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8장: 역사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

해설:

저자는 요셉의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유다가 겪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유다는 다른 형제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고 가나안 여인과 결혼 합니다(1-2절). 그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큰 아들이 다말이라는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3-6절). 큰 아들은 자녀를 남기지 못한 채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그 대목에서 저자는 “유다의 맏아들 에르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므로, 주님께서 그를 죽게 하셨다”(7절)고 기록합니다. 무슨 악을 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유다는 당시의 풍습대로 둘째 아들에게 형수 다말이 아들을 낳을 수 있게 하라고 권합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홀로된 여성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식들 뿐이었기 때문에 그런 풍습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 오난은 아들을 낳아도 자신의 아들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임신이 되지 않게 합니다(8-9절). 저자는,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 악하므로”(10절) 그를 죽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유다는 두 아들이 연거푸 이른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 다말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과거에도 남편에게 문제가 생기면 며느리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우곤 했습니다. 남편이 일찍 죽으면 “남편 잡아 먹는 여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유다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셋째 아들이 아직 결혼할 만한 나이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핑계로 삼습니다. 그는 다말에게, 친정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막내 아들이 장성한 다음에 오라고 이릅니다(11절). 그 기간 동안 다말은 상복을 입고 지내야 했습니다. 출가한 여인으로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납니다. 그 사이에 막내 아들은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유다는 다말을 부르지 않습니다. 다말을 불렀다가는 막내 아들까지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즈음에 유다의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아내를 위한 애도를 서둘러 끝내고 친구와 함께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올라갑니다(12절). 유목민들에게 양털을 깎는 날은 농부에게 추수하는 날과 같습니다. 

한편 다말은 시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합니다. 그러던 차에 유다가 양털을 깎으러 자신이 사는 마을 근처로 온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그는 성매매 여성으로 변장한 후에 유다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기다립니다(13-14절). 아내의 애도 기간을 서둘러 끝낸 유다는 정욕을 채워줄 상대를 찾을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말의 계획은 정확히 맞아 들어갑니다. 유다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채 다말에게 접근합니다(15절). “너에게 잠시 들렀다 가마, 자, 들어가자”(16절)는 말에서 유다의 충동적인 태도가 엿보입니다. 다말은 유다에게 흥정을 한 후(17절)에 담보로서 “도장과 허리끈과 지팡이”(18절)를 맡기라고 요구합니다. 그렇게 시아버지와 동침한 후에 다말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과부의 옷을 입고 기다립니다(19절).  

잔치에서 돌아온 유다는 친구를 통해 딤나에서 만난 창녀에게 화대를 전하고 담보물을 찾아 오게 합니다. 하지만 그 창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아 보니, 딤나에는 창녀가 없다고 했습니다. 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상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잊어 버립니다(20-23절). 

삼 개월 쯤 지났을 때, 다말이 성매매를 하여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다말이 일부러 그 소문을 퍼뜨렸을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유다는 격분하여 다말을 불태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24절). 며느리는 법적으로 시아버지의 소유이니, 그 처분은 시아버지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말은 받아 두었던 담보물을 유다에게 돌려 보내면서, 아이의 아버지는 그 담보물의 주인이라고 알립니다(25절). 유다는 그 물건을 알아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말을 집으로 데려 옵니다(26절). 그는 더 이상 며느리를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달이 차서 해산을 해 보니 쌍둥이였습니다(27-30절). 

묵상:

성경은 정직한 책입니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은 인간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타락의 결과로 얼마나 추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적나라 하게 보여 줍니다. 유다에게 일어난 일 혹은 유다가 행한 일 중에 칭찬 받을만한 일들도 적지 않았을 터인데, 왜 굳이 이토록 수치스러운 일을 기록해 놓았을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성경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성경은 등장인물들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일어난 일 그대로 적어 놓습니다. 아니, 미담보다는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더 많이 기록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봅니다. 유다는 요셉을 죽게 하느니 돈이라도 벌자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저자는 에르와 오난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유다의 반응에 대해 침묵합니다. 요셉의 죽음을 두고 위로를 마다하고 슬퍼했던 야곱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유다는 두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다말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또한 아내를 잃고 나서 그는 서둘러 애도를 끝내고 정욕을 채울 상대를 찾습니다. 자신이 성매매 여인을 찾은 것은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며느리가 성매매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화형을 명했습니다. 

