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장 27-31절: 살라는 명령

해설:

저자는 세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죽음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아브라함은 백일흔다섯 살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어머니 사라의 장례를 위해 아버지가 사둔 막벨라 굴에 아버지를 안장합니다(25:7-11). 이삭은 백여든 살에 죽어 에서와 야곱에 의해 막벨라 굴에 안장됩니다(35:27-29). 야곱은 이집트에서 열일곱 해를 살고 백마흔일곱 살에 세상을 떠납니다(47:28; 49:29-33). 야곱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의 가족은 요셉과 바로의 선처 덕분에 고센 땅에 정착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거기에서 그들은 재산을 얻고, 생육하고 번성하였다”(27절)고 적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은 첫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며(1:22, 28), 홍수 후에 노아와 그 가족에게 주신 명령이고(9:1, 7), 아브라함(17:6, 20)과 야곱(28:3; 35:11)에게 주어진 명령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그 명령/약속이 이집트 땅에서 그들에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을 날이 가까이 온 것을 감지한 야곱은 요셉을 부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모든 예를 갖추어 대했을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야곱이 요셉에게 하는 말(29-30절)을 하대하는 말투로 번역을 해 놓았지만, 경어체로 번역하는 것이 옳을 뻔했습니다. 중전이 된 딸에게 아버지가 모든 예를 갖추어 말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될 것입니다. “네가 아버지에게 효도할 생각이 있으면”(29절)이라는 말은 “총리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신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말하면서 “부디”라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합니다. 우리 말 번역에는 그것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손을 다리 사이에 넣는 행동은 엄중한 서약을 의미하는 행위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자신이 죽거든 시신을 이집트에 묻지 말고 아브라함과 이삭이 묻힌 곳에 묻어 달라고 청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시작하신 일이 계속 이어지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고 맹세하자, 야곱은 침상 밑에 업드립니다. “하나님께 경배하였다”(31절)는 말은 원문에 없습니다. 학자들은 야곱이 요셉에게 감사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묵상:

한자를 풀이하면서 성서의 진리가 한자 안에 들어 있다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잘도 꿰어 맞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전혀 닿지 않는 말도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하나님의 뜻은 피조 세계와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일반계시’라고 부릅니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언어가 만들어질 때에는 우주와 인생과 사물의 이치가 담기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한자 단어에서 성경의 진리가 종종 발견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순수 우리 말 단어에도 놀라운 진리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생명’(生命)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생명이 주어져 있다는 말은 “살라는 명령”입니다. 그냥 목숨만 부지하고 살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 답게 살라는 뜻입니다. 인생에 주어진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고, 사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그 목숨은 위에 계신 분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태초에 하나님이 첫 사람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에게 필요한 모든 환경을 조성하신 후에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생명의 존재 이유는 주어진 것들을 누리고 즐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기쁨입니다.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자라는 것이 어머니의 기쁨이며, 정원의 나무들이 싱싱하게 자라는 것이 정원사의 기쁨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홍수 후에 노아에게 그리고 족장들에게 이 명령을 거듭 확인해 주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생명 세상을 깨뜨린 것이 죄입니다. 죄가 들어옴으로 인해 모든 생명들의 균형과 조화는 깨어졌고, 인간은 자기 중심적으로 왜곡되었습니다. 모두가 같이 충만한 생명을 누리도록 창조된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로 타락했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허락된 모든 것을 함께 누리고 축하하는 천국이 변하여 서로 더 가지기 위해 투쟁하는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살라는 명령을 충실히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진 생명 세상을 회복하는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만이라도 잘 살겠다는 것이 ‘번영의 복음’입니다. 반면, 모두가 잘 살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나의 유익과 안위를 포기하자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모든 것을 살리기 위해 당신의 전부를 내어 주신 주님처럼, 우리도 생명 세상을 위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47장 27-31절: 살라는 명령”

