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장 1-29절: 영향력 없는 믿음

해설: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머물렀던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소돔을 찾아갑니다. 18장에서는 그들을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19장에서는 “천사”(1절)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천사를 생각할 때 날개 달린 신비한 존재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보냄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해 질 무렵에 그들은 소돔 성으로 들어가다가 롯을 만납니다. “롯이 소돔 성 어귀에 앉아 있었다”는 말은 그가 소돔의 원로로서 재판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암시입니다. 롯은 그들이 특별한 존재들인 것을 알아채고 집안으로 모셔 들입니다(2-3절). 아브라함은 송아지를 잡고 많은 양의 빵을 만들어 대접한 반면, 롯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구워 대접합니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려 할 때 소돔 성의 각 마을에서 여러 남자들이 롯의 집에 몰려 옵니다(4절). 그들은 롯에게 두 손님을 자신들에게 내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상관하다”(5절)는 성행위를 의미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이방인들에게 집단적인 폭행을 가함으로서 우위를 점하려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한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가하는 성폭행은 최악의 모욕이었습니다. 여러 남성이 한 남성에게 가하는 집단 성폭행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입니다. 소돔 성 사람들은 그 정도로 심하게 부패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 사태를 맞아 롯은 아직 처녀인 두 딸을 내어 줄 테니 손님들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6-8절). 고대 사회에서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처럼 취급 되었는데, 롯도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기 앞에서 롯이 분별력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그 제안을 거부합니다(9절). 당시에 롯은 소돔 성의 원로로 대접 받고 있었는데, 막상 이해 관계가 갈리자 소돔의 주민들은 롯을 “자기도 나그네 살이를 하는 주제”라고 말합니다. 롯은 자신이 그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를 여전히 이방인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성적 쾌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모욕과 폭행을 주려는 데 있었기 때문에 롯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그러자 두 천사가 롯을 잡아 집안으로 끌어 들이고는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사태를 잠재웁니다(10-11절). 

두 천사는 롯에게, 이제 곧 재앙이 닥칠 터이니 모든 가족을 모으라고 일러 줍니다(12-13절). 롯은 두 딸과 약혼한 사위들을 찾아가 그 사실을 알립니다만, 그들은 롯의 말을 곧이듣지 않습니다(14절). 날이 밝아 올 무렵에 두 천사는 롯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하는데, 롯은 결단하지 못하고 미적거립니다. 결국 두 사람은 롯과 그 식구들의 손을 잡아 끌어내어 소돔 성 바깥 안전한 곳에 피신시킵니다(15-16절). 안전한 곳에 이르자 두 사람은 롯과 가족에게 “뒤를 돌아 보지 말고”(17절) 멀리 있는 산으로 피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롯이 가까운 동네로 피하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도시의 삶에 익숙해 있었기에 롯은 산으로 피신하기에 두려웠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롯의 간청을 받아들여 근처에 있던 작은 성으로 피하게 만듭니다(18-22절).

그들이 소알이라는 성에 안전하게 피신한 후에 소돔과 고모라에는 엄청난 재앙이 내립니다(23-25절). 롯의 아내는 천사의 말을 무시하고 그 모습을 보려고 뒤를 돌아 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립니다(26절). 다음 날,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목도합니다(27-28절). 롯과 그의 딸들이 살아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29절).  

묵상:

롯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잘못된 가치관과 그에 근거한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과 행동 방식에 깊이 스며 들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척박한 산악지대 보다는 비옥하고 번영했던 소돔을 주거지로 택합니다. 아브라함과 헤어졌을 때 그는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소돔 가까이에 이르러서 자리를”(13:12절) 잡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소돔 성으로 접근했고 결국 소돔의 주민이 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날 즈음에 그는 이미 소돔 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돔을 택하는 데서 드러난 그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은 끝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천사들을 맞아 들이고 대접하는 태도에서 롯은 아브라함과 큰 차이를 드러냅니다. 나그네를 환대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는 정성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이 몰려 와서 나그네들을 내어 놓으라고 할 때, 그는 분별없이 딸들을 내어 주겠다고 협상을 합니다. 천사들이 소돔을 떠나라고 할 때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적거립니다. 먼 산으로 피신 하라고 하자 가까운 동네로 피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의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곧이 듣지 않습니다. 그가 영적인 사람으로서 감화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무시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어기고 돌아 봄으로써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책임을 롯에게 떠안기려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죄는 각자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거룩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위기에 처하여 혼비백산, 허둥지둥 하는 것은 영적으로 허약하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살아온 모든 순간들은 가족들에게 교훈이 되고 지침이 되어 그 전통이 전승되는 법입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은 가족을 넘어 자신이 사는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롯은 그 점에서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는 소돔 성에서 신분 상승을 이루었지만 자신의 영향력으로 가족조차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다고는 할 지언정 믿음의 영향력은 없었습니다. 

