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9장 1-14절: 하나님 체험의 의미

해설: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한 다음 야곱은 다시 하란으로 향합니다. “줄곧 걸어서”(1절)는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학자들은 히브리어 동사 ‘나샤’(“들었다”)의 사용에서 새로운 출발 혹은 희망에 찬 발걸음을 전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발견합니다. 베델에서의 하나님 체험으로 인해 하란으로 향하는 그의 태도는 180도 바꼈다는 뜻입니다.

야곱의 과제는 외갓댁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하란에 가서 나홀이나 라반의 이름으로 수소문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란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야곱은 큰 돌로 입구가 막혀 있는 우물을 만납니다. 우물 곁에는 양 떼 세 무리가 엎드려 있었습니다(2절). 그 우물은 목동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로서 목동들은 자신에게 속한 양떼가 다 모이면 돌을 굴려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다시 닫아 놓곤 했습니다(3절). 

그 목자들은 나머지 양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야곱은 그들에게 다가가 출신지를 묻습니다. 그들이 하란에서 오는 길이라고 답하자 야곱은 라반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다행히 그들이 라반의 안부를 전해 줍니다(4-6절). 그 때 라반의 딸 라헬이 양떼를 몰고 그 우물로 오고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양떼에게 물을 먹일 때 그들이 따르고 있었던 관습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7-8절).

그들이 대화를 하는 동안 라헬이 양떼를 데리고 도착합니다(9절). 야곱은 우물 아귀를 덮고 있던 돌을 굴려서 라헬이 양떼에게 물을 먹이도록 도와 줍니다(10절). 그런 다음 야곱은 라헬에게 입을 맞추어 인사를 하고 큰소리로 울면서 자신이 라헬의 고모 리브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립니다. 이 행동에서 야곱이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라헬은 즉시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11-12절). 라헬도 반가움으로 인해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헬에게서 조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라반은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13절). “달려갔다”는 표현에서 라반의 반가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데리러 왔을 때 라반은 엄청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선물은 그의 재산이 불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라반은 그런 선물을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야곱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후 라반은 크게 실망합니다. 14절에 기록된 라반의 냉담한 반응에서 그의 실망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묵상:

베델에서의 하나님 체험은 야곱의 세계관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같은 땅에 있었고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었지만, 전에 알던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전날까지 그는 하나님 없는 세상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가설’인 세상에 살았습니다. 그 세상에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 질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땅은 땅이고 하늘을 하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자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으로 충만하며 자신이 선 곳이 곧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에 깨어 났습니다. 

그 체험은 하란으로 향하는 야곱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날까지 그의 발걸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을 것입니다. 원치 않는 유랑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 했을 것입니다. 길을 걷는 그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날부터 그의 태도는 전격적으로 달라집니다. 그의 발걸음은 암사슴의 그것처럼 가벼웠고, 그의 표정은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빛이 났을 것입니다. 그는 하란까지 하룻길처럼 걸어 갔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볼 것을 생각하니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란에 도착하자 마자 외삼촌 라반의 냉대를 경험합니다. 라반은 한 사람의 인생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인물 중 하나에 속합니다. 그는 야곱이 큰 선물을 가지고 왔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빈털털이 도피자로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차갑게 대합니다. 베델에서 뜨거워졌던 야곱의 마음도 라반의 냉대로 인해 잠시 식어졌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체험은 우리를 즉시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우리를 당장 완전한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대단한 하나님 체험을 했다 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체험 이후에 역경과 고난과 환난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앞으로 당할 역경과 고난과 환난에 준비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베델에서의 하나님 체험은 야곱이 하란에서 지낼 이십 년의 고난에 대해 그를 준비시키기 위한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29장 1-14절: 하나님 체험의 의미”

