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4장: 사람을 고쳐 쓰시는 하나님

해설:

요셉은 형제들과 충분히 회포를 푼 후에 종들에게 곡식을 내어 주도록 명합니다(1절). 막내 동생 베냐민의 자루에는 형들이 곡물값으로 낸 돈과 자신이 아끼는 은잔을 넣게 합니다(2절). 형들의 마음을 알아 보기 위해서 요셉이 함정을 판 것입니다. 그들이 요셉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한 나절 쯤 갔을 때 요셉은 관리인을 시켜 형제들을 추격하게 합니다. 그들을 따라 잡으면 왜 은잔을 훔쳐갔느냐고 호통을 치라 이릅니다(3-5절).

요셉의 지시대로 관리인은 형제들을 따라 잡고 왜 은잔을 훔쳐 갔느냐고 다그칩니다(6절). 그러자 형제들은 결백을 주장하면서 만일 자루를 뒤져서 은잔이 나오면 그 사람은 죽이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7-9절). 누구도 그런 일을 했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관리인은 은잔을 훔친 사람만 주인의 종이 되고 나머지는 돌아가도 좋다고 답합니다(10절). 형제들이 곡식 자루를 관리인 앞에 내려 놓자, 그는 맏아들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자루를 뒤지는데, 베냐민의 자루에서 그 잔이 나옵니다(11-12절). 그것을 보고 형제들은 이젠 죽었다 싶어 옷을 찢고 웁니다. 그들은 오던 길을 돌아 다시 요셉의 집으로 돌아갑니다(13절). 

그들이 돌아오자 요셉은 그들이 한 일에 대해 크게 책망합니다(14-15절). 이 지점에서 저자는 “유다와 그 형제들이……”라고 쓰면서 유다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유다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인정하면서 모두가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16절). 그러자 요셉은 잔을 훔쳐간 막내만 자신의 종이 되고 다른 형제들은 돌아가도 좋다고 말합니다(17절).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제들의 마음이 어떤지를 떠 보려 했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다가 요셉에게 나서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베냐민이 아버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아들이기에 곡식이 떨어질 때까지 돌아올 수 없었으며, 이번에 올 때에도 간신히 아버지를 설득하여 막내 동생을 데리고 왔으며, 따라서 막내 동생을 두고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은 자식된 그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호소합니다(18-32절). 유댜는 차라리 자신을 종으로 받아 주고 막내 동생은 아버지께 보내 달라고 간청합니다(18-33절). 만일 막내 동생을 두고 돌아갔을 때 아버지에게 닥칠 불행을 차마 볼 수가 없다면서 간곡하게 호소합니다(34절).

묵상: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열두 지파들 중에 유다 지파는 장자 지파가 됩니다. 맏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을 범하여 실격 되었고,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니다의 일로 세겜 주민들을 살륙하는 끔찍한 죄를 범하여 실격 됩니다. 

넷째 아들 유다 역시 장자 지파의 조상이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는 요셉을 구덩이에서 굶어 죽게 하느니 노예로 팔아서 돈이라도 벌자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37:26-27). 그는 또한 일찌기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독립하여 가나안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고 가나안 여인과 혼인을 합니다(38:1-2). 그의 두 아들은 하나님에게 징벌 받아 죽을 정도로 악했는데, 유다는 아들들의 죽음을 며느리 다말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그는 아내가 죽었을 때 애도 기간을 끝내자 마자 성매매 여인을 찾을 정도로 막장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일찌감치 장자 지파의 조상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나 유다가 다시 등장했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두번째로 곡식을 사러 갈 때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에 앞장을 섭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합니다(43장). 요셉이 짜 놓은 계략이 말려서 꼼짝 없이 막내 동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유다가 나서서 요셉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막내 동생을 보내 달라고 간곡히 청합니다. 그 대가로 자신의 인생을 내놓겠다고 제안합니다. 십여 년 전의 유다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유다가 다말의 사건을 통해 처절하게 깨어진 다음 새로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그에게는 새로운 존재로 발돋움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유다는 장자 지파의 조상이 되고, 그의 후손에서 다윗이 나오고, 메시야가 나옵니다. 

