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장 1-12절: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

해설:

아버지와 해후한 후에 요셉은 형들 중 다섯 형제를 데리고 바로를 찾아가 인사 시킵니다(1-2절). 요셉의 예상대로 바로는 그들에게 생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형제들은 조상 때부터 유목민으로 살았다고 답하면서 고센 땅에서 가축을 기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3절). “여기에 잠시 머무르려고 왔습니다”(4절)라는 표현에서 보듯, 그들은 이집트에 영구 정착할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는 그 청을 허락하면서 자신의 가축까지 길러 달라고 부탁합니다(5-6절). 

그런 다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와서 바로에게 소개합니다(7절). 야곱은 바로를 만나 축복합니다(8절). “축복하다”는 일상적인 인사를 의미하기도 하고 제의적인 축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를 축복했을 것입니다. 바로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베푼 호의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비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는 야곱을 만나자 다짜고짜 몇 살이냐고 묻습니다(8절). 나이가 궁금할 정도로 겉모습이 늙어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곱은 백 삼십 세라고 답하면서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9절)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몇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우리는 야곱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다시 축복하고 나옵니다(10절). 

이렇게 하여 요셉의 가족은 고센 땅(후에 라암세스라고 불림)에 정착했고, 요셉은 흉년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식량을 공급해 줍니다(11-12절).

묵상:

야곱이 바로 앞에 선 모습을 상상합니다. 야곱은 무력한 이주민이고, 바로는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절대권력자입니다. 바로의 나이가 얼마였는지 알 수 없지만, 호호백발의 야곱에 비하면 그는 젊고 강했습니다. 바로는 왕의 모든 위엄으로 차려 입었고, 야곱은 궁정에서 제공해 준 예복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철저히 무력했고 바로는 전능자였습니다. 바로는 모든 것을 가졌으나 야곱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에게도 바로에게 줄 것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바로가 가진 모든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입니다. 바로는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그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다만 아버지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여 살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바로를 보고 측은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시각에서 보면, 그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순식간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믿는 사람의 차별성이 드러납니다. 야곱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다 가진 것 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자신이 야곱보다 더 낫다고 생각 했겠지만, 야곱은 바로의 모든 권력과 권세와 영광을 덧없는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앞에 서 있는 야곱은 마치 제사장과 같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는 바로 앞에서 모든 예의를 갖추어 대했지만 비굴하지는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이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고후 6:10)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흔들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47장 1-12절: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

  1. 본향을 향해가는 순례자 입니다, 지난 85년을 되돌아볼때 일제강정기 625 사변 굶주리는 보리고개 군사정권 또 빈손으로 미국이주 인종차별 모든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귀한 보배 십자가의 은혜를 갖고 살아 왔습니다, 1967년 홀로 이민와서 13명의 가족을 이뤘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며 세상을 축복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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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야곱이 강대국의 제왕인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이 마치 모세가 자기 백성을 보내 달라고 서있는 듯 합니다. 130년 동안 험한 세상을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함이 ‘나는 험한 세상에서 가진 것은 없으나 인류의 주인이 되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최고의 권력자인 당신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도 하나님을 믿으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 강력한 권력과 재물을 소유한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과 능력으로 남은 여정을 살아낼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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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 본문에는 파라오와 야곱, 요셉과 형 다섯 명이 나옵니다. 파라오는 형들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고, 형들은 가축을 치는 목축업이라고 답합니다. 또 그들은 고센 땅에서 양 떼를 치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고 파라오는 땅을 줍니다. 자기의 가축도 같이 돌보라고 합니다. 요셉의 코치를 잘 따른 결과로 땅과 일감을 얻습니다. 다음은 파라오와 야곱의 대화입니다. 야곱에게 파라오는 나이를 묻습니다. 파라오가 한국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누굴 만나면 -요새는 그러지 않지만- 무슨 일 하느냐 묻고 또 몇 살이냐고 물었습니다. 파라오에게 하는 야곱의 대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130살인데 ‘조상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답합니다. 놀랍도록 솔직한 답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일반인도 아니고 세상의 최고 권력자 앞에서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정말 힘들게,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파라오는 야곱의 답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절대 권력자의 눈에 평민은 어떤 존재였을지. 험악한 세월, 고생, 고난, 이런 단어들을 이해했을지…파라오는 야곱 일가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데 다 요셉을 통해 합니다. 요셉을 그만큼 중하게 여긴다는 표시겠지요. 어찌보면 요셉의 삶의 열매가 오늘 본문인지 모릅니다. 이집트 낯 선 땅에서 고생하면서 맺은 성공은 아버지와 형들을 안전하고 편하게 모시기 위해서였을지 모릅니다. 미국으로 (한국으로) 이주하여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제 2, 제 3의 요셉입니다. 우리의 일상, 나의 삶을 성서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내면 요셉이라는 정수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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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삶의 기준이, 양궁 과녁판의 정중앙에 꽃혀있는 화살처럼, 조금도 빗나감 없이 하나님에게만 꽃혀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발아래 엎드려 항상 경외함과 겸비한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될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세상적인 삶의 기준이 아니라, 강자에게, 혹은 사람에게는, 당당하지만 약자를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볼수 있는 그 시선을 갖기를 원합니다. 주여, 더욱 깨닫도록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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