  1. 바르게 살도록 허락하신 믿음의 공동체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를 지적하고 정죄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지적받고 정죄를 당하는 교회에 속해있는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없는 자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모든교회가 서로 포용하고 은혜를 깨닫고 주님안에서 하나되어 사랑하는 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말씀이 살아있고 생명이있는 힘이있고 하나가된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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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1:27~28)라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답게 살라고 큰 복을 허락하셨는데 죄가 인간 속에 들어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욕망과 욕심의 올개미에 묶여져 오늘날과 같이 전쟁으로 서로 죽이고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역겨운 행동을 하고 심지어 교단까지 파고 드는 사탄의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있습니다. 인간들의 범죄가 창궐하기 전에 마라나타! 주님 어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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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브라함도 오늘 본문의 야곱처럼 한 적이 있습니다. 24장에서 아브라함은 자기 재산을 맡아 돌보는 늙은 종을 불러 넓적다리뼈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하라고 시킵니다.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될 여자를 고향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나홀의 동네에서 구해 오겠다는 맹세를 시킵니다. 그렇게 얻은 며느리가 리브가입니다. 야곱의 어머니, 야곱의 넘버원 팬 리브가입니다. 오늘 야곱은 아들 요셉을 불러 약속하게 만듭니다. 손을 다리 아래에 넣고 자기가 죽으면 이집트 땅에 묻지 않고 조상들이 누워 계신 곳에 장사하겠다는 서약을 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자기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런 약속을 시킵니다. 내게도 그런 때, 그런 느낌을 갖게 될 때가 올까요. 온다면, 무엇을 약속하라고 할까요. 한국도 미국도 노후대비에 관한 정보가 많이 있습니다.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한 조언부터 자신의 장례 준비에 이르기까지 챙겨야 할 것들을 정리해서 알려주는 리소스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어느날 황급하게 떠나는 일은 없도록 미리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하는데, 죽음이라는게 준비한다고 준비가 되는 일인지요. 여자들이 모이면 살림살이며 옷가지며 정리해야 할 게 너무 많다고, 버리고 치우는 일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라는 말을 합니다. 딸이나 며느리에게 주겠다고 고이 간직해 둔 물건부터 빨리 주든지 버리든지 하자는 말도 합니다. 우리 눈에나 좋게 보이지 자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다 버리게 될 거 우리 손으로 정리해서 애들 일을 덜어주는게 잘하는거라는 데 다들 동의합니다. 물건은 그렇다치고, 재산은 잘 생각해 두었다가 적절한 시간에 (이 때가 결정적으로 중요해 보이는데) 어떻게 처리하라고 지시를 해야 합니다. 남기는 것이 많든 적든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는 ‘자기 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책임입니다. 진짜 문제는, 내 삶의 어느 부분을 아이들에게 남겨 주느냐인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사라 리브가 라헬…나의 자식 둘은 나의 유전자를 받았습니다. 나와 남편의 성격, 취향, 지능, 외모, 장점, 취약점…’사람됨’을 구성하는 인자들을 이어 받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도, 아이들도 선택해서 주거나 받은 것이 아닙니다. 믿는 이들은 이를 하나님의 섭리로 되었다고 하고, 믿지 않는 이들은 우연히 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내가 나의 선택으로 아이들에게 남겨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다리 밑에 손을 넣고 맹세해 다오’라고 할 것은 무엇일까요. 결혼하지 않은 아들에게 이러이러한 여자와 결혼한다고 맹세해라? 딸 둘을 키우는 나의 딸에게는 현모양처가 되어라? 아니면, 엄마는 경제를 너무 몰라서 아무 것도 못했는데 너희는 꼭 땅을 사라? 몇 달 전에 아들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왜 그런 대화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죽는 순간에도 너와 누나가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서로 의지하고 도와 주면서 살아야하는데…이거 걱정할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혼자 큰 내가 최초로 가진 소원이 나의 최후의 소원입니다. 내게도 형제가 있었으면…유언을 남기는 순간이 언제가 될지, 그런 순간이 올지 알 수 없습니다. 크리스찬들은 ‘믿음을 유산으로’ 남깁니다. 나의 삶의 어느 부분, 내 믿음의 무엇을 자식들에게 줄까요… 평생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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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잘못된 신념이나 가치가 아닌, 제 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정복한 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될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생육과 번성이 그 뜻안에서 이루어 질것을 믿습니다. 살아감에 있어, 제가 주인공인 아닌,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의 조그마한 한 부분으로 창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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