흔히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나 통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고쳐 쓰십니다. 성경에 그 예가 수두룩한데, 유다는 그 중에서도 으뜸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처절한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44장: 사람을 고쳐 쓰시는 하나님”

  1.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저질은 행위를 통해 전혀 다른 인간으로 고치셔서 그의 후손으로 하여금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음을 깨닫게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라는 의심이 있을 정도로 지독한 고난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하고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여정이 되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셔서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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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까지 지내온것 내 나름데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진실로 보이지않는 은혜로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만 그렇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상대방의 평강이 내 평강보다 더 귀중한것을 깨닫고 사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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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 교회에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 대화 중에 나왔습니다. 한인 여선교회의 일을 한 임원과 의논하는데 특정 인물에 대해 말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본인이 임원직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경로를 통해 표시를 했기에 기본 교육을 마친 뒤 그 포지션이 감당해야 할 첫번째 일을 해야 하는 때가 와서 몇 사람이 함께 처리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났습니다. 자기 원하는대로 하려는 의지가 너무 강해서 같이 일하려는 사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평소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임원직을 맡기는 데 주저했는데 원로 권사님이 여러번 권유하셔서 ‘마지못해’ 임원직을 제안했는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하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나는 한인 여선교회 일에 직접적으로 참가하지는 않지만 연회와 한인 여선교회가 협동으로 하는 일도 있어서 어제 그분이 내게 하소연/한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내게 말을 해준 그분은 원로 권사님께 이미 특정 인물을 권유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사람이 다른 임원들과 협력해서 일할 줄 모르고 계속 자기 주장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임원으로 봉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답니다. 게다가 본인도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일하기 싫다고 했기 때문에 없는 일로 하겠다는 취지로 말을 했더니 원로 권사님은 ‘그래도 사람은 바뀌니까, 달라질 수 있으니까’ 시간을 더 주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분이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예요’라고 했답니다. 그분과 대화하면서 나는 ‘사람을 고쳐 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또 사람이 아주 변화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요. 하나님이 바꿔 주셔야지 우리가 바꾸거나 고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만 사람의 성격과 재능이 어떤 일에 맞는지 잘 관찰해서 맡기고 다같이 애를 써서 일할 뿐이라는 말까지 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유다의 변화는 평범한 변화가 아닙니다. 인간성이 의심되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충실한 사람으로 바뀌는 변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사람으로 치지 않는게 좋겠다고 결론을 낸다면 인간 사회라는 건 만들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중의 누가 누구를 사람으로 친다, 안 친다 결정할 수 있나요. 유다는 총리 요셉에게 많은 말을 쏟아 냅니다. 18절에서 34절까지입니다. 저간의 일을 소상하게 말하면서 이렇게 마칩니다. “저는 아버지가 슬퍼하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나의 괴로움, 나의 죄의식, 나의 후회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늙은 아버지의 슬픔을 막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자기를 중심에 놓던 사람이 타인을 중심에 놓게 바뀌었습니다. 유다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겁니다. 요셉은 자기 앞에 엎드린 형들이 열일곱살의 자기를 시기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 때의 형들이면서 또 아닌 겁니다. 자기가 그 때의 요셉이면서 사브낫바네아인 것처럼. 우리는 똑같지만 변하기도 했고, 변했지만 완전해진 것은 아닌 겁니다. 오늘 새벽에도 고쳐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바꾸어 주십시요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흠 투성이,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나와 우리를 고쳐주소서 주님.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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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성장 – 나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장하여, 쓰임받기에 마땅한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오늘의 잘못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반성하여, 성장의 초석이 될수 있는 지혜와 영안을 허락하여 주세요.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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