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장 1-5절: 믿어야 하는 이유

해설:

바울은 먼저 당시의 편지 양식에 따라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힌다(1-2절). 다른 편지에서는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했는데 이 편지에서는 “사람들이 시켜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사람이 맡겨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명하심으로써 사도가 된 나 바울”(1절)이라고 길게 소개한다.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이 사도로서의 그의 권위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가 옅보인다. 유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깎아 내리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는 자신과 함께 있었던 믿음의 식구들의 안부를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하고(2절) 축복의 기도를 전한다(3절). “은혜”는 그리스-로마인들이 인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였고, “평화”(샬롬)는 유대인들의 인사법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 중에 이방인과 유대인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두 인사법을 결합시키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이라는 말을 덧인니다. 은혜와 평화의 궁극적인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사도는 인사말을 전하는 과정에서 복음을 요약한다. 4절은 최소한의 단어로 표현된 복음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사도는 복음의 세 가지 핵심 내용을 밝힌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에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다. 그로 인해 우리는 과거의 죄로부터 해방되었다. 둘째, 그것은 또한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주기” 위한 것이다. 구원은 과거의 죄에 대한 형벌로부터 면제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서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예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죄로 인한 저주와 불행으로부터 건지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이어서 사도는 하나님께 송영의 기도를 올리며 인사말을 끝낸다(5절).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요소는 죄가 무엇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단수 명사로서의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실존 상태를 가리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살든 죽든 하나님 안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죄는 하나님 안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실존 상태에서 인간이 행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죄들”입니다.

죄는 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한 개인의 죄는 인류 전체의 죄와 연결되어 있고, 한 개인의 운명은 인류 전체의 운명과 얽혀 있습니다. 한 개인의 죄는 인류 전체의 죄의 일부이며, 인류의 죄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망가뜨렸습니다. 한 개인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 전체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율법과 도덕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대속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택하신 이유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그분이 대신 담당하신 죄에 나의 죄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할 때 과거의 죄에 대해 용서를 받습니다. 

또한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더 이상 죄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삶을 살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성령을 통해 지금 믿는 이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은 “죄 없는 삶”을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의 힘에 속절없이 넘어지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거룩한 삶으로 성장해 간다는 뜻입니다. 그 거룩한 여정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보고 듣고 맛보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죄가 인류의 죄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한 개인의 회심과 성화는 인류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삶에 대한 나 개인의 노력은 인류가 당하고 있는 불행에 대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헌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지 수긍이 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갈라디아서 1장 1-5절: 믿어야 하는 이유”

  1. gachi049 Avatar
    gachi049

    인간의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 때문에 한사람이 지은 죄는 시대가 변화 될 수록 더욱 지능화, 악랄화, 무차별화 되어 감으로 수많은 예언자와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고 치셨지만 죄는 점점 인간을 옥죄므로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프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삼으시고 인류를 구원 하셨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상 명령이신 복음을 전하고 언행을 조심함으로 선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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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부끄럽고 더럽고 흉악한 냄새나는 지난날의 죄를 십자가를 통해 깨끗게하신 그토록 엄청하고 놀랍고 믿기 어려운 은혜를 믿겠습니다. 앞으로는 거룩한길을 걷게다는 결단을 합니다만 자신이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만 보고 살겠습니다. 이놀라운 은혜를 세상에 알리며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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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바울의 ‘고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집이랄까, 확신이랄까…바울의 시그니처 특징 같은 느낌이 전해집니다.
    세간의 기준이나 평가는 생각할 가치가 없다는 자기 원칙 같은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사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뽑거나 보내서 지금 이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를 사도로 삼으셨는데 그분은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며, 또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건지시고 죄를 씻기려고 자기 몸을 바친 분 (4절)이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이요 그것은 곧 아버지 하나님의 뜻으로 된 일이라고 확인 시키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당신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염두에 두고 나의
    편지를 읽어 주십시요’라는 것이겠지요. 하고 싶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해야 할 말을 벌써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이에 안부의 인사까지도 잊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울의 필력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미국 대통령의 업무수행 능력을
    우려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 우려를 잠재우려고 방송 인터뷰도 했는데 대선 레이스를 포기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 ‘주님이
    그만두라면 사퇴 하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답을 했습니다. 본인의 답은 “If the Lord Almighty came
    down and said, ‘Joe, get out of the race,’ I’d get out of the race. The
    Lord Almighty is not coming down” 입니다. 주님을 ‘팔아’ 자기 심정을 보여 주었다고 할까요, 자기는 오직
    주님의 말 만 듣는다는 말일까요, 제아무리 말들을 해도 이렇게 중요한 결정은 주님께 달렸다는 뜻일까요…인터뷰 이후에 나온 관련
    기사들은 바이든의 ‘고집스러운’ 면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의 답은 ‘주님이 (직접) 오셔서 너 이제 그만 둬라 라고 하시면 그만
    두겠지만 주님은 오시지 않는다’ 입니다. 자기가 대선을 포기하는 일은 주님의 재림만큼 일어날 확률이 적다는 말로 들립니다. 갈라디아
    지방 신자들에게 쓴 바울의 편지를 읽는데 대통령의 인터뷰가 떠오른 이유는 사람의 확신과 하나님의 뜻은 가까운 것인가, 먼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확신의 화신입니다. 그의 편지들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주는 데 유익합니다. 그의 문체나 표현은
    나도 잘 모르는 내 마음까지도 보여줄 정도로 정확하기도 하고, 중심이 뭔지, 본체가 뭔지 몰라 헤맬 때 명확하게 짚어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면이 없어 감동을 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갈등하고 고뇌하는 것이 얼마나 일반적인 일인지를 이해하는 음성도 담겨
    있습니다. 주님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주님께서 처음 주셨지만,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은 바울 사도의 공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바울의 인도를 따라 읽어가는 신약 성서는 믿음의 시작과 길, 목적지를 말해 줍니다. 믿게된 연유, 믿는 이유, 믿을 때
    얻는 보상…이 모든 것이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확신은 까다로운 상대입니다. 자기 확신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데,
    자기 확신이 많으면 어떤 일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은혜와 확신, 하나님의 뜻과 나의 확신은 손과 장갑이면 좋겠는데 오른손과 왼손인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면서 고집스러운 아이를 고집스러운 부모가 키우는 것 같은 긴장감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이 뽑은 것도 아니요, 사람들이 보낸 것도 아닌 사도 바울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주님 말씀으로
    분별하는 지혜를 은혜 가운데서 감당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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