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장: 상처가 꽃이 되게 하는 법

해설:

동생과 아버지를 향한 유다의 뜨거운 마음을 보고 요셉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물러가게 한 다음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는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쏟아 놓습니다(1절).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쌓였던 감정의 봇물이 터지자 한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요셉의 울음 소리가 바로의 궁에까지 들릴 정도였습니다(2절). 

형들은 요셉의 말을 믿을 수도 없었고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형제들은 자신들이 죽이려 했다가 노예로 팔아넘긴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자신들 앞에 서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믿어진 다음에는 두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요셉은 절대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3절).

요셉은 형제들을 가까이 오게 한 후, 두려워 하지 말라고, 자신을 이집트로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해 줍니다(4-8절). 이것이 그가 이집트로 팔려 온 이후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경험해 온 진실입니다. 그는, 인간의 역사는 인간들의 선택과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지만 배후에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인간의 악행은 여전히 인간의 책임이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그 악행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요셉은 그 섭리를 믿었습니다. 형들이 자신에게 찾아와 과거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진실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의 배후에 계셨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가뭄이 끝나려면 오년이 더 있어야 하니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이릅니다(9절). 그는 이미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아갈 곳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아버지와 모든 식솔들과 가축들을 데리고 와서 고센 지역에 머물러 살면 자신이 모든 것을 돌보아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10-13절). 이렇게 말한 다음,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부둥켜 안고 통곡합니다(14절). 그런 다음 형제들을 하나씩 끌어 안고 입을 맞추고 함께 웁니다(15절). 그러고 나서야 형들은 긴장을 풀고 요셉과 말을 주고 받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이 바로에게 전해지자 요셉의 모든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도록 모든 물자를 제공해 주겠다고 제안하면서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땅을 택하라고 말합니다(16-20절). 요셉은 여러 대의 수레와 넉넉한 양식을 주어 아버지와 가족을 모시러 가게 합니다(21절). 그는 형들에게 새 옷을 주어 입히고 아버지에게 드릴 예물도 넉넉히 마련해 줍니다(22-23절). 요셉은 형들을 보내면서 “가시는 길에 서로들 탓하지 마십시오”(24절) 하고 당부합니다. 과거 야기를 하면서 네 탓 내 탓 하며 다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야곱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보고합니다. 야곱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아들들이 가져 온 양식과 많은 선물을 보고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25-27절). 야곱은 아들들에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고는 기꺼이 가서 요셉을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28절). 

묵상:

요셉의 이야기는 용서와 화해의 교과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사에는 때로 인간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심한 상처(악의, 시기, 질투, 혐오, 배신, 상실, 상해, 살상 등)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 상처는 상처 입은 사람에게 분노와 원한의 원인이 되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은 과거에 묶여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은 결국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악의 순환 고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깊어지는 것이 인간의 죄 된 본성의 속성입니다.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나 결단으로 되지 않습니다. 상실의 깊은 질곡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인간적으로 모두에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납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를 생각하며 분노를 쌓기를 멈추고 미래를 바라보며 하루 하루를 충실히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가끔 멈추어 걸어 온 길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신비한 손길로 인도해 오셨음을 깨닫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실수와 악행을 거두어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 섭리를 체험하는 만큼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하고 감동적인 화해의 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열일곱의 나이에 이를 때까지 철부지 응석받이로 살았던 그가 노예로 팔려가는 끔찍한 시련을 겪으면서 하나님에게 눈 뜨고, 그 이후로 그는 인간의 악행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 그분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인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내던져졌을 때 요셉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짐작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하나님은 그의 악행을 사용하여 요셉을 더 높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형제들을 만나 화해하고 보니, 자신에게 대한 형들의 악행도 역시 하나님의 손에서 선을 만들어 내는 도구로 쓰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악의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선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해서 인간의 악이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과 빌라도의 비겁한 선택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고 해서 그들의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시 1:1)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악의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 인간의 악의를 사용하여 선한 열매를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고난을 견뎌낼 수 있고 과거에 붙들어 매는 상처의 악한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상처는 꽃으로 변하고, 상처의 고름은 꿀로 변하며, 고름 냄새는 향기로 변합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45장: 상처가 꽃이 되게 하는 법”

