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장 12-17절: 한몸으로 살아가기

해설: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기 전에 사도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12절)으로서의 그들의 새로운 신분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사도는 세 가지 표현(“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 “거룩한 사람들”, “사랑받는 사람들”)을 사용한다.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관용적 표현이다. 믿는 이들은 새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었다. 신분의 변화는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사도는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서 드러나야 할 중요한 미덕으로서 “동정심”, “친절함”, “겸손함”, “온유함”, “오래 참음” 등을 제시한다. 이 미덕들은 모두 공동체를 전제한다. 

사도는 좀 더 구체적으로 권면을 이어간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13절)는 공동체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럴 경우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용납하다“(‘아네코’)는 불편한 사람을 참아주는 소극적 행동을, “용서하다”(‘카리조마이’)는 불편한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대하도록 노력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가리킨다. 누군가를 견디기 힘들 때, 사도는 주님께서 자신들을 견뎌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한다. 하지만 소극적 행동으로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라고 권한다(14절). 용서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 서로를 적극적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결속된다. 사랑은 공동체를 묶는 끈이다. 

이어서 사도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15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 즉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요 14:27)를 가리킨다. 사도는, 그들이 “한몸” 즉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이 평화를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도는 그들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 안에 충만하게 머물러 있게 해야 한다(16절). 사람들 사이의 이견과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한몸으로 모여서,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항상 “주 예수의 이름으로”(17절) 해야 한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한다”는 말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질문하고 그 답을 따라 행하라는 뜻이다. 모든 선한 것의 기원도, 목적도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묵상: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를 전제로 합니다. 홀로 수도 정진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사람은 다른 믿는 이들과 한 백성을 이룹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은 그분 안에서 한몸입니다. 우리는 한 지역에서 지역 공동체를 이루어 언약 백성으로 자라갑니다. 한몸으로 모여, 위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옆으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합니다. 그것이 지역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연합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이루어 주신 구원의 영적 차원을 현실로 실현해 갑니다. 모두가 변화의 과정 중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출발선에 있고, 어떤 사람은 중간 즈음에 있고, 어떤 사람은 상당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상당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라 해도 여전히 옛 사람의 습성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이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어 살아가는 데에는 의견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이 필연적입니다. 

사도는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관계했던 교회들 중에 이런 문제로부터 면역된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편지에서 “한몸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거듭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도 각 사람의 개인적인 윤리 문제에도 관심을 두었지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윤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공동체를 허무는 원인이 되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온유와 겸손과 친절과 인내 같은 미덕을 강조할 뿐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교회는 한몸을 이룰 수 있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모두가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골로새서 3장 12-17절: 한몸으로 살아가기”

  1. 가정과 교회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한몸이 되어야 하는것을 잘알고 있으면서도 서로다른 의견차이로 자주 갈등을 갖는 형편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인것을 깨닫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견디어주고 용서하고 감사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공동체안에서 영생과 천국을 미리 맛보기를 간구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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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ng mae kim

