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장 26-33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

해설:

그랄 평원으로 밀려난 이삭이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번성합니다. 너무나 척박하여 그랄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을 이삭은 풍요로운 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아비멜렉이 부관들과 함께 그를 찾아옵니다(26절). 이삭은 그들에게 방문의 이유를 묻습니다(27절). 그의 질문에는 그들에게서 받은 푸대접에 대한 앙금이 배어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똑똑히 보았습니다”(28절)라고 말을 시작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21:22). 여기서 아비멜렉이 “주님”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당신의 신이 당신과 함께 하심을 똑똑히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랄 민족의 신을 섬기고 있었을 터인데, 자신이 믿는 신보다 이삭이 믿는 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제안한 것과 똑같이 자신과 평화조약을 맺자고 제안합니다(29절). 이삭이 세력이 커지고 나면 자신들에게서 받은 푸대접에 대해 복수할지 모른다고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는 다시 한 번 “당신은 분명히 주님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이삭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들을 맞아들여 큰 잔치를 베풀고 다음 날 계약을 맺은 후에 돌려 보냅니다(30-31절). 아브라함은 하지 않았던 일을 이삭이 행한 것입니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종들이 새로 판 우물에서 물이 터졌다고 알려옵니다(32절). 이삭은 그 샘의 이름을 ‘세바’라고 짓습니다(33절). 아브라함이 이미 그곳의 이름을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라고 지어 놓았기 때문입니다(21:31). 이런 연유로 하여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서 깊은 장소가 됩니다.

묵상: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 와서 두 번이나 “당신은 주님께 복 받은 사람입니다”(28절, 29절)라고 말한 것은 평화조약을 얻어내기 위해 아첨하는 말일 수 있지만, 정말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군사를 데리고 와서 그랄 땅 바깥으로 쫓아내거나 모두를 살해하려 했을 것입니다. 이삭의 세력이 커졌다고 해도 아직은 아비멜렉을 대적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평화조약을 맺기로 마음 먹었다는 사실은 아브라함에게서 그랬던 것처럼 이삭에게서도 초월적인 힘이 그를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모두에게 버려진 땅에서 그토록 번성하는 것은 그들의 신이 그들을 돌보고 있다는 증거로 보였던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번영하게 하십니다. 손 대는 것마다 형통하게 하시고, 죽을 병에서 건져 주시기도 하시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위로 솟아나게도 하십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번성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이삭도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은 언제나 믿는 사람들을 복되게 하신다” 혹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는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성공하는 것이다”라고 결론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뒤집으면 “이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번영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증거다”라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도 실패할 수 있고 상처 받을 수 있으며 질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인생 여정에도 그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 가까이 계셨고 섬세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아비멜렉은 기복적인 신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번영할 때에야 그들이 믿는 신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습니다. 그가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번영의 때보다 고난의 때에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26장 26-33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

  1. 말씀을 통하여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Immanuel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항상 기억하고 피부로 느끼며 살기를 원합니다. 기쁠때나 슬플때나 평안할때나 힘들때라도 항상 저희들의 삶이 예수님의 향기가되어 이웃에 번저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은혜안에서 자족하며 이웃을 섬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말보다 기도와 십자가의 사랑을 감사하며 사는 삶으로 Immanuel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오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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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조용한 자신감 같은거라고 할까요. 고요한 평온함일까요. 조용하고 고요하다고 한 것은 말이 없다든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일차적인 뜻보다 말이나 행동이 수선스럽지 않다, 말썽이 없이 평온한 상태를 가리키고 싶어서 입니다. 학생 때를 회상해 보면 공부 잘하는 아이는 늘 표시가 났습니다.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를 치켜 세우기도 했고 본인들도 자랑을 했기 때문에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다 알았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조용하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선 성적에 대해 예민한 때라서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게 됩니다. 이 때쯤이면 공부를 잘한다, 성적이 좋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기도 합니다.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실력이 있는 것을 구분할 줄도 알게 됩니다. 요즘에 외모도 능력, 집안의 재력도 능력이라고 말하듯 우리 때도 ‘잘 찍을 줄 아는 것도 실력’이라고 자조적인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고 평가했는데 사회에서는 가진 재산순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성적이 실력의 결과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험이나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실력의 전부가 아닌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망친 시험, 깨진 시합의 경험이 나중에는 든든한 배짱으로, 저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적인 고백이지만 신앙의 색깔을 지우고도 여전히 유효한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양심, 상식, 원칙, 공동선…같은 내면의 북극성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만 아는 자아, 아동기의 자아에 멈춘 자아가 아니라 성장하고 성숙한 자아가 되어가는 ‘실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 공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말은 궁극적으로는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신을 채워가는 것이 믿음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선재적인 은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그분은 나를 인도하시고 보살피셨다고 뒤늦게 깨닫기도 합니다. 성실하고 신실하고 꾸준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풍파가 몰아치는 ‘미친’ 세상에서도 평온할 수 있는 예수님과 같아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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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항상 함께하시기를 바라시는 분임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똑똑히 보았습니다”28절) 을 일깨워 주심을 감사합니다. 산책을 할 때 만나는 사람에게 예수님 믿느냐고 물으면 얼굴 표정이 밝은 사람은 모두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성령님은 이렇게 얼굴에 미소를띠고 마음이 곱고 구하는 자에게 임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주님! 이삭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삶으로 나타나 이웃이 인정할 수 있는 참신한 크리스찬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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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언제나, 어떤 상황이든, 무엇을 하고 있든, 저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볼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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