  1. 20년 이상 제 기도에 침묵하시는 주님의 선하고 거룩한 뜻이 있을줄 믿습니다, 낙심하지않고 가장 적절한 시간에 가장적절한 응답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원합니다. 지난날 마음의 상처가 하늘나라으로 향한 훈장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지난날은 지났으니 십자가 아래서 새생명의 삶으로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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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악행을 선한 능력으로 바꾸셔서 하나님 됨을 알게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 하심을 귀로만 듣고 있으나 유다와 그형제들, 요셉을 통하여 뜻을 이루심을 눈으로 바라보는 듯합니다. 조국 대한민국이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 온 누리에 복음을 전파하는 마지막 세대의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위하여 수 년 동안 온 동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시간에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이 조국의 모습을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남은 여정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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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창세기를 읽어 오면서 느끼는 것은 워낙 많이 읽고 들은 이야기들이어서, ‘친숙’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바로 그런 친숙함 때문에 세심하게 정성 들여 읽지 않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영어로 된 속담 중엔 친숙함을 경계하라는 속담들이 있습니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 – 익숙함이 경멸을 낳는다, A little learning is a dangerous thing – 얕은 지식은 위험하다 등입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혹시 놓친 것이 있을까 싶어 랍비 조나단 색스의 블로그를 읽어 보았습니다. 최근에 한국 신문 기사에서 한국계 여성 랍비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국 어느 대학에 이스라엘학과가 개설이 된 것과 관련해 한국을 방문한 여성 랍비를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한국인 모친과 유대인 부친에게서 태어나 랍비가 되었습니다. 21세기라고 해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성이 랍비가 되는 일은 흔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 한국 사회가 씨름하는 문제들을 푸는 열쇠로 종교를 꼽았습니다. 공동체 중심의 유대교가 가진 특징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랍비로서, 유대인의 세계관을 갖고 하는 말이니까 감안하고 들어야 하지만 교육의 핵심이 토론에 있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활발한 토론은 성경연구에도 적용이 됩니다. 랍비 색스의 블로그를 읽다 보면 그들의 성경 읽기와 해석 문화는 끊임없는 질문과 답, 질문과 답의 반복에서 나온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한 글이 있는데 시작 부분부터 남다릅니다. 요셉은 왜 아버지 야곱에게 전갈을 보내지 않았을까 – 이집트에 팔려가서 고생하고 모함을 받으며 어렵게 사는 동안에야 그럴 정신이 없었겠지만 파라오의 오른팔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올랐으면 가나안으로 사람을 보내는 것 쯤은 일도 아니었을텐데…이 질문은 다른 질문과도 만납니다. 형 유다의 긴 설명을 듣고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던 요셉이 주변을 물린 뒤에 형들에게 하는 첫 마디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신가요? (3절)” 라는 이 질문에 주목합니다. 블로그의 길을 여기에 옮길 수는 없고, 다만 몇 가지는 언급하고 싶습니다. 요셉은 긴 세월동안 아버지 야곱의 사랑과 그로 인한 형들과의 불화에 대해 생각하며 깨닫는 것이 많았으리라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오해도 많이 일어납니다. 랍비들은 오해로 인해 펼쳐지는 인간 관계의 어려움과 고난을 묵상합니다. 랍비들의 성경 해석은 촘촘하고 세밀합니다. 말씀 구절에서 ‘교훈’을 찾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로 만들기까지 많은 가설을 세우고 증명을 하고 반박하고 또 다시 찾습니다. 요셉의 스토리는 용서와 화해의 스토리입니다. 형제 간의 갈등은 구약의 단골 주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성경의 커다란 테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이야기를 압축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정제됩니다. 용서와 화해, 오해와 깨달음…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오해의 그림자를 걷어 내는 주님의 빛을 구합니다. 말씀의 바다에서 지혜의 진주 한 알을 구할 수만 있다면…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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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하나님의 섭리 –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 “그들 모두 해후한 후에 잘먹고 잘살게 되었다가 아니라,” 말씀처럼 “그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나갔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나, 그 섭리를 깨닫았을때에 기쁨과 환희를 상상하여, 오늘 하루도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갈수 있는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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