록 그 일을 행함에 있어서 마음이 상할 수 있지만, 일의 결과는 나의 몫이 아니다. 나는 그저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말해도 듣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는 유다백성들을 마주할 때 이사야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리고 그는 그 답답함 앞에서 비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오길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한채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는 유다백성들을 보며 이사야는 비로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귀한 가치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다백성들의 반응에 따라 같은 감정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주님을 기다리고, 의지하겠다는 고백을 한다.

    순종을 통한 열매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신뢰의 관계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이자 은혜이다.
    하나님을 따라 뚜벅뚜벅 이 길을 걸어가는 나의 가장 큰 이유이자 목적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누군가의 반응과 더 나은 상황이 아닌 하나님과의 깊은 신뢰가 이끄는 삶.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반응과 원하는 결과, 보고싶은 상황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내가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 겸손하게 엎드리며 나아가자.
    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할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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