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장 25-43절: 약자를 편드시는 하나님

해설:

요셉이 태어난 후에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25-26절). 라헬과의 결혼을 조건으로 약속한 칠 년이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반은 그를 놓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온 이후로 그의 재산은 크게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어떻게든 야곱을 더 붙들어 두고 부리려 했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결혼을 조건으로 한 무보수 노동 기간이 이제 끝났으니 제대로 보수를 해 주겠다면서 얼마를 주면 좋을지 제안해 보라고 말합니다(27-28절). 야곱은 직답을 피하고 자신으로 인해 외삼촌의 재산이 얼마나 불어났는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29-30절). 라반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재차 묻습니다(31절). 야곱은 보수는 필요 없고 양 떼와 염소 떼 가운데서 얼룩진 것들만 자신의 소유로 인정해 달라는 조건을 제시합니다(32-33절).

라반은 야곱의 제안을 즉시로 받아 들입니다(34절). 얼룩진 양과 염소는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날 밤에 자신의 양과 염소 떼 가운데서 얼룩지고 흠이 있고 검은 것들을 모두 골라내어 아들들에게 주고, 자신의 가축떼와 야곱에게 맡긴 가축떼가 섞이지 않도록 거리를 두게 합니다(35-36절). 야곱을 오래 붙들어 두고 계속 부려 먹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대가족을 부양할 만한 재산을 모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곱에게도 계획이 있었습니다. 외삼촌의 교활함과 비열함을 알기에 야곱은 치밀하고 정확한 전략을 짜 놓고 제안을 한 것입니다. 그는 그동안 양 떼와 염소 떼를 돌보면서 얼룩진 새끼들이 나오게 만드는 비법을 터득했습니다. 외삼촌은 그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라반과 떨어져 지내면서 자신이 터득한 방식으로 얼룩진 양 떼와 염소 떼를 키워 갔습니다(37-42절). 결국 몇 년 사이에 야곱은 큰 부를 일구게 됩니다(43절).

묵상: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야곱은 그분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기를 힘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물러가 지켜 보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함께 일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할 수 있는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면서 형성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당장 어떤 위기에 봉착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멀어 보이고 자신의 주먹은 가까워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죄의 유혹에 흔들리고 넘어집니다. 그렇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해 가며 우리는 점점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집니다.

라반은 한 사람의 인생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인물입니다. 이토록 자기 중심적이고 교활하고 야비하고 비열한 사람을 매일 대면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야곱은 십사 년이나 그 어려운 일을 겪어냅니다. 그는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아내들과 자녀들을 부양할 만한 재산을 모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라반이 그것을 허락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이 꼼짝할 수 없도록 재산을 불리는 방법이 없을까를 두고 여러 날 동안 궁리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의 계략은 맞아 떨어졌고, 그는 고향으로 떠날 만한 부를 축적합니다. 

외삼촌의 거대한 악에 맞서기 위한 야곱의 몸부림은 애처롭습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계략이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밖에는 대응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한 처지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도 수 많은 ‘라반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권력, 금력, 유명세 등)으로 다른 사람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그런 사람들이 행하는 비열하고 야만적인 갑질 행태를 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우리 중에는 ‘야곱들’도 많습니다. 가진 자들의 폭력에 대항할 힘이 없어서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을’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길은 언제나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향해 있다는 것이 성경이 전하는 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의 눈길 있는 곳에 눈길을 두고 그분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기를 기도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30장 25-43절: 약자를 편드시는 하나님”

