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장 1-4절: 새로운 부모와 자녀 관계

해설:

바울 시대에 가정을 구성하고 있던 두번째 축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였다. 부부 관계에서 약자인 아내에게 먼저 권면을 준 것처럼,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사도는 약자인 자녀에게 먼저 권면한다. 당시 문화권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다. 부모들의 부당한 요구와 명령으로 인해 자녀들은 자주 고충을 겪어야 했고 때로 심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알기에 사도는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1절)라고 권면한다. 

“주 안에서 순종하십시오”라는 말은 아내들에게 준 말 즉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순종하듯 하십시오”(5:22)와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내들은 남편들에 대한 복종의 의무에서 해방된 것처럼, 자녀들도 부모들에 대한 의무적 복종에서 해방되었다. 그것은 가정의 제도를 해체하고 모두가 자기 멋대로 살게 하려는 뜻이 아니다. 가정을 “의무의 공동체”로부터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무적 복종으로부터 해방된 자녀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처럼 자원하여, 기쁨으로 부모를 위해 “종 노릇” 할 수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해방의 진정한 이유다. 그래서 사도는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라고 덧붙인다.  

여기서 사도는 다섯째 계명을 인용한다(2절).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홉가지 계명은 모두 명령으로 끝나는데 다섯째 계명은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3절)라는 약속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출 20:12절; 신 5:16). 

이어서 사도는 부모에게 말길을 돌린다. “아버지 된 이 여러분”(4절)이라고 한 것은 수신자들이 가부장적인 문화권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상황에 적용한다면 “부모 된 이 여러분”이라고 해야 한다. 부모의 부당한 요구와 명령은 자녀들의 마음에 분노와 상처를 쌓게 마련이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잘못하면 대물림 될 수 있다. 또한 상처가 많은 사람은 사회 생활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는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가르치십시오”라고 덧붙인다. “가르치십시오”는 “양육하십시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주님의 훈련과 훈계”를 배워 익혀야 한다. 믿음의 부모는 자녀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묵상:

인간처럼 오래도록 양육이 필요한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갓 태어난 생명은 육체적으로도 너무나 유약하고 정신적으로도 무방비 상태입니다. 육체적으로 안전하다 할 만한 정도가 되려면 수년 동안의 양육이 필요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기질과 성품이 달라지고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달라지며 운명이 달라집니다. 

한 사람의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부모입니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는 아버지들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부모 모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어린 생명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부모에게 거부 당하고 버림 받으면 세상 전체로부터 거부 당하고 버림 받는 셈이 됩니다. 반면, 부모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자라면 세상 전체가 자신을 환영한다고 느낍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과 행동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부모는 “양부모”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영원하고 참된 부모인 하늘 아버지를 찾을 때까지 양육할 책임을 부여 받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믿음의 형제 자매”가 됩니다. 자녀를 자기의 소유물처럼 명령하고 부리려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로 존중해야 하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를 함께 배우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함께 자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믿음의 가정은 최소 단위의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에베소서 6장 1-4절: 새로운 부모와 자녀 관계”

  1. 부모에게 순종하지않았고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지못한 불한당입니다. 무릎을 꿇고 십자가밑에서 통곡을 하고있습니다, 주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주님의 자비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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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를 어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 의 사랑으로 양육하지 못하였슴을 회개합니다. 늦게나마 사랑의 언어. 사랑의 미소로 자녀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믿음의 공동체안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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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자기 어머니와의 관계가 힘들어서 상담가한테 갔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교회 일을 통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좀 부담스럽습니다만 ‘들어주는 일’을 잘 하는 것도 이웃 사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가 이야기 하는대로 들었습니다. 사실, 들어준다는 말 보다 그저 듣는다고 해야 맞겠지요. 들어준다고 하면 마치 선의를 베풀 듯, 안 그래도 되는데 해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 친구는 맏이이고 밑에 남동생들과 여동생이 여럿 있는데 어머니와의 관계가 특히 어려워진 것은 청년 시절입니다. 어머니와 같이 교회 일을 하면서 여러 일을 겪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상담을 오래 받지 않았지만 상담을 하면서 자기의 성격 형성, 자아 이해, 관계의 경계 설정 등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자기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썼고, 자녀를 이해하고자 더욱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나의 경우는 그와 조금 달라서, 엄마만큼의 존재감이 있는 엄마가 된다면 좋겠다, 내가 우리 엄마 생각하듯 우리 애들이 날 생각해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 친구에겐 엄마 말고도 아버지와 형제들이 있었지만 내게 는 엄마 뿐이고,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나와 친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엄마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감정은 다른데 엄마와의 관계가 남긴 것은 같습니다.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것을 내 아이들에게는 주겠다는 의지 같은게 있습니다. 자기 엄마한테 부족했다고 느낀 것은 관심일 수도, 따뜻함, 혹은 절제나 엄격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걸 자기 아이들에겐 주고 싶어 합니다.나처럼 엄마한테서 지식이나 통찰을 얻지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런 면을 채우는데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크리스찬은 부모의 ‘역할’에서도 크리스찬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크리스찬 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각자 깊이 생각하고 행동 해야겠지만,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모습의 정반대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녀가 잘 되도록 가르친다는 자녀 양육의 본령부터 크리스찬 부모는 꼼꼼히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잘 된다’는게 무엇인지 묻고 또 물으며, 자녀를 위한 기도 속에서 다듬어 나갑니다. 약속이 보장된 첫 계명의 의미가 새롭습니다. “네가 하는 일이 다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는 약속이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약속의 여부를 떠나, 부모에게 잘하는 자녀는 다른 사람들과도 화목하기 쉽습니다. ‘가화만사성’의 원리일 것입니다. 부모와 잘 지낸다는 것은 공감력이 좋다는거고, 갈등 해결 능력이 좋다는 뜻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무조건적으로 좋은 관계일 수는 없습니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던 나도 열 살이 되기 전에 ‘우리 엄마 모르는게 너무 많다. 엄마한테 물어서 될 일이 아니다’ 깨달았습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줄 수 있는 부모라도 자식에게 보기 싫은 꼴, 고쳤으면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자기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첫 발을 잘 뗀 것입니다.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자녀를 잘 키우라는 바울의 당부도 새롭게 들립니다. 나의 뜻과 계획에 맞추어 가르치는 것보다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 – 사랑과 이해, 관대함, 용서, 연민 -이 우선이라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이제는 자녀에게서 배우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몰라서 배우기도 하고, 자식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며 주님의 가르침을 새로 깨닫는 때도 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자식으로도 부족했고, 부모로도 한참 모자란 나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 그래도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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