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4장: 이주민의 딜렘마

해설: 

야곱은 가나안 땅에 이르러 세겜이라는 성읍에 정착합니다. 정식으로 토지까지 매입 함으로써 그는 그 땅에 합법적인 주민이 됩니다. 그곳에 정착한 지 얼마 지난 어느 날, 야곱의 딸 디나가 “그 지방 여자들”(1절)을 찾아 갔다가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이주민은 자주 토착민에게 이런 폭행을 당하곤 했습니다. 세겜은 그 지방의 통치자인 하몰의 아들로서 대단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네 가지 동사(“보다”, “데리고 가다”, “성폭행을 하다”, “욕되게 하다”)를 사용하여 세겜의 행동이 악한 것이었음을 드러냅니다(2절). 그는 디나를 범한 후에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3절). 그의 사랑은 빗나간 집착이 되어 디나를 자신의 집에 가두어 둡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야곱은 가축 떼를 몰고 나가 있던 아들들이 돌아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5절). 그는 딸에 대한 염려와 세겜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었을 것입니다. 그는 딸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딸을 데려오기 위해 전쟁을 불사할 수도 없는 딜렘마에 빠졌습니다.  

아들들이 돌아오자 야곱은 디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 말을 듣고 아들들이 분노해 있을 때 하몰과 세겜이 청혼을 하러 찾아옵니다. 하몰은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세겜과 디나를 결혼시키고 앞으로 통혼을 하면서 지내자고 제안을 합니다. 세겜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과하면서 어떤 대가든 치를테니 결혼시켜 달라고 청합니다(6-12절). 겉으로는 정중한 제안 같아 보이지만, 디나를 집에 가두어 놓고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야곱과 그 가족을 능멸하는 처사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복수를 계획합니다. 그들은 하몰의 청을 들어 줄 듯 한 태도를 보이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겁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에게는 동생을 줄 수 없으니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청혼을 받아 들이겠다고 답합니다. 하몰과 세겜은 이 계약을 통해 야곱의 많은 재산을 거저 먹을 것이라고 여기고 그 성읍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그들은 하몰과 세겜의 말에 동의하여 한 날에 모두가 할례를 받습니다(13-24절). 

사흘 째 되는 날 야곱의 아들들 중 시므온과 레위(디나의 친오빠들)가 성읍으로 쳐들어가 남자들을 모두 살해하고 세겜 집에 갇혀 있던 디나를 구출합니다(25-26절). 그들은 할례를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서 제대로 대항해 보지도 못하고 당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성읍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약탈을 자행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습니다(27-28절). 

야곱은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고 시므온과 레위를 불러 크게 나무랍니다(29절). 그는 그 일로 인해 자신이 “사귀지도 못할 추한 인간”(30절)으로 알려질 것이며 또한 더 큰 보복을 불러 올 것이라고 탄식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여동생이 몹쓸 짓을 당했는데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저항합니다(31절). 

묵상:

디나의 성폭행 사건은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디나에게 행한 세겜의 행동은 분명히 징벌 받아야 할 죄였습니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세겜이 디나를 범하고 결혼하려 한 것은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새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을 길들이고 자신의 수하에 들어오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에 대해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일은 더욱 악합니다. 그들은 무고한 성읍 사람들을 모두 살륙했고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유린하고 약탈했습니다. 

아버지의 책망에 대해 시므온과 레위가 저항하며 내뱉은 말(31절)은 우리가 자주 대면하게 되는 딜렘마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동생이 능욕을 당하고 사로잡혀 성 노리개가 된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악행을 묵인하고 용서해 주는 것이 해법은 아닙니다. 그의 악행에 대해 응징하고 디나를 구해 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세겜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다치게 됩니다. 그러니 복수를 행하면 애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이스라엘 군이 네 명의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270여 명의 가자 주민들을 죽게 한 것은 세겜 사건의 현대적 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딸이 당한 폭행에 대해 듣고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견디고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세겜 땅에 이제 겨우 자리를 잡은 이주민입니다. 많은 가족과 종들과 가축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는 소수자였습니다. 당장 딸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고 싶었지만, 싸워서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딸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숨막힐 듯한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디나처럼 무력하게 유린 당하는 이주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야곱처럼 이주민으로서의 약점 때문에 불의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 때로 시므온과 레위처럼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앙갚음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복수 행위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힙니다.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이주민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불안 해집니다. 미국에서 남미 이주민들이 자주 당하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게 얼키고 설키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도 어렵고 그 뜻을 행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때로 손과 발에 피를 묻히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34장: 이주민의 딜렘마”

