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8장 1-15절: 우리 곁에 계신 하나님

해설:

중동 지방에서 “한 창 더운 대낮”(1절)은 모두가 행동을 멈추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장막에서 쉬고 있는데, 낯선 사람 셋이 홀연히 자신의 장막 앞에 서 있습니다. 저자는 “서 있었다”(2절)는 표현으로 독자에게 그들이 범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사람들에게서 뭔가 특별한 것을 감지하고 그들 앞에 절을 합니다. 한 부족의 족장으로서 이것은 이례적인 행동입니다. 그는 손님들을 초청해 들이고 빵을 굽고 송아지를 잡아 성찬을 대접합니다(3-5절). “고운 밀가루 세 스아”(6절)는 우리 식으로 하자면 12되 정도 되는 많은 양입니다. 아브라함은 물 한 그릇 대접하겠다면서 손님들을 맞아 들인 후 융숭하게 대접합니다(7-8절).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그들이 사라를 찾습니다(9절). 아브라함이, 사라가 장막 안에 있다고 답하니, 그들 중 한 사람이 내년에 사라에게서 아들을 얻게 될 거라고 예고합니다(10절). 새번역은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번역했는데, 직역하면 “그 사람이 말했다”고 해야 합니다. 세 사람 중 하나가 주님을 대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라가 장막 안에서 이 말을 듣습니다. 그의 나이 89세이고 남편의 나이는 99세입니다. 생리가 끊긴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고를 듣고 사라는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11-12절). 그 사실을 손님들이 알아 차리고는, 주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며 자신의 약속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일러 주십니다(14절). 사라가 장막 안에서 그 말을 듣고 나와서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들은 “아니다, 너는 웃었다”(15절)고 답하십니다. 

묵상: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단면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인격체로서의 인간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물과 인격체의 차이입니다. 사물은 언제나 같은 모습, 언제나 같은 반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인격체는 상황과 관계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반응합니다. 때로 울고 때로는 웃습니다. 때로 분노하고, 때로 기뻐합니다. 때로 마음을 단단히 하여 비정해지지만, 때로 마음을 누그러뜨려 자비와 관용을 베풉니다. 

하나님이 인격이시라는 말은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시고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다만, 인간은 공정하지 못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부조리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죄성으로 인해 우리의 인격에 손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은 반응과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언제나 옳습니다. 

아브라함과 세 손님 사이의 대화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그분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흔듭니다. 그분은 초월자로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손님으로 변장하고 찾아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고대 히브리인들은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나그네를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습니다”(13: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행한 것이 바로 당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5:31-46). 하나님은 모든 이들 안에 계시며, 모든 이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눅 17:21).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긍휼히 보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약속 받았을 때, 그도 역시 믿지 못하고 이스마엘이나 잘 자라게 해 달라고 응답합니다(17:17-18). 주님은 아브라함의 불신과 회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약속을 재확인 시켜 주십니다. 사라의 불신에 대해서도 주님은 동일하게 행동하십니다. 사라가 주님의 약속에 대해 실소로 응답한 것도,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 한 것도 묵인해 주십니다. 마치 빙긋이 미소를 지으시면서 “네가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는지 기다려 보아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을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대하듯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 오셔서 함께 웃고 함께 울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아파 하시며 사랑으로 감싸 주십니다(히 4:15).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라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18장 1-15절: 우리 곁에 계신 하나님”

  1.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 최고의 주권자이신 분, 영원무궁하신 분, 전지하시며 모든것을 다 아시는 분, 무소부재하신 분, 전능하신 분, 변치 않으시는 분, 정의로우신 분, 공정하신 분, 사랑이신 분, 진실하신 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피조물인 인간이 어찌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수 있나요? 그저 납작 엎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죄성에 물들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값으로 사셔서 구원하신 그 하나님을 아직도 믿지 않고 죄성의 굴레에서 맴돌고 있는 불쌍한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믿음의 공동체의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시고 인도하옵소서.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

  2. mkkim2 Avatar

    입술로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외치며, 그분이 원하시면 모든 일을 다 하실수 있다라고 외치며, 정작 세상적인 사고와 틀에 갖혀서 저도 그분을 믿지는 않았는지…. 상식적인 수준에서 하나님을 그곳에 갖두어 놓고 믿지는 않았는지 묵상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제가 그분을 온전히 그리고 신실하게 믿을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Like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브라함의 스토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일어나는 대목입니다. 뜨거운 한낮에 자기 장막 앞에 앉아 있는 노인 아브라함을 머리 속에 그려봅니다. 덥고 조용하고 졸리고 무료한 날로 생각됩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보자마자 아브라함은 일어나 절을 하고 엎드립니다. 자기 장막에서 쉬고 기운을 차려 길을 가시라고 권합니다. 대접을 잘 하고자 마음을 씁니다. 세 손님은 내년 이맘 때에 아들이 태어날거라는 예고를 해주려고 온 사람들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이야기는 마치 아브라함이 알고 그랬던 것처럼 읽힙니다. 나그네들에게 너무나 극진히 대하기 때문입니다. 손님/나그네/타인에게 잘 대해주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의 스토리로 읽기 쉽습니다. 실제로 히브리서도 나그네를 대접한 것이 천사들을 대접한 일이 되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떠올리고 선대한다는데 좀 이상한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을 잘 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나그네에게 극진하게 대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하는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평범한 어느 날 약속하신 복을 ‘배달’하는 천사들. 평생을 소원하고 기다렸지만 설마! 하며 웃어 넘기는 우리들. 아브라함의 환대가 아들을 가져온 것이라면 천사들은 흥부전의 제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환대는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이고, 천사들의 방문은 우리가 믿음으로 상상하는 하나님의 신실함입니다. 오늘이 그날일까요. 하나님의 성실하심, 신실하심, 열심을 보는 날이 오늘일까요. 특별한 약속도, 스케쥴도 없는 날. 앉아있다 눈 떠보니 손님이 와 계신 그런 날.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정겹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우리는 압니다. 선진국이 되는 것보다 선진국으로 사는 것이 더 중하고 어려운 일이란 것을.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지 않을까 걱정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셔도 내가 잘 감당하지 못할까봐 그게 걱정입니다. 오늘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속사람이 조금 더 자라는 날이…

    Like

  4. Islamic Country, Wi-Fi 연결이 힘든곳에서 오늘의 말씀을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수십년동안 저희들의 첮째 기도제목이 자녀들이 주님의 품에 다시 돌아 오는것입니다. 믿음의 친구들이 언젠가는 돌아 올것이라는 위로도 이제는 별로 감사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아마도 옳바른 손님을 잘 대접못했기 때문입니다. 꿈에라도 자녀들이 돌아올것이라고 알려주시면 비웃지않고 감사히 믿겠습니다. 진정히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아멘.

    Liked by 1 person

Leave a reply to young mae kim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