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2-9절: 늘 힘써야 할 일들

해설: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화해하라고 권면한다(2절). 다음 절(3절)에서 사도는, 그 여성들이 “복음 전하는 일에 나와 함께 애쓴 사람들”이라고 소개한다. 두 여성이 무슨 일로 불화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다. 빌립보 교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은 그 여인들이 믿음을 떠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의 진정한 동지여”(3절)는 빌립보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섬기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 사도는 그에게 두 여성 지도자들을 화해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글레멘드는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도는 이어서 기뻐하라는 권면을 준다(4절). 기쁨은 빌립보서에서 가장 도드라진 주제다. 여기서 사도는 “항상”이라는 부사를 더하여, 기쁨이 믿는 이들의 주된 정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은 “주님 안에 굳건히 서”(1절) 있어야 가능하다. 

그는 또한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십시오”라고 권한다(5절). “관용”은 ‘에피에케스’의 번역인데, “온유함”, “친절함”, “너그러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라는 뜻일 수 있고, “주님께서 가까이 계십니다“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이든, 주님의 임재에 예민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

주님의 임재에 예민한 사람은 모든 종류의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벗어난다(6절).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뢰기 때문이다. “기도”는 ‘프로슈케’의 번역이고, “간구”는 ‘데에시스’의 번역이다. ‘데에시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고, ‘프로슈케’는 찬양, 감사, 고백, 묵상 등의 여러 가지 활동을 의미한다. 

이 모든 기도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감사”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머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응답 받는다. 그 응답은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7절)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는데 마음에는 든든한 평화가 들어차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그것이 예수께서 약속하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요 14:27)다. “지켜 주다”로 번역된 ‘프루레오’도 역시 군사 용어로서 철통같은 방어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는 3장 1절에서와 같이 화제를 바꾸는 접속사다. 여기서 사도는 여덟 가지의 미덕(참됨, 경건함, 옳음, 순결함, 사랑스러움, 명예로움, 덕스러움, 칭찬 받을 만함)을 제시하며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8절)라고 권한다. “생각하다”는 ‘로기조마이’의 번역인데, 마음에 새겨 두고 행동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이 미덕들은 당시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것들이다. 이 권면으로써 사도는, 믿는 이들이 사회가 기대하는 미덕들을 품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도는 자신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9절)을 실천하라고 권한다. 3장 17절에서도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 받으라고 했는데, 거기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는 것”을 배우라는 뜻이었다. 여기서는,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인정과 존경을 받을만큼 덕스럽게 사는 것을 말한다. 사도는 복음을 위해 헌신된 사람이었지만, 사회적인 미덕의 기준에서도 존경 받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었다. 그렇게 할 때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이라고 격려한다. 

묵상:

개인적인 삶에도, 믿음의 공동체에도 시험과 환난과 풍파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부여 받은 우리는 그 이름에 걸맞는 존재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체로 연합하여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에 우여곡절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의견의 차이도 있고, 입장의 차이도 있습니다. 때로 그런 문제로 인해 심한 갈등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열심은 동일하지만, 그 뜻을 분별하고 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가장 애정했던 빌립보 교회도 그런 시험을 만났다면 그렇지 않을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도는 빌립보 교회의 몇몇 지도자들 사이에 지속되고 있던 분열과 갈등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적 처방을 제시합니다. 

사도는 우선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권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어떤 문제가 일어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혹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영광스러운 미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삶의 상황에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날 때면 더욱 주님 안에 든든히 서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상황을 이길 수 있는 내적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늘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삶의 상황에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우리의 마음은 금새 염려와 근심에 휘둘립니다. 그럴 때면 잠시 멈추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구할 것이 있으면 감사함으로 구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1)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고, 2) 그분의 섭리 안에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구하는 것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성별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죄를 고백하며 그분의 은혜를 돌아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할 때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다른 편지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18)라고 썼습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빌립보서 4장 2-9절: 늘 힘써야 할 일들”

