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1-7절: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해설:

드디어 때가 되었고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해 아들을 얻습니다. 저자는 1절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행하셨다는 사실을 두번 강조합니다. “돌보셨다”고 번역된 단어(‘파카드’)는 “방문하셨다”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어떤 대상에게 구체적인 행동을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저자는 또한 그들이 아들을 얻은 것이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합니다. 2절에서는 “늙은 아브라함”이라고 했고, 5절에서는 그의 나이가 백 살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6절과 7절에서는 사라의 독백을 통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고 강조합니다. 7절에 나오는 사라의 질문은 수사적 의문문입니다.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을 물리게 될 것이라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할 엄두를 내었으랴?”는 질문은 “그럴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낳은 아들을 이삭이라고 이름 짓고(3절) 여드레 만에 이삭에게 할례를 베풉니다(4절).   

묵상: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거듭 회의하고 의심했습니다. 그 약속의 실현이 늦어지자 사라는 자구책을 써서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에게 안겨 줍니다. 이스마엘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려 해도 이전 늦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라는 이미 생리가 끊겼고 아브라함은 늙어서 마른 나무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약속대로 행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회의와 의심과 불신이 하나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믿고 따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돌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분의 존재를 자주 의심하고, 그분의 뜻을 자주 무시합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판단하고,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결정합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의 뜻은 멀고 우리의 생각은 가깝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망 없어 보이고, 내 생각이 더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을 알면서도 내 뜻을 따릅니다.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끌어다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분이 정하신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의 회의와 의문과 불신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십니다. 그분은 육신 안에 사는 한 우리는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간혹 우리의 언행을 보시고 하나님이 계획을 바꾸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일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언행심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 보시지만, 그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그분의 성품을 ‘헤세드’로, 신약에서는 ‘아가페’로 표현합니다. 두 단어 모두 “한결같은 사랑”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한결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맺어주신 사랑의 언약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우리의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믿음(faithfulness, 한결같은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라면 우리의 구원은 언제든 위협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있기에 우리는 마음 든든합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21장 1-7절: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1. gachi049 Avatar
    gachi049

    창조 주이신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의심 많고 욕심 많은 피조물인 인간이 어찌 알 수 있나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옷을 입으시고 내려오셔서 몸소 피조물과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 인가는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의심 많은 인간에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18절에서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주실것을 굳게 믿고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날마다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과 사귐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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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결같은 주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가족이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을 믿습니다. 허락하신 자녀들과 손주들과 증손자가 저희들이 가정입니다.주님의 시간에 허락하신 모든자녀들이 보혈을 지나 하나님품에 안길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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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올해 어머니날 주일 예배에서 성경의 여성들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늙은 사라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는 오늘 말씀을 읽으며 믿을 수 없는 unbelievable 스토리를 타고 오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스토리는 자동차와 같이 수단이고 도구입니다. 스토리는 우리 마음을 열어줍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만듭니다. 성경에는 정말 많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메시지 성경’처럼 ‘스토리 성경’이라는 버전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을겁니다. 성경의 스토리는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스토리입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그 다음을 추측하거나 예상할 수 없을,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는 이야기를 읽는데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는 이야기가 겹쳐졌습니다. 이삭도 예수님도 ‘불가능한 임신’을 통해 태어난 아기들입니다. 성경이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의 영혼이 이 땅의 일에만 묶여 있기엔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 중에 일어난 어떤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다 보면 일(사건)이 스토리가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스토리가 됩니다. 살을 붙여 -내 감정이나 의견을 붙여- 말하지 않는데도 스토리가 됩니다. 어제 아침에 손님이 왔습니다. 가끔씩 들리는 손님입니다. 거스름돈을 내 주면서 25전 쿼터가 없어서 10전짜리 동전을 여러개 주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괜찮다면서 웃고 나갔습니다. 조금 뒤에 다시 들어옵니다. 자기 차에서 쿼터를 찾아 손바닥에 담아와 카운터에 내놓습니다. 1불 짜리로 계산을 해서 주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다음에 또 보자며 나갑니다. 스토리입니다. 대단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준 사람 (손님)의 이야기, 혹은 예기치 않은 친절을 경험한 아침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 역시 자기가 받은 친절이나, 누군가에게 행한 도움의 이야기를 꺼낼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착한 심성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할 수도 있고,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데 절대 안 도와주는 ‘못된’ 사람의 이야기로 튈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세계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이야기는 아주 특별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라의 이야기에서 위로 받는 독자가 많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나처럼 웃게 될 것이다 (6절).” 파워풀한 예측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믿을 수 없이 놀라운 일을 행하시어 웃음과 위로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사라의 이 말에서 힘을 얻습니다. 먹구름 짙은 마음이 상상하는 스토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담고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닌 생활일기가 스토리로 바뀌면 미소를 짓게 하고 감사하게 만듭니다. 나의 삶에도 사라에게 주신 믿을 수 없는 스토리가 씌여지기를,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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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kkim2 Avatar

    저에게 있으서 하나님의 언약은, 자녀삼아주심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진정 꼭 찝어서 자녀삼아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특별하게 선택되고 지명되고 부름을 받았지만, 한결같은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할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특별히, “왜 나에게 이런일이,” “왜 나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실까”라는 질문들을 할 때가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제가 요즘에 좋아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박우정씨가 작사/작곡하신 “나의 하나님”입니다. 가사를 음미하며 들을때, 하나님께서 진정 저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 언젠가 박우정씨가 어느 유트뷰에 나와 간증/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마음껏 무너지고,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또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오늘도 하나님을 의심하며, 세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너져 버릴찌도 모릅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무너진 저를 반드시 다시 일으켜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무너져 버리고 다시 일어나때 드는 그 힘만큼, 저의 신앙도 매일 매일 강건해지고 국건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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