  1.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을 만난다는 은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야곱도 그 기쁨에 자신감을 가지고 유랑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궁금함을 전했고 라헬과 라반을 만나 입을 맞추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의 집에서 나오게 된 사실을 말했지만 한 달이 다되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은 왜 그랬을까? 아무것도 리브가를 데리고 갔을 때처럼 선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섭섭함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공동체는 찾아오는 사람이 친척이 아니더라도 약하고 어려운 자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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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의 환란과 어려움을 될수있는대로 피하고 살려고 노력을 해왔습니다, 환란과 고난과 시련은 장차 닥아올 축복인것을 깨닫고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힘들때에도 참고 기다리고 안식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온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사는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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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야곱의 이야기를 읽는데 큰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삭의 재산은 누구에게 갔을까요. 야곱은 에서가 사냥을 하고 배가 고파 죽겠는 상태로 집에 왔을 때 죽을 주면서 장자권을 자기한테 넘기라고 했습니다. 그건 두 형제 간의 거래입니다. 그 뒤에 이삭은 자기가 많이 늙었으니 이제쯤엔 장자를 축복하는 기도를 해야겠다면서 에서에게 사냥을 해서 자기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장남 간의 거래입니다. 에서가 ‘장난으로, 농담으로, 재미로’ 했을 뿐이라 해도 어쨌건 야곱에게 장자권을 넘겼다는걸 아는 사람은 야곱과 에서 뿐인 것 같습니다. 장자의 진짜배기 축복은 아버지가 해 주는 기도에 있고 이 기도를 반드시 야곱이 받아야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리브가입니다. 리브가는 아무 생각 없이 있던 야곱에게 에서의 옷을 입히고 손에 털을 붙이고 변장을 시켜 이삭 앞으로 밉니다. 이삭은 에서한테 해 주려던 축복을 야곱에게 해 줍니다.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온 뒤 일이 엄청나게 꼬인 것을 알게 됩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친정의 오빠에게로 보내기로 합니다. 리브가는 한 마디로 이삭을 설득시킵니다. “나는 헷 여자들이 싫습니다 (27:46).” 야곱은 도망치듯 집을 떠납니다. 형의 분이 풀리면 사람을 보내 데려오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믿고 갑니다. 아버지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의 약속을 야곱에게 해줍니다. 이렇게 야곱은 길을 떠납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라반의 집에 무사히 도착한 야곱을 그립니다. 우리는 야곱이 삼촌 집에 오래 살게 되는 스토리를 압니다. 잠시 가 있는다고 생각하고 간게 이십년 세월이 됩니다. 그 사이에 이삭은 조상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이삭의 재산은 에서가 이어 받았겠지요. 야곱이 죽을 주고 받은 장자권은, 아버지를 속여 가며 받은 축복기도는 다 뭐였을까요. 랍비 조나단 색스가 이 부분에 대해 쓴 짧은 글을 읽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복을 가로챈 것은 옳은 일이었는가?’ 하는 글에서 그는 성서의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성서적 비평 뿐 아니라 도덕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즉, (스토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현실에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와 관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색스는 리브가가 왜 야곱이 축복기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 했는지를 이렇게 씁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고, 하나는 미술을 사랑한다면 집안에 내려오는 렘브란트 작품을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에서는 성품이나 기질 면에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헷 여자 둘을 부인으로 삼는 일을 통해 장자감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랍비 색스는 이삭의 이삭에게 해 주는 축복 기도 – 두 번, 각각 다른 기도-도 이렇게 해석합니다. 에서인 줄 알고 해 주는 기도는 충분한 비와 좋은 땅, 넉넉한 곡식과 포도주, 나라의 부강, 형제들을 다스림…재물과 권세의 풍성함을 비는 기도입니다. 야곱을 집에서 내보내며 하는 기도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너와 네 자손에게도 주시기를 빈다는 기도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의 기도 즉 땅과 아들들의 풍성함을 비는 기도입니다. 랍비 색스는 이삭이 에서와 야곱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는 에서에게는 에서에게 맞는, 야곱에게는 야곱에게 맞는 기도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야곱은 집을 떠난 후 오랜 세월에 걸쳐 이삭의 이 기도에 맞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간다고 봅니다. 그는 구약성서의 많은 스토리들이 그렇듯 해석이 맞든 틀리든,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처음 읽으면서 느끼는 것과 시간이 간 뒤에 (우리의 경험이 쌓인 뒤에) 읽고 느끼는 것이 다른 점에 주목합니다. 도덕적인 삶, 바른 삶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배워가는 삶 That is how the moral life is. We learn by making mistakes. 이라고 색스는 말합니다. 그는 우리 모두 우리의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각자 축복기도가 있다는 뜻입니다. 형제의 것을 탐내지 말자고, 자기 것에 만족하자고 말합니다. 이것이 열번째 계명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이 되었다고 풀이합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에피소드마다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인간의 여러 모습이 보이고, 인생의 여러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야곱의 삶을 따라가며 깨닫는 되는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 특별하신 주님입니다. 분명히 계시는 분! 이곳에 계시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이제 알게 되었으니 잊지 않고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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