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장: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

해설:

1절부터 7절까지는 ‘포도원의 비유’다. 포도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7절). 포도원 주인은 좋은 포도를 수확할 것을 바라고 정성스럽게 포도원을 만들고 가꾸었다(1-2절). 하지만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 

3절에서 갑자기 화자가 하나님으로 바뀐다. 그분은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위해 하지 않은 일이 하나라도 있느냐고 묻는다(3-4절). 주인이 잘 가꾸었는데도 들포도만 열리고 있다면, 밭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포도밭을 버리겠다고 하신다. 그렇게 되면 포도원은 황폐해지고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만 자라게 될 것이다(5-6절). 

7절은 이 비유에 대한 이사야의 해석이다. 주님께서 포도원에서 얻기를 바랬던 “좋은 포도”는 “선한 일”과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맺은 열매는 “살육”과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 뿐이다. 여기서 이사야는 언어유희를 통해 메시지를 부각시킨다. “선한 일”은 ‘미쉬파트’의 번역이고, “살육”은 ‘미쉬파흐’의 번역이다. “옳은 일”은 ‘츠다카’의 번역이고, “울부짖음”은 ‘츠아카’의 번역이다. 

8절부터 17절까지는 유다 백성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이 예언에서 “너희” 혹은 “그들”은 유다의 지도자들과 기득권자들을 가리킨다. 이사야는 그들의 죄의 본질이 “땅 한 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한 것”(8절)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부정과 불의와 폭력으로 가난하고 힘 없는 동포들로부터 토지를 빼앗아 부를 누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토지를 황폐하게 하는 것으로 심판하실 것이다(9-10절). 그들은 주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폭식과 폭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11-12절). 

하나님은 그들이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13절). 그 때가 되면 그들이 즐기던 모든 것들은 음부로 빨려 들어갈 것이고, 천한 사람도, 귀한 사람도 모두 고난을 당할 것이다(14-15절). 그 때에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높임 받으실 것이고, 권력자들에 의해 착취 당하던 하층민들은 자유를 누릴 것이다(16-17절).

18절 이하에서는 유다 지도자들의 악행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이사야는 그들을 “거짓으로 끈을 만들어 악을 잡아당기며, 수레의 줄을 당기듯이 죄를 끌어 당기는 자들”(18절)이라고 고발한다. “하나님더러 서두르시라고 하여라”(19절)는 말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것처럼 유다에 대한 심판을 서두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말을 조롱하는 말이다. 그들은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자들”이며, “어둠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며,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자들”(20절)이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슬기롭다”(21절)고 말하면서 “악인을 의롭다고 하며, 의인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23절)는다.  

이런 까닭에 유다와 예루살렘은 결국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율법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멸시”(24절)한 그들은 결국 멸절될 것이다. 그 심판의 서곡이 이미 시작되었지만, 주님은 여전히 심판의 손을 들고 계신다(25절). “먼 곳의 민족들”(26절)은 주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 군대를 가리킨다. 앗시리아는 주전 701년에 거대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유다를 침공했다(26-30절). 유다는 그 공격으로부터 겨우 살아 남았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고 백성의 일부만 살아 남았다.

묵상:

이십여 년 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 당하는 것을 뻔히 지켜 보았으면서도 유다의 지도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무시했습니다. 온갖 부정과 불의로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갔고, 폭식과 폭음으로 향락을 즐겼습니다. 그럴 즈음, 주전 701년, 유다는 앗시리아로부터 침공을 당하여 큰 피해를 입습니다. 

이사야는,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서곡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의 심판의 손은 아직 들려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으면 유다는 버려진 포도원처럼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 예언대로, 남왕국 유다는 앗시리아로부터 입은 치명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쇠약해 지다가 주전 587년에 바빌로니아에 의해 패망하고 맙니다. 그로 인해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맺어진 옛 언약은 파기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지만,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달라지지 않았고 구원 계획은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영원한 언약”(55:3)을, 예레미야를 통해 “새로운 언약”(렘 31:31) 약속하셨습니다. 