    내게 교회는 중요합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는 것이 참 좋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가는 일이 없다면 -형편이 안되는 주일이 가끔 있지만- 삶의 질서에 미세한 균열이 온 것 같이 느껴질 것입니다. 팬더믹에 교회에 가지 못했을 때 느꼈던 불안감은 코로나 시국이 가져온 부정적인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기술 발전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때 느낀 것 하나는 교회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때, 못 가는 때가 올 수도 있다는거였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져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교회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됩니다. 교회에 가는 것이 나의 결정인 듯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겁니다. ‘내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건지 모르고 살았다는건 운이 좋아서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교단 분리의 이슈 때문이 아니고 개인적인 이유로 교회에서 나간 가정들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이상해서’ 나간 집도 있고, 교인과 껄끄러워져서 나간 집도 있습니다. 뭔가에 ‘삐져서’ 나갔는데, 그렇게 나갔다가 다시 온 가정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만 보는 일이 아닐겁니다. ‘교회를 사람보고 다니냐, 하나님 보고 다녀야지’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나도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심정이 오죽할까를 헤아리지 않고 정죄하듯이 말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자꾸 마음이 다치거나 감정이 상할 땐 교회로부터 잠시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사람을 보고 다니는 교회는 아니지만 다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이니 늘 좋기만 할 순 없습니다. 모두 변화의 과정 속에 있으니 성숙하는 속도가 다릅니다. 먼저 깨달아 초연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인 사람도 있습니다. 성격도 다르고 기대하는거, 추구하는거, 참아내는거 다 다릅니다. 그러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 교회를 꾸준히 출석하면서 교제를 하고 관심을 기울인다는건 ‘행운’이고 은혜입니다. 교회에서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 사람들 장례식에 내가 가고, 내 장례식에 이 사람들이 오고, 예약 손님이군….점점 따질 일도 없고, 보기 싫다고 고개 돌릴 일도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늙으니까 그럴 기운도 없다’던 선배들 말이 이런 뜻이었는지…바울 사도의 애정 어린 충고가 어려운 주문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랑하기 힘들면 적극적으로 싫어하는 일만 그만 두어도 될 듯 합니다. 적극적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이지 못해도 상처 받은 일, 그가 잘못한 일을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만 해도 반은 한겁니다.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 삶이 뒤죽박죽이 되는 경험을 한 이들은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서 (아이들 챙기는 일, 직장에 출근하는 일 등) 하다 보니 그런 일들이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게 했다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계속 말씀하시고, 또 삶의 일부와 순간에 빛을 주십니다. 주님의 풍성하신 은혜로 삽니다. 내가 온전해지고 성숙해지기도 전에 사랑하시는 주님을 따라 나도 교회가 온전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좋아하고 교회에 가는 것이 기쁘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반갑게 대하고 기쁘게 여기는 주일을 기다립니다. 교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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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0923 골로새서 3:12-17

    <감사로부터 나오는 그리스도의 힘!!>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골3:16-17)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풍성히 살아있는 것.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감사하는 것.
    무슨 말이나 행동이든 예수 이름으로 하는 것.
    그리스도로 힘을 얻는 것.

    바울사도가 골로새 공동체에 권면한 이 말씀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풍성히 살아있다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다. 사도바울이 감옥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마음을 지키며 사역할 수 있던 것도 모두 그의 삶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또 보이는대로 반응하지 않고, 예수님이면 어떻게 하셨을지 늘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반응들은 그가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미국에 온지 이제 두달 가까이 되어간다. 한국에서의 시간도 그렇지만, 이곳에서의 시간도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내가 매일 우선순위를 두며 했던 일은 ‘묵상’하는 것이였다. 바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밖에 있을 때는 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지만, 거의 매일을 하나님 앞에 먼저 나아가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거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에게 생긴 유익은 나의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사고방식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다.
    물론 순간순간 나의 육신의 반응들이 나올 때가 있었지만, 나의 영적인 스위치가 켜지는 횟수가묵상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9월부터 말씀통독을 시작하면서, 하루종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움직이는 것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겨도,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실까? 계속 묻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늘 가장 좋은 것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하게 된다.
    유독 내가 많이 넘어지는 부분은 아이들을 대할 때인데, 나는 자주 아이들을 지적하고, 아이들의 어떤 행동들에 대해 이해하기 보다 고치려는 마음이 크다. 아이들이 내 기준에 맞는 행동들을 할 때는 사랑하고 용납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사랑없는 훈육과 징계로 아이들을 대하게 된다. 마땅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훈계해야 하지만…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스위치가 꺼진 상태일때면 나의 감정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을 본다. 예전에는 이런 내 모습을 고치고 노력도 했고, 회비하려고도 했고, 그냥 나는 이런데 어쩌라고 하면서 교만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면서 부터 이 시간도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내가 인애로운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는건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순간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여 주시도록,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지 않는 감정이나 반응들은 잠시 내려놓고, 성령께서 나를 주장하여 주시도록 그 순간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간다. 놀라운 것은 그럴 때 마다 주님이 나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나의 마음을 돌이키시고, 나로 인해 아이들의 마음이 상한 부분이 있다면 치료해주시도록 간구하게 된다. 또 내가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 있다면 찾아가서 용서를 구한다.
    단번에 예수님의 말과 행동이 나를 사로잡지 못한다고 해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집중하며, 감사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힘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횟수가 거듭되면 습관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감사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때론 힘들지라도 즐거운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나를 붙들고 계시는 가장 가까운 현장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감사하자! 나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알게 하시며,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로마서 8:35-39 KRV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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