두렵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며 두렵고 떨립니다. 나도 롯처럼 이 세상에서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하고 안전하게 살기만을 도모한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이 세상에 소금으로, 빛으로 살고 있는지, 반성하는 아침입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19장 1-29절: 영향력 없는 믿음”

  1. gachi049 Avatar
    gachi049

    소돔과 고모라는 성 문화가 문란하여 동성애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금지하셨던 동성애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 불로 태워버렸습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봅니다. 요즈음 성문화, 특히 동성애로 세계가 물들어가는 현실이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또다시 유황 불로 태워버릴지 걱정됩니다. 남은 여정 중에는 그리하실지모르겠으나 후세가 걱정이 됩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사랑을 전하고 썩어져 가는 사회를 정화 시키는 소금과 빛의 역활을 앞장서야 할 교단까지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결정에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마라나타! 주여! 썩어 문드러지기전에, 더 많은 죄인들이 발생하기전에 오셔서 심판의 잔을 쏟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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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kkim2 Avatar

    말로는 하나님과의 사귐과 교제가 얼마가 중요한지 어제/그제 아이들에게 설명했으나, 정작 그 아름다운 모습들을 저희 아이들은 저를 통해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이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때, 성급하고 조급해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가 하나님과 항상 교감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시고, 선한 영향력이 인위적으로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발산될수 있도록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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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젯밤에 공항에서 오늘 말씀을 읽고 롯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목사님 해설에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도 롯에 대해 짠한 마음이 한자락 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별력이 부족한 것, 그릇된 선택을 해서 큰 화를 당하는 것 다 답답하고, 특히 아브라함과 ‘비교’해 보면 롯은 믿음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아브라함이 많은지 롯이 많은지, 우리 삶에 아브라함 같이 사는 때가 많은지 롯 같이 구는 때가 많은지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섭고 또 힘이 빠지는지요.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혹은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인지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롯의 우매함, 무분별함, 어리석음 등등은 어디서 왔을까요. 롯은 데라의 아들 하란이 일찍 죽으면서 남긴 아들입니다. 롯은 할아버지 데라와 삼촌 아브라함과 나홀이 키웠습니다. 믿음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은 롯 뿐이 아니라 아브라함도 해당이 됩니다.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가 우리의 의지이고, 선택의 결과인지 요. 하나님의 예정설보다 자유의지에 더 큰 무게를 실으면서 살아왔는데 요즘엔 예측을 한다는것이 참 무익하고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 주 째 집에 고민의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먹구름이 아니라 폭풍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더 아파서 살면서 맞는 궂은 날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상황이라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정에 알래스카를 떠나 시애틀을 거쳐 새벽에 엘에이 공항에 내렸습니다. 옆을 지나는 어떤 남자가 입은 셔츠를 보고는 주여! 아멘! 했습니다. “live by faith not by sight”라고 프린트된 셔츠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7 구절입니다. 롯과 아브라함이 다른 부분은 이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걸었고, 롯은 알아야만, 보여야만 걸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쳤는데도 알래스카 앵커리지까지 가서 회의에 참석하기 참 싫었습니다. 그곳의 날씨처럼 내 마음도 그저 춥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는 것 너머에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롯도 아니고 아브라함도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에 의지해 폭풍 속으로 걸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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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마음과 혼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롯 보다도 못한 인생입니다. 가족과 친족들을 옳은길로 인도도 못하면서도 걷 모양만 허울 좋은 교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십자가의 길을 우직하게 걸으며 사랑과 기도로 복음을 전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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