  1.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것이 아니라 악을 더 큰악으로 복수 하는것이 수천년 동안이어지는 인류의 역사입니다, vicious cycle 입니다. 인류의 죄성 때문에 싸움이 그치지않는 세상에 살며 애매한 백성들만 희생을 당하는 형편입니다. 정의와 공평과 사랑의 재판장이신 창조주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악을 선으로 보답하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마라나타 주님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멘.

    Like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야곱의 이야기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왜 야곱인가? 야곱은 어떤 사람인가? 입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 3대를 내려 오면서 창세기는 야곱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 defining moment 라는게 있습니다. 그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어떤 순간(들)이 있습니다. 삶의 어떤 지점, 마음의 영사기로 되돌려 또 보고 또 보는 순간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75살이었을 때 하란 땅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그 때가 그의 삶에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칼을 들어 아들을 치려 했던 모리아산의 사건도 아브라함에겐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은 이삭에게 더욱 생생하고 분명했을 것입니다. 이삭의 인생을 말하는 데 있어 빠뜨릴 수 없는 순간입니다. 야곱의 생애에도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집을 떠나 베델 들판에서 잠이 들었을 때 그는 꿈을 꿉니다.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던 꿈을 꾸고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시라는걸 깨닫습니다.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얍복 강에서 밤새 씨름을 합니다. 그날 밤도 야곱에겐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아브라함의 키워드가 믿음이요 순종이라면 이삭의 키워드는 희생입니다. 제물로 바쳐지는 충격이 그에겐 약점이자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사람으로는 우리의 삶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아버지와 아들이면서 또한 서로의 삶을 설명하는 클루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같은 부자 관계로는 나의 삶을 들여다 보기가 어렵습니다. 야곱은 다릅니다. 그의 키워드는 싸움입니다. 모든 것을 싸워서 얻습니다. 진실/진리도 거짓과 속임이라는 적과 싸워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성경의 인물이지만 어느 시대에도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34장 사건은 야곱이 ‘에서’라는 적을 싸운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에서와 헤어질 때 그는 뒤따라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세일에서 다시 형님을 뵙겠습니다 (33:14)”라고 인사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 세겜 성에 도착한 뒤에 아예 밭을 삽니다. 잠시 묵어가는 곳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살겠다는 의지입니다. 그곳에서 큰 일이 일어납니다. 딸이 성폭행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질처럼 잡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일제히 일어납니다. 아버지와 의논하지 않고 저희들끼리 작전을 짜고 실행에 옮겨 디나를 무사히 데리고 나옵니다. 아들들의 작전은 거짓말로 세겜을 속이는 일이었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실로 ‘거짓’의 무한반복입니다. 세겜 성의 주민들은 할례를 받고 채 회복되기도 전에 시므온과 레위의 칼에 모두 죽습니다. 거룩한 백성이라는 징표가 죽음의 관문이 됩니다. 야곱은 충격을 받습니다. 딸 디나가 당한 일과 아들들이 세겜에서 행한 일에서 어느 쪽이 더 충격적이었을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야곱의 굴곡진 삶이 우리에게 표지판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는 사람에게 야곱을 묵상하는 일은 필수가 아닐까요. 야곱과 같이 어렵게 어렵게 산 사람을 보면서 갖는 생각입니다.

    Like

  3. gachi049 Avatar
    gachi049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야곱이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했는지를 저자는 왜 기술하지 않았는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런 사실이 없었을 것입니다. 요즈음도 믿음의 공동체 가족에서 부모가 경험했던 신앙생활을 가족에게 전하는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주님! 광야 같은 이국땅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신 것처럼 남은 여정도 먼저 하나님을 의하고 삶을 맡길때 도와 주심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족 간에 서로 나눌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