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장 24-29절: 복음의 비밀, 고난의 비밀

해설:

앞에서 자신이 “복음의 일꾼”(23절)이 되었다고 말한 다음, 사도는 복음의 일꾼으로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에 대해 언급한다. 그 고난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전한 결과로 인해 겪게 되어 있다. 사도는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한다고 말한다(24절).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여러분을 위한” 고난이기 때문이다. 그의 고난을 통해 골로새 교인들에게 유익이 간다면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다.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고난은 영예이며 기쁨이다. 둘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당한 고난에 부족함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이 본질상 예수 그리스도가 겪은 고난과 같다는 뜻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을 자초하고 살았다. 

사도는, 자신이 그렇게 고난 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교회의 일꾼”(25절)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일꾼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는데, 그 말씀은 “영원 전부터 모든 세대에게 감추어져 있었던 비밀”(26절)이다. “비밀”은 헬라어 ‘뮈스테리온’의 번역인데, “감추어져 있는 것” 혹은 “다 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 비밀은 “믿는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27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비밀이다. 그분은 태초부터 감추어져 있다가 나타나셨다. 그분은 완전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장차 받을 영광을 소망하게 하신다(“영광의 소망”). 둘째, 그분이 믿는 이들 가운데서 활동하시는 것도 비밀이다. 그분의 임재와 역사는 분명한데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 비밀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져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 사도는 그 비밀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일꾼으로 부름 받았다.

28절에서 사도는 “우리는”이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여 자신과 함께 복음의 일꾼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아우른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이 그리스도” 즉 “이 비밀”이시다. 그리스도를 모든 이들에게 전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다. 여기서 사도는 “모든 사람”(‘판타 안트로폰’)이라는 표현을 세번 사용한다.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온전한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이 그리스도” 즉 “이 비밀”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29절). “내 속에서 능력으로 작용하는 그분의 활력”은 27절에 나오는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상기시킨다. 골로새 교인들 안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서도 역사하고 있으며, 그것이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계속하여 수고하고 애쓰는 원동력이다. “수고하며 애쓰다”는 ‘코피오 아고니조메노스’의 번역으로서 전력투구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현재형 시제를 사용한 이유는 그것이 사도의 매일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묵상:

우리의 믿음은 비밀입니다. 다 알 수 없어서 비밀입니다. 알면 알수록 신비하여 비밀입니다. 평생 탐구해도 다 알 수 없어서 비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이 비밀이며, 그분의 십자가가 우리의 죄에 대한 대속의 능력이라는 것도 비밀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도 비밀이며,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성령을 통해 우리 중에 활동하신다는 것도 비밀입니다. 

그분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는 것도 비밀이며, 이미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옮겨졌다는 것도 비밀입니다. 또한 장차 모든 만물과 함께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비밀입니다. 그분의 능려이 지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도 비밀이며,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변화도 비밀입니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라는 것도 비밀이며, 그분이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도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다가 우리 가운데 드러났고,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이 비밀을 부정하고 오직 물질 세계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비밀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손해를, 때로는 모욕을, 때로는 상처를, 때로는 배척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 비밀이 너무도 크고 놀랍기에 우리도 이 비밀을 전하기 위해 고난을 자초합니다. 이 비밀을 전하기 위해 당하는 고난은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것이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한 고난을 우리가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s

2 responses to “골로새서 1장 24-29절: 복음의 비밀, 고난의 비밀”

  1. 세상의 지식으로 믿기어려운 주님의 성육신 십자가의 역사 그리고 주님이 심판의 왕으로 오시는 믿음을 믿게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사소한 문제로 믿음의 공동체에 고난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드립니다. 시련을 통해 성찰을 할수있고 주님을향해 도약할수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영생으로 옴기는 귀중한 비밀을 세상에 알리는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오늘의 모든 생각과 언행 과 삶이 승리의 삶이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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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메세지 성경은 ‘비밀’을 ‘미스테리’로 부릅니다. 알 수 없다, 풀 수 없다는 뜻입니다. 빛이고 진리이신 예수님이 어디에 숨어 있어서 비밀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이 크신 분이라 비밀입니다. 부활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정의와 용서도 비밀이고 신비입니다. 예수님께 달린 일입니다. 문이 열리니까 내가 연 줄로 알지만 예수님이 열어 주신겁니다. 바울은 지금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난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고난이 미스테리라는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니 고난을 기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고 가능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론은 (바울의 논리는) 그래도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혹은, ‘문제는 현실인데 답은 (말씀은) 비현실적이다.’ 언뜻 보기에 맞는 말입니다. 보이고 만져지는 삶의 짐이 분명히 있는데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해서 없어지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짐을 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현실을 모르는게 아닙니다. 현실도 알고 비밀도 알기에 고난을 겪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의지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비밀과 미스테리를 믿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활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부활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부활의 성격과 능력도 압니다. 기적을 일으키지는 못해도 무엇이 기적인지 아는 것과 같습니다. 못할 것 같았는데 하게 되는 것,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하는 것, 보이고 만져지지 않는데도 마음으로 알 수 있 는 것, 예상치 않은 기쁨이 찾아올 때, 늘 밉고 아프던 것이 사라질 때, 어깨가 가벼워질 때…내가 연 문이 아닙니다. 내가 치운 돌이 아닙니다. 비밀이고 미스테리이신 주님께서 나를 위해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아이처럼 미숙하고 유치하며 자기 밖에 모르는 나를 당신의 친구로 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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