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장 11-24절: 변화된 인생 이야기

해설:

11절부터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기원을 설명한다. 그는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11절)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은 것”(12절)도 아니며,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라고, 세번이나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해야 한다. “계시”로 번역되는 헬라어 ‘아포칼립시스’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 

13절부터 16절 전반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복음을 드러내 보여 주신 과정에 대한 간략한 술회다. 먼저 그는 자신이 유대교인으로서 누구보다 충실하게 율법을 지켰고 그 열심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13-14절). 그랬던 자신이 복음의 전도자가 된 것은 자신을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은혜로 불러주신”(15절) 까닭이다. 그분은 자신에게 당신의 아들을 드러내 보여주셨다(계시). 여기서 사도는 “내 안에” 보여주셨다고 표현한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일이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사도는 그 모든 일들을 행하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자신을 통해 이방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함이었다(16절). 

16절 하반절과 17절에서 사도는 다마스쿠스 사건 후에 아무와도 의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도행전에 보면, 회심 후 그는 다마스쿠스에서 아나니아와 다른 신도들을 만났고, 박해를 피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가 다소로 내려간 것으로 되어 있다(행 9:10-30). 여기서 바울은 이 모든 세부 정보들을 생략하고 회심 후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자신에게 계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게바(18절) 즉 베드로를 만난 것은 삼 년 후의 일이다. 그는 두 주일을 머물러 있으면서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만을 만난다(19절). 사도는 자신이 진실만을 말하고 있음을 강조한 다음(20절), 그 후에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다고 말한다(21절). 그런 까닭에 유다에 있는 신도들은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다만 과거에 자신들을 박해했던 사람이 지금은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말한다(22-24절).  

묵상: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는 그분으로 인해 변화된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바울의 인생 여정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이기에 그의 인생이 이토록 심하게, 이토록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 만남으로 인해 바울은 당시에 스펙 좋은 율법 교사의 창창한 미래를 포기하고 가난한 유랑 전도자의 길에 들어섭니다. 

그 이후의 그의 인생은 고난으로 가득했지만 그는 그것을 영예로 알았습니다. 그가 남긴 편지들을 읽어보면 그의 정신이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온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바울이 그리스-로마 시대에 나타났던 가장 심오하고 냉철한 사상가들 중 하나였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고대에 흔히 일어났던 종교 체험으로 인해 인생이 뒤집힌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마스쿠스에서의 체험 후에 많은 시간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생각했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실임을 인정했을 것이며, 그 복음전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은 인생의 여정과 궤도를 이렇듯 심하게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죄 사함 받고 죽고 나서 천국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억지로, 의무로,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체험으로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인격적 체험만이 그 사람의 인생의 질과 방향과 색깔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그것은 복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언이 됩니다.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놓으신 변화가 있는가?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나의 이야기입니다”라고 나눌만한 “드러내심”(계시)가 나에게 있는가? 


Comments

4 responses to “갈라디아서 1장 11-24절: 변화된 인생 이야기”

  1. 지난날 주님의 나타나심이 강력하지 않지만 몇번 체험을 했습니다, 그 귀한 기억이 점점흐려저가고 있는 상태입니다만 말씀을 매일 아침 꼭 붙잡고 살기를 결단하고 있습니다. 우선 주위에있는 주님을모르는 친족들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랑과 기도와 섬기는 삶으로 살아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사귐의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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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주님이 심판주로 오실때까지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 사건을 믿음의 공동체가 본 받아 복음 전도의 여정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바랍니다. 결혼도 아니하고 자비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모두를 바친 사도 바울과 같은 복음 전도의 열정은 없을 찌라도와 가까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믿음의 공동체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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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Chris Yoo Avatar
    Chris Yoo

    주님 만나기 전에 나에 모습을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세상일에 허덕이며 사는 불쌍한 인생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서 체험하고 이제는 조금은 사람답게 살아갑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다시 오실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하루 하루 묵묵히 변화된 모습으로 섬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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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더운 날씨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정확도가 높아진 기상 예측 기술 덕분에 ‘올 여름은 예년보다 훨씬 더 더울 것이다,’ 혹은 ‘겨울 한파가 일찍 찾아올 것이다’ 등의 일기예보를 미리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어떤 때는 서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 주가 더우리라고 지난 주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말 덥고, 해마다 느끼듯이 올해가 ‘최고로’ 더운 것 같고, 또 올 겨울 날씨가 어떠하리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 때 가면 여전히 춥고, 바람이 시리고, 건조해서 답답하고 갑갑할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 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같지만, 참고만 할 뿐 오늘은 오늘 경험하는 몫이 분명하게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인가 싶습니다. 설교로 듣고 묵상하면서 얻는 ‘깨달음’이 있는데도 일상에서 어떤 마찰이나 도전을 만나면 처음인 것 같고, 하나도 모르겠는 것 같아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바울도 정말 처음이고 하나도 모르겠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다메섹 (다마스쿠스)에서 그는 예상 못한 일,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을 경험합니다. 그가 알고 경험했던 것들을 부정하는, 정반대의 상황을 경험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유대교를 믿고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데 열심을 갖고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이셨다 (14-16절)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걷던 길을 막으시고 다른 길로 가라고 하신 겁니다.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것을 뒤집는 – 글이라면 북북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는 – 사건입니다. 바울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다메섹의 회심’이라는 제목을 붙이면 바울 만의 경험이 되지만, 생각과 경험을 무너뜨리는 일,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내내 감당해야 하는 일…이런 일들이라면 우리도 경험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또 있을 일입니다. 믿음은 이런 일들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걸까 생각하게 합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사건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시간을 들였습니다. ‘예수님을 보았어도’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겁니다. 물론 바울은 이 일로 상당기간 눈이 멀었고 정신이 나간 듯 혼란스러웠지만, 경험을 스토리로 재구성하는, 구슬을 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손에 보석 목걸이를 쥐어 주신게 아닌겁니다. 사도 바울이 이 이야기를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크레덴셜을 확고히 하려고 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직접 계시하셨다고 강조해서 말함으로써 자신의 ‘특별함’이 정말 특별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겠지요. 그러면서 그는 또 주님의 자비와 은혜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을겁니다. 자기 같은 사람도 이런 은혜를 경험했다는 것은 당신들 이방인들도 경험할 수 있다는거라고 말하고 싶은겁니다. 특별해야만 특별한 것이 ‘사실’이라면,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할 수 있는 것은 ‘진실’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보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를 진실로 보시고 진실로 대하신다고 믿습니다. 나도 하나님 앞에 그러기를 원합니다. 믿음으로 살기에 언제나 하나님을 찾고,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일상에서 주님을 만나는 일, 어떤 경험도 은혜의 스토리가 되는 일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일을 나누는 데가 교회가 아닐까요.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십니다. 예배는 일상이고, 주일엔 교제를 하고 나누려고 교회에 가는거라고.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는게 아니라 예배는 매일 삶에서 드리는 것이고 교회엔 은혜를 경험한 이야기를 나누고 교제하려고 가는 것이라고…바울의 나눔이 나의 나눔으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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