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장 1-24절: 진정한 복

해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었지만 자식을 얻지 못했기에 늘 상실감에 빠져 살았습니다. 자녀들로 인해 남편의 사랑을 언니에게 빼앗기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라헬은 그 일로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곤 했습니다(1절). 그럴 때마다 야곱은, 그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일이니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답합니다. 저자는 “야곱이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2절)고 표현함으로써 라헬의 성화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아내에게 화를 터뜨릴 정도로 라헬의 히스테리가 심했다는 뜻입니다.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대리모로 삼아서라도 아들들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할머니 사라가 그렇게 했으니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라헬의 요청에 따라 야곱은 빌하를 통해 단과 납달리를 얻습니다(3-8절). 그것을 보고 레아는 자신의 몸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갓과 아셀을 얻습니다(9-13절). 자매의 경쟁이 점점 심해져 갑니다.  

얼마 후,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자귀나무를 발견합니다. 자귀나무는 당시에 임신촉진제로 여겨졌습니다. 그것을 알고 라헬이 레아에게, 자귀나무를 자신에게 주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도록 양보하겠다고 흥정을 합니다(14-15절). 그렇게 하여 야곱은 레아와 다시 잠자리를 같이 했고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습니다(16-20절). 레아는 얼마 뒤에 딸을 얻고 디나라고 이름 짓습니다(21절). 

라헬은 도무지 당할 수 없는 언니의 생산력에 항복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경쟁으로는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호소를 들으시고 라헬에게 아들을 낳게 하십니다. 라헬은 아들을 하나 더 낳게 되기를 기대하며 그 아이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짓습니다(22-24절).

묵상:

앞에서 레아의 심정을 들여다 보았으니, 이제 라헬의 심정을 들여다 봅니다. 당시에 여성에게는 남편의 능력과 자녀의 수가 힘의 척도였습니다. 시편에서는 자녀를 많이 둔 사람을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시 127:5)에 비유했습니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래가 걱정이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자신만 홀로 남으면 자신을 지켜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언니는 아들을 넷이나 두었으니, 지금은 비록 남편의 무관심으로 인해 불행하지만 미래가 든든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라헬을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남편이 아들들로 인해 언니에게 마음을 두게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두려웠을 것입니다. 

라헬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히스테리가 늘어만 갔습니다. 그토록 레아를 아꼈던 야곱이건만 때로 그의 히스테리를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곤 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라헬은 몸종을 통해서 두 아들을 얻습니다. 하지만 뒤질세라 언니도 몸종을 통해 아들 둘을 더 얻습니다. 르우벤이 자귀나무를 구해 언니에게 주자, 라헬은 남편과의 잠자리를 양보하는 조건으로 자귀나무를 얻습니다. 그런데 닫힌 줄 알았던 레아의 태가 열려 아들 둘과 딸을 더 얻습니다. 이 즈음에 라헬은 언니와 싸워 이기려는 모든 노력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았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 상황에서 라헬은 비로소 하나님에게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언니를 탓하고 남편을 탓하던 그가 이제는 하나님께 고개를 돌리고 그분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레아가 남편의 일관된 무관심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처럼, 라헬도 불임의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수천 년도 지난 후에 레아와 라헬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인생에 필요한 것을 추구하며 살았고, 얻은 것도 있었고 얻지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아와 라헬은 모두 인생을 통해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현세에서 얻고 잃은 것을 따지자면 누가 더 복되고 누가 더 불행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똑같이 복된 삶을 살았다 할 수 있습니다. 인생 여정을 통해 얻어야 할 것 중에 최고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30장 1-24절: 진정한 복”

  1. 지난날 세상의 얄팍한 책략으로 살아오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생각한 모략꾼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신실하신 주님의 축복을 인내하며 기다리며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헛된 복보다 하늘에서내리는 영원의 축복을 기리고 추구하는 자녀들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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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라헬이나 레아들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모든 능력을 사용하지만 뜻대로 이루지 못하고 온갖 마음고생을 격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원했던 자녀를 생산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시옵고 받은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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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성서의 진실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성서는 고통을 피하는 주술을 적어놓은 비밀의 책이 아닙니다. 한때 “비밀 The Secret” 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일종의 자기계발서인데 ‘당신의 꿈을 이루십시오 Manifest Your Dreams’라는 부제목을 붙였으니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갔을 법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진심을 다해 그리고 붙잡으면 이루어지게 된다는 ‘원칙’이 인생의 비밀이라는 겁니다. The Law of Attraction 즉 끌어당김의 법칙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을 적용하면 자기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구한다-믿는다-받는다 (asking-believing-receiving) 이 세 단계가 끌어당김의 법칙의 핵심입니다.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을 성서에 ‘적용’하면, 자기가 바라는 바 (하나님의 복과 약속)를 진심으로 구하고 믿으면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끌어당기는’ 비밀을 약속하고 있으니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겠지요. 비밀이라고 해도 예수님도 말씀하신 것 같고,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임신이 안 되다가 간절히 기도하니 아기를 갖게 된 이야기는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이 책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까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면 이루어지는걸까요. 그렇다는 의견이나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나 아마 비슷한 숫자일겁니다. 아마 우리도 다 한 때는 그렇다고 믿기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아니라고 접을 때도 있었을겁니다. 믿음에 대한 목사님들의 설교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에 대한 권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님께 이르는 기도를 열심히 올리자고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어디가 부족했기에 고통의 잔이 치워지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강팍하면 아픈 아기들은 여전히 아프고 전쟁은 끝나지 않고, 눈물은 마르지 않는걸까요. 인생은 그렇게 선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런 ‘비밀’을 찾아 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책을 읽는 사람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듣고 ‘힐링’이 되었다고, 우울증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찐팬들이 있습니다. 믿습니다. 맞을겁니다. 클래식만 음악이라든가, 크리스찬은 찬송가만 불러야 한다는 사람은 ‘위험인물’입니다. 성경에 답이 있다고 믿는 것도 좋고, 답은 못 찾겠고 머리만 더 아프다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나의 하나님은 넓고 크고 깊으신 분입니다. 라헬과 레아처럼 간절히 기도한 여인들의 마음도 헤아리시고, 아무 주장 못하고 주인 마님이 하라면 하라는대로 몸을 내준 여종들의 마음도 헤아리시는 분입니다. 성서가 보여주는 인간의 길은 고통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늘 고통이 따라 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비밀’은 고통 만 내 옆에 붙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님의 성령이 분명히 이곳에계신다는겁니다. 야곱이 꿈으로 알게된 비밀입니다. 우리가 야곱을 묵상하면서 알게된 비밀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설령 내가 바라기도 전에 나타나시고 만나주신다 해도 고통을 통해야만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우리의 고통을 없애주는 면제부인줄 알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고통을 모르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진통제가 아닌데…예수님은 내게 생선이 되기도 하시지만 낚싯대가 되는 때가 더 많다는걸 깨닫습니다. ‘진정한 복’이라는 오늘 묵상 제목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의 몫이 되어 주시는 주님, 나의 복으로 오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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