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수신자들에 대한 감사의 말과 기도를 적은 후, 사도는 본론을 시작한다. 먼저, 그는 수신자들이 믿기 이전의 상태에 대해 회고한다. 그들은 이방인들로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1절)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육신적으로 살아 있다 해도 실은 죽은 것이다. 줄기에서 잘린 꽃과 같다. “허물과 죄”는 동의어처럼 쓰였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세 가지의 힘에 사로잡혀 산다. 첫째는 “세상의 풍조”(2절)요, 둘째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즉 악한 영이며, 셋째는 “육신의 정욕”(3절)이다. 세 가지의 힘에 사로잡힌 자연인은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 된다. 허물과 죄를 쌓으며 살다가 영원한 심판에 처해질 운명에 처한다.
“그러나”(4절)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사도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을 설명한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모든 일은 “자비와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죄로 인해 받을 저주를 제거하고, 우리를 사로잡은 세 가지 힘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길을 열어 주셨다.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면 살리심을 받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다(5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살려내실 뿐 아니라 “하늘에 함께 앉게”(6절) 하신다. 믿는 이들은 여전히 육신 가운데 살아가지만 이미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분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를 장차 오는 모든 세대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7절).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가 얻는 구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이요 순전한 은혜다.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사도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8절) 구원을 얻었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말한 후에 사도는 이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9절)라고 덧붙인다. 구원의 은혜를 나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해 믿음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위한 모든 준비는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자비로”, “은혜로” 준비해 두셨다. 믿음은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여 구원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10절)으로 회복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그분의 뜻을 따라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죄로 인해 인간은 그 목적을 망각하고 허물과 죄 가운데 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작품이 심하게 훼손 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다. 10절은 <새한글성경>이 제대로 번역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들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마련해 두신 선한 일들을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 일어난 새창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원창조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구원을 통해 인간은 죄로 인해 망각한 원래의 목적을 회복한다.
묵상: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은 사랑으로 온 우주와 모든 생명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의 이유는 사랑이었고, 창조의 원리도 사랑이었으며, 창조의 목적도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선한 일은 곧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존재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서로 종 노릇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종 노릇 하여 모두가 왕 노릇 하는 것”이 창조의 원리였습니다. 그것이 원복(orginial blessing)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선택함으로 인해 이 원복이 깨어졌습니다. 죄를 선택했다는 말은 사랑하지 않기를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서로에게 종 노릇 하기를 거부하고 서로에게 왕 노릇 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발생한 현상은 모두가 종이 된 것입니다. 서로에게 왕 노릇 하기를 추구한 결과 인간은 세겹 줄에 결박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는 세상 풍조라는 줄이고, 다른 하나는 악한 영이라는 줄이며, 또 하나는 육신의 정욕(죄성)이라는 줄입니다. 그로 인해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허물과 죄를 쌓아올리며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에 직면할 상황에 살게 되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변덕스러운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절망적인 처지를 불쌍히 여기서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자비에서 나온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허물과 죄로 인해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영원한 나라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세겹 줄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왕 노릇 하기를 멈추고 서로에게 종 노릇 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원죄의 굴레를 벗겨 주셔서 원복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육신 가운데 살지만 이미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원래의 작품으로 회복됩니다. 그리고 원래 의도하신 대로 우리는 서로에게 종 노릇(“선한 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이며, 장차 완성될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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