유다는 속속들이 죄악에 물든 인간형을 보여 줍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유다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 안에 얼마나 무서운 죄악의 뿌리가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들을 엮어 당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악의 화신과 같은 유다가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서 맏아들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49:8-12). 다말의 사건을 통해 그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다시 등장한 유다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44장). 유다의 후손은 다윗 왕에 이르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릅니다. 그래서 다말이 유다에게서 얻은 아들 베레스는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마 1:3). 

메시아의 가계에 이렇게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동시에 깊은 위로와 소망을 안겨 줍니다. 때로 우리가 저지를 수 있고 또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부끄러운 일들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 역사를 만들어 가는 씨줄과 날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됩니다. 한때 아무리 극악무도한 악인이었다 해도 새로운 존재로 빚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 놓고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살아가자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대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 넘어지고 쓰러질 때조차 하나님의 손길에 의지하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 내실 것입니다(롬 8:28).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38장: 역사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

  1. 죄 없는자가 먼저 간음한 여인을 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VA 연회가 열리는 주간입니다. 피흘려 사신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이신 교회를 깨틀릴수 없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칠수없는 가련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연회와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주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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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말씀을 묵상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현 시대의 추악한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인하여 힘없고 성실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교회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어떤댓가를 치르더라도 그분의 하시는 일은 멈추시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특별히 버지니아 연회가운데 성령께서 참석하는 모두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 뜻대로 연회가 진행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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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요셉의 이야기를 잠시 중단하고 유다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서 유다의 위치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낯 뜨거운 내용입니다. 그래도 끝이 좋으니 다행이랄까요. 이야기는 유다를 주인공 삼아 기록되었지만 며느리 다말도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로 느껴집니다. 유다는 아버지 야곱의 바램을 거스르고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얻습니다. 그렇게 얻은 세 아들인데 첫째와 둘째 다 여호와께서 죽입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나쁜 일을 했으므로 죽이셨다는 표현에서 악의 평범성이 아니라 악의 은밀함과 집요함에 하나님께서 분노하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아들을 잃은 유다는 막내를 선뜻 다말에게 주지 못합니다. 가문을 이어야 하는 책임을 피할 수 없지만 하나 남은 막내 아들도 죽을까봐 두려워했다는 것은 두 아들의 죽음이 그들의 죄로 인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며느리가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말의 억울함과 아픔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막내 아들과 맺어주지 않자 다말은 대단한 결심을 합니다. 변장을 하고 시아버지에게 접근해 동침합니다. 몸값으로 나중에 염소를 받기로 하고 그 약속의 표시로 유다의 소지품을 받아 둡니다. 임신에 성공을 하고 임신 소식이 유다한테 전해집니다. 세 달쯤 되었으면 그다지 표시가 날 때가 아닌데도 소문이 났다는 것은 다말 스스로가 임신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과부가 임신을 하고 숨기지 않는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했다는 뜻입니다. 풍습대로 태워 죽이려고 할 때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에게 그의 소지품을 전달합니다. 소지품의 주인이 아기의 아버지라는 말도 전해달라고 합니다. 유다는 소지품을 보고 사태의 전말을 깨닫습니다. 자기가 다말을 임신 시킨 사람이란걸 인정합니다. 다말은 무사히 출산을 합니다. 아들 쌍둥이를 낳습니다. 해피 엔딩입니다. 다말의 대단한 결심이 윈윈을 만들어냈습니다. 유다가 혹여 자기 소지품이 아니라고 잡아 뗐으면 일은 복잡해졌을 겁니다. 자기 물건이긴해도 다말이 몰래 훔친거라고 거짓말을 했어도 다말의 계획은 성사되기 어려웠을겁니다. 유다는 망서리지 않고 인정합니다. 며느리가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 이유도 금방 이해했습니다. 어찌보면 이 이야기는 운명에 대항한 다말이 주인공일 수 있습니다. 그는 남편을 차례로 잃고 철저하게 타인 (시아버지, 사회, 전통)의 의지에 따라 유예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생계도 역할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습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계획으로 그는 몸을 던져 운명에 도전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일에 개입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동침하여 임신이 되었으니 다말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다말처럼 자기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 또한 쓰러지지 않고 밟히지 않기 위해 버텨야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마음 깊은 데서 올리는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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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진정 지긋지긋하게 저를 괴롭하는 죄… 저는 죄인입니다. 흔들릴때마다 저를 붙들어 주시고, 아버지의 사랑안에 거하는 하루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시고, 잠시라도 방심하지 않도록, “죄가 문앞에 엎드려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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