그 새롭고 영원한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자신의 죽음을 “새 언약의 피”(눅 22:20)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언약 백성이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언약 백성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마 21:33-46)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이사야서 5장의 ‘포도원의 노래’를 개작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유다 왕국이 심판 받아 선민의 자격을 박탈 당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선민을 일으키실 것인데, 새로운 선민은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민족”(마 21:43)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이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그분이 십자가에서의 희생으로 맺으신 새롭고도 영원한 언약 안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새로운 언약 백성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 백성에게 “좋은 포도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좋은 포도”란 “선한 일”(미쉬파트)과 “옿은 일”(츠다카)입니다(7절). 교회는 실패한 선민의 역사를 거울 삼아 오늘 이 땅에서 공의와 정의를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Comments

2 responses to “이사야서 5장: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

  1. 주님께서 가꾸고 허락하신 포도원인 가족과 교회에서 알차고 풍성한 열매를 맺고있는지 성찰하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옳게 산다고하면서 딴길로 가고 있지 않은지 빛이신 주님의 길을 걷는다고 하면서 어둠에서 방황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봅니다, 기뻐하시는 열매가 없습니다,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을 꼭붙잡고 주님의 심판이 회복의 전주곡인것을 소망으로 사랑의 채찍을 믿음으로 감내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저희들의 생각과 의견의 차이로 포도원이 좀 요동이 되고있습니다, 그러나 인내로 기다리면서 더욱 더 기름진 포도원이 되는 소망을 합니다. 주님께 영광과 존귀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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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본문의 포도원과 마태복음의 포도원을 견주어 읽으니 ‘열매를 맺는 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사야가 사용한 어휘 -미쉬파트와 미쉬파흐, 츠다카와 츠아카-들이 글자 한 개에 따라 뜻이 전혀 달라지는 것은 문학적인 테크닉을 써서 독자의 이해를 촉구하는 방법이 되면서, 또 아무 것도 아닌 듯이 넘어가는 일상의 루틴들이 거룩하신 분의 성품에 일치하거나 거스르거나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선한 일과 살육, 옳은 일과 울부짖음은 뜻으로는 서로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지만 발음상으로는 듣는 (읽는)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완전히 반대되는 단어들입니다. 사흘전 월요일 저녁에는 미국 대선 부통령 후보들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생중계를 지켜 보지는 못했고 후속 기사들을 읽었는데 민주당의 월즈 후보가 학교 총기사고 이야기 중에 “I’ve become friends with school shooters학교 총기 발사자들과 친구가 되었다”는 말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폭력 생존자들 (survivors) 이라고 해야 할 것을 잘못 말한 것입니다. 프로디언 슬립 (Freudian slip) – 무의식적인 말실수, 속마음을 들킴 – 이라고 하는 은연중의 실언이라고 보는 것은 월즈에 대한 과한 공격 같이 보입니다만, 우리도 실언을 단순 실언이 아니라 취중진담과 같은 진짜 속마음이라고 보는 때가 있기도 합니다. 이사야의 어휘 선택을 놓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포도원의 목적은 열매를 맺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일꾼들 비유는 포도원 주인이 수확을 해 오라고 종을 보내고 아들을 보냈으나 이들을 해하고 포도원을 가로채려고 한 악한 소작농들을 심판하는 주인에 관한 비유입니다. 주인이 ‘나쁜 놈들’을 응징하고 복수하는 드라마가 나올 법한 스토리입니다. 성경에서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는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백성,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는’ 백성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을 말할 때 포도원이 나옵니다. 포도원 농사가 잘 되어 좋은 포도들이 열리면 주인은 기뻐합니다. 반대로 농사가 잘 되지 않았으면 주인은 실망합니다. 나는 포도원 농사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포도 수확을 하는 주인 농부의 마음은 헤아릴 수 있습니다. 포도원의 성공과 실패가 전적으로 주인이나 소작 노동자의 손에 달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인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도밭이, 포도나무가 포도 열매를 낼 줄로 기대합니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내가 포도밭을 위해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겠느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4절)’고 말씀하십니다. ‘오호라!’ 라는 한탄이 여러번 나옵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깊은 실망감입니다. 복에 대한 나의 생각이 묵상을 통해 여러 번 걸러진 것을 경험했습니다. 열매에 대한 생각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내게 좋은 것이 복이요,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 복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기도의 응답도 내가 원한 결론에 가까울 때 응답이고 복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만 실은 하나님 ‘없이’ 내가 한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줄기차게 하다가 이루어지면 딱 끊고 마는 때도 있습니다. 포도원은 관계가 익어가는 특별한 땅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원으로 표현하는 성경적 방식은 포도원과 주인 (농부)이 관계라는 열매를 가꾸고 일궈나가는 땅이라는 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의 땀과 정성, 기대와 희망이 담긴 곳입니다. 인생이라는 땅과 시간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목적 만으로 채워지는 데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사귐의 시간을 갖는 곳, 나는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기도하면 나는 너를 위해 이런 것을 준비했다…답하시는 대화가 일어나는 곳이 포도원일 것입니다. 오호라! 후회하는 하나님을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잠에서 깨워 주소서.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 속에서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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