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그는 “이방 사람 여러분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나”(1절)라고 말한다. 직역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포로”라고 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매인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른 결과로 감옥에 갇혔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한 다음,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포로”가 된 사연을 상기시킨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직분”을 받았는데, 그것은 이방인들을 위해 일하게 하시려는 뜻이었다(2절). 수신자들은 이미 사도의 회심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질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비밀”(3절)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사도행전 9장에 의하면, 아나니아가 그 계시를 바울에게 알려 주었다(행 9:15-16). 사도는 1장과 2장에서 그 비밀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4절). 과거에는 그 비밀이 사람들(“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성령으로 계시하여”(5절) 주셨다. 그 비밀이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유대인들과 함께 한 몸이 되고 공동 상속자가 되고 있었다(6절).
이 복음을 섬기는 일꾼이 된 것은 사도 자신의 의지나 공로로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이다(7절). 그는 자신을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8절)라고 소개한다. 사도는 자신에 대해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고전 15:9; 딤전 1:15), 교회를 박해했던 자신의 과거 이력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가 맡은 일은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감추워 왔던 비밀이다(9절). 그 비밀이 이제는 “교회를 통하여”(10절) 알려지고 있다.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들”(2:2)과 같은 뜻으로서 사탄과 그의 수하에 있는 악한 영들을 가리킨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사탄의 통치 영역이 궤멸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획하셨고 이루신 일이다(11절). 그것을 안다면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12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13절에서 사도는 1절에서 시작한 생각을 이어간다. 사도는,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일로 인해 수신자들이 “낙심”(13절)할까 염려한다. 믿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환난은 자주 시험 거리가 되곤 한다. 사도는 “내가 당하는 환난은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라고 격려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고난은 불신의 증거도, 실패의 사건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진실한 믿음의 증거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자리다. 사도는 지금 자신이 겪는 고난이 수신자들에게 큰 유익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묵상: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설명하면서 ‘뮈스테리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비밀”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신비”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비밀”이라고 하면 “알려주지 않고 감추고 있는 사실”을 뜻하고, “신비”라고 하면 “아무리 알려고 애써도 다 알 수 없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 중에 많은 일들은 우리에게 비밀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자녀에게 모든 계획을 다 말해 주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다 알려 주지 못하십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알려준다 해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계획을 다 알기에 그분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그분 자신입니다.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그분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알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분이 가장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 중에 많은 일들은 우리에게 신비입니다. 그분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왜 그렇게 하고 계신지 그리고 앞으로 왜 그렇게 하실 것인지, 우리의 제한된 이해력으로는 납득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많은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도, 때가 되었을 때 당신의 아들을 구원자로 보내셨다는 사실도, 아들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다는 사실도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울 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이성적으로는 언어 도단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 때문에 언어도단임에도 여전히 십자가로 인해 변화된 삶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하나님도 비밀이요 그분이 하시는 일도 비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계시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지혜와 계시를 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의 영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지금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1:17-19). 우리는 이해함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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