  1. 서로 속이고 속는 세상에서 살아 왔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았슴에도 예전의 속이는 습관이 자주 튀어 나옵니다. 십자가 없이는 살수없는 가련한 신세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곳에서 기다리고 있는것을 절감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섬기는 남은인생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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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약자와 소수자들을 늘 돌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모든 믿음의 공동체의 눈길도 머물게 하셔서 그들을 도와줌을 통해 시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므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모두가 되게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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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야곱과 라반이 염소떼를 놓고 나누는 대화는 13장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질 때 땅을 놓고 나누는 대화를 연상 시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질 때 조카에게 어디로 갈 지를 먼저 정하게 했습니다. 롯은 물이 많고 좋아 보이는 요단 평원을 선택했고, 아브라함은 반대쪽 가나안으로 갑니다. 야곱은 몸에 줄무늬나 점이 있는 가축들을 갖기로 하고, 라반은 흠없이 깨끗한 염소와 양을 갖기로 합니다. 야곱은 장인과 이런 대화를 할 때가 올 것을 예상하고 많은 생각을 해 둔 것이 분명합니다. 라반은 짐짓 너그러운 척 합니다. 품삯을 야곱이 정하라고 하는 말은 부르는대로 주겠다는 약속과 같습니다. 처자들을 데리고 독립해 나가려면 재산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급여를 제시하면 줄테니 좀 더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지금 야곱은 나이 든 장년입니다. 에서가 헷 여자 둘을 아내로 들인 때가 40살이었으니 야곱이 라반에게 도망을 간 때는 40살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처음 라반의 집에 갔을 때의 야곱과 독립해 나가겠다고 말하는 야곱은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집에 있을 때 야곱은 천막 안에서 곱게 자랐습니다. 엄마 일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야곱은 밖에서 양떼를 치고 시키는대로 이 일 저 일 하면서 살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가축 떼가 크게 불어날 때까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손은 거칠어지고 얼굴은 햇볕에 그슬려 검어졌을 겁니다. 겉사람이 달라졌듯 속사람도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웃 목동들과 협력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여러 문제들을 풀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을 겁니다. 라반과 가축떼를 놓고 협상하는 부분에서 야곱이 과학적인 접근 (멘델의 유전법칙 같은)을 했다는 말도 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가지가 어떤 색이냐가 그 때 만들어지는 새끼의 색을 정한다는 가설도 있고, 교미 시기에 마시는 물에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속살이 들어가면 튼튼한 새끼들을 낳게 된다는 가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결과는 명백합니다. 라반 몫으로 정해진 가축들은 깨끗하지만 약체이고 숫자가 적고, 야곱의 가축떼는 줄무늬에 반점에 색이 검지만 튼튼하며 숫자도 많았습니다. 차이가 확 나는 결론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속은 느낌이었겠지만 어떻게 속았는지 알아낼 수는 없었겠지요. 야곱은 예나 지금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인건 분명합니다. 아버지를 속였을 때는 자기 머리에서 나온 계략은 아니었습니다. 장인을 속일 때는 -속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지 않지만- 자기 머리에서 나온 계략입니다. 야곱은 머리를 믿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힘으로 형을 이길 수 없었고, 재롱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장인은 이기적이고 교활한 사람이라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믿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야곱은 자수성가의 샘플입니다. 여기까지 읽어 오는 동안 야곱은 자기 마음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자기 몫의 가축떼를 불리는 오늘 이야기에 와서야 비로소 야곱은 성공을 합니다. 야곱은 롱 게임 long game 을 하는 사람입니다. 단기 투자로 성공하거나 한 건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아닙니다. 곧 사람을 보내어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어머니 리브가의 말을 듣고 야곱은 집을 떠났습니다. 라헬과 금방 결혼해 아들들을 낳고 장인의 도움으로 재산도 만들어 집으로 자랑스럽게 돌아왔다면 이스라엘의 아버지 야곱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야곱의 롱 게임은 이스라엘입니다. 레아와 라헬의 출산 이야기와 물통 앞에서 새끼를 만드는 가축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롱 게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이란 멀리 보고 천천히 걸으며 실력을 키워야 하는 게임이란걸 깨닫게 되는 때는 이미 많이 걸어온 뒤입니다. 걸어온 길을 돌아 보아야 알 수 있지 앞길이 창창할 때는 알 수도, 보이지도 않는 일입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보이지 않아도 보는 것처럼 여기는 일입니다. 아직 보이지 않아도 곧 보일 것이라고 상상하며 걷는 일입니다. 주님과 함께 걸으니 괜찮습니다. 야곱 같은 머리는 없어도 지금껏 사는데 필요한 것을 주신 주님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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