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장 1-8절: 우리 신앙의 세 기둥

해설:

바울 사도는 당시 편지 양식에 따라 먼저 발신자가 누구인지 밝힌다. 그는 때로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고전 1:1; 고후 1:1; 갈 1:1; 엡 1:1)로 소개하기도 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종”(롬 1:1; 빌 1:1)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이 편지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1절)이라고 소개한 이유는 사도로서의 권위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편지를 쓰는 동안 디모데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수신자에 대해 사도는 “골로새에 있는”이라는 표현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이라는 표현을 겹쳐 사용한다(2절). 그들의 지리적 위치는 골로새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 위치다.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이라는 표현에 더하여 “거룩한”(‘하기오스’)이라는 형용사와 “신실한”(‘피스토스’)이라는 형용사를 동원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성도”(거룩한 사람들)가 되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건인 동시에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헬라어 ‘피스티스’는 “믿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한결같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발신자와 수신자를 소개한 후, 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일관되게 사용하는 인사법으로 축복한다. “은혜”는 그리스-로마인들이 인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였고, “평화”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단어였다. 사도는 그 둘을 묶어서 모두를 위한 인사로 만들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이라는 표현을 더하여 신앙고백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누릴 진정한 은혜와 평화는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온다.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도는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감사와 기도”를 쓴다. 그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 “우리”(3절)를 사용하여 자신과 같이 있는 신도들까지 포함한다. 그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항상” 감사를 드리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가 감사하는 이유는 에바브라로부터 전해 들은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다(8절). 사도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4절) 때문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은 에바브라였다(7절). 그에게서 복음을 들은 날로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믿음은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다”(6절). 

둘째,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4절)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 맺게 되어 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사랑은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행위는 믿음의 증거다. 

셋째, 그들의 믿음의 살아 있어서 사랑의 행위로 열매 맺힌다는 사실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5절)을 그들이 실제로 믿는다는 의미다. 이 소망에 대해 사도는 3장 1-4절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사도는 그들에게 전해진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고 있고 열매 맺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6절).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복음의 역사에 그들도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에바브라에 대하 사도는 “우리와 함께 종이 된”(7절)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바울이나 에바브라나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묵상:

바울 사도가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을 기독교 신앙의 세 기둥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드러납니다. 그 생각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곳이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사랑의 찬가”라는 별명을 가진 이 시편의 마지막에서 그는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고전 13:13)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해서는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살전 1:3)에 대해 칭찬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에바브라에게서, 골로새 교인들이 믿음 안에 든든히 서 있고, 그 믿음이 사랑의 행위로 열매 맺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사도는, 그들의 믿음과 사랑이 하늘에 속한 것에 대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의 대상은 “보지 못하는 것”이며 “바라는 것”(히 11:1)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를 예로 들어, 믿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 내는 것”(11:27)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자신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소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물질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세계 그리고 목숨으로 끝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것을 소망하게 됩니다. 하늘에 속한 것에 대한 소망이 강해지면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그 믿음은 사랑의 행위로 열매 맺습니다. 사랑은 자기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것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없이는 자신을 내어 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서로 뒤엉켜 있는 한덩이에 대한 서로 다른 이름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소망한다는 것이고, 소망하는 것은 믿는다는 뜻이며, 진정한 사랑은 믿음과 소망에서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사도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한 이유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오면 믿음의 대상과 소망의 대상은 현실이 됩니다. 그 현실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그 미래를 소망하며 오늘 이 땅에서 그 날이 온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현실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골로새서 1장 1-8절: 우리 신앙의 세 기둥”

  1. 조국이나 미국의 정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전쟁과 자연재해와 질병으로 점점 더 심한 혼란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가까히 오고있다는 소망으로 감사히 살아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안에서 더욱더 깨어있어 주님사랑,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내는 사귐의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지난 17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 가운데에서도 사귐의 교회를 인도하시고 자라게하신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드리는 주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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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목사님의 ‘골로새서에 대하여’ 해설을 읽었습니다. 지리적인 자리와 골로새 교인들을 생각하는 바울의 마음을 떠올려 봤습니다. 바울 본인이 세우지 않았으며 아직 가 본 적이 없는 교회지만 골로새 사람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편지를 보내는 바울의 심정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골로새 교인이나 우리나 바울에겐 같은 조건을 가진 독자입니다. 골로새 지방과 사람들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데 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골로새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건지, 골로새 사람이 엘에이로 온건지 모르지만 두 곳에 다 DEI 배너가 걸려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본문 해설도 신앙의 세 기둥 – Faith Hope Love -에 관해서 입니다. 바울 사도의 사도적 성과는 가히 독보적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었고 (다마스쿠스 회심은 별도) 예수 추종자들을 잡아 들이는 반대파 입장에 서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그는 이방인들의 땅에 가서 예수를 전했습니다. 전하는 방식도 다양했습니다. 설교, 토론, 법정 디펜스, 답변, 편지…그의 말과 글이 모여 기독교 신학이 되었습니다. 흔히 반진담, 반농담으로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바울이 지금 우리가 아는 기독교의 모양새를 갖춰 놓았다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바울의 골로새 편지는 복음으로 변화를 받은 이들이 늘 믿음과 사랑과 소망 (5절)이 풍성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나타나는 삶을 살라고 격려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서로에게 동력이 되어주며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서로를 지탱하는 뿌리이며 또 열매가 되기도 합니다. 서로 손을 잡아 원을 이룹니다. 골로새서를 시작하며 DEI 가 왜 떠올랐는지 모르지만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DEI 는 공공 조직의 사회정의 관련 정책의 키워드입니다. 배경이나 정체성, 장애 등에 대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우함으로써 불평등과 억압을 없애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DEI 가 의무사항은 아닙니다. 공공기관의 정책을 다루는 사람의 DEI 와 작은 가게를 경영하는 내가 바라보는 DEI 는 다를 것입니다. 말도 많고, 해석과 적용의 범위도 일정하지 않은 DEI 이지만 그 목적에 동의합니다. 그렇게 맞추려고 합니다. 정의와 평등을 이루려는 사회의 노력에 못 미치는 교회와 교인은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교인은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깊고 간절한 뜻을 추구합니다. DEI 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미 녹아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의 세 기둥은 묵상의 제목이자 행동 개시의 명령일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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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하나님을 말씀을 통하여 믿게 하시고 죄 가운데에서 허덕이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삼으시고 그 십자가의 값으로 선불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끝이 없으신 사랑을 영원히 맛보고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애뜻한 사랑에 감사드리며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 사랑을 만분의 일이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기 전에 갚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조국과 미국등 온 세계의 믿음의 공동체 각자에게 동행하시고 인도하옵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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