  1. 믿음의 공동체인 가정에서 교회에서 서로간의 오해로 관계가 자주 꺼꾸럽습니다. 임마누엘 주님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함께 하시겠다고하신 약속을 항상 믿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하신 말씀에 순복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온전한 구원의 소망을 기리며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근심 걱정 두려움없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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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로버트로 만드시지 않고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자녀로 택함 받았을지라도 성격과 마음, 성별과 생각이 다른 믿음의 공동체가 모인 곳이 교회이므로 문제가 늘 발생합니다. 그로 인하여 영적 고통을 겪습니다. 이러한 교회에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권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지켜보시고 계신다는 믿음과 그 분을 찬양하고 기도를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 만이 가능함을 믿습니다. 주님! 성령께서 항상 동행하셔서 항상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매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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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마음을 쏟기’ 바라는 미덕으로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며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것들’을 꼽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형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의 부탁과 세상의 이상이 다른 점이 있다면 세상은 이런 미덕을 갖추면 좋지만 못 갖춰도 괜찮다고 보는 반면, 바울은 예수 안에서 이렇게 빚어지도록 성령께서 도우시니 염려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점일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표시는 세상보다 ‘조금 더’ 가는 것인지 모릅니다. 조금 더 가되 내가 한다, 내 힘으로 이룬다는 의지는 내려놓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비결인지 모릅니다. 기쁨에 대한 생각도 신자는 조금 다릅니다. 세상이 모르는 기쁨이란 것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채 발견하지 못한 기쁨의 영역입니다. 자신의 약함이 주님 앞으로 나가게 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예기치 않은 기쁨이 옵니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 사라진 것 같을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맛봅니다. 기쁨이 반드시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짧은 듯 하여 소중합니다. 마치 하늘에서 주시는 싸인처럼 비 온 뒤 잠깐 보이는 무지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자는 이런 기쁨과 평강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가능하지 않은 것 같을 때에도 믿는 사람들입니다. 손으로 잡히지 않아도 손에 쥔 것처럼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세상의 짐이 너무 무거워 이런 묵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기도를 할 수 없다해도 내 마음 속에 그들의 아픔도 담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미덕과 힘들게 사는 이들의 아픔을 내 안에 같이 품고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신자로 불러 주시고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려운 자리에 있는 이들, 생존의 싸움이 치열한 이들, 자기와 세상 모두를 상대로 혼자 싸우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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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늘 본문을 묵상하는데, 하나님은 얼마나 선하시고 좋으신 분인지에 대한 깊은 감사와 감격이 나에게 몰려왔다. 하루를 살아가면 곳곳에서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갈등의 상황에 들어가게 된다. 사도바울이 갈등의 상황에서 주는 권면은- 그 일들 안에 뛰어들어가 당장 해결하는 것이 아니였다. <기도와 간구>.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라보고 그분께 감사와 찬송으로 나아가 기도하는 것, 그리고 나의 필요를 겸손히 아뢰는 것을 권면한다. 얼마전 찾아보게 된 존파이퍼 목사님 설교의 영상에서 그는 이런 고백을 한다. “할일이 책상 가득 쌓여있을 때, 나의 하루에서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날 때 나는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달려나가 기도합니다.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이 고백이 가슴속 깊이 확 들어왔다. 기도하고 간구하며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 세상의 기준에서는 대책없는 행동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만큼 나를 잘 아시고, 사랑하시는 분이 또 있겠는가? 기도와 간구는 나를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시는 길이다. 그리고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해드리는 겸손함의 행위이다. 이 과정이 있을 때 비로서 온 우주만물을 주관하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신다는 사실에 엎드릴 수 밖에 없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기도와 간구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나의 염려가 기쁨과 감사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상황과 환경에 따른 기쁨과 감사가 아닌 하나님이 내 삶에 주인 되심으로 누리는 특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가 임하게 된다. 이러한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그저 나는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은혜이다.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하나님은 얼마나 선하신 분이신지,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 나의 인생이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그리고 이 놀라운 특권을 우리 가정과 우리와 관계된 모든 이들, 또 온 나라와 열방이 누리게 될 그 날을 소망하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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