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보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

해설:

가나안에 정착한 후 십 년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3절). 사래는 자신에게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몸종 하갈을 대리모로 삼아 남편에게 아들을 안겨 주기로 계획합니다(1-2절). 하갈은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얻은 종이었을 것입니다. 사래로서는 대단한 희생을 각오한 결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래의 이 결정을 불신앙의 행위로 함부로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래로서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래는 하갈에게 자신과 동등한 지위를 허락합니다. 개역개정에 “첩”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새번역처럼 “아내”로 번역해야 옳습니다. 사래는 하갈을 단순히 씨받이로 사용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사래의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를 봅니다. 얼마 후, 사래의 기대대로 하갈이 임신을 합니다(4절). 

아이가 들어선 후, 하갈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몸종으로 살던 사람이 주인의 아내가 되고 게다가 아이까지 임신하게 되었으니,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래는 통큰 결단으로 하갈에게 아내의 지위를 주고 뒤로 물러났지만, 임신한 하갈의 입지가 점점 확장 되자 마음이 차가워집니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고, 사래는 아브람에게 그 문제를 해결 하도록 요청합니다(5절). 자신은 아내의 자리를 양보했어도 아브람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 주었어야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사래에게 알아서 처리하도록 허락했고, 사래는 하갈을 드러내 놓고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그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하갈은 집을 뛰쳐 나갑니다(6절).

헤브론에서 이집트로 가는 길 중간에서 하갈은 멈춥니다. 그곳은 사막이었습니다. 정처 없이 사래의 집을 나왔지만 하갈은 미혼모의 신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는 사막 중간에 있는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는 “어찌할까?” 생각하며 머물러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방문합니다(7절). 천사는 하갈에게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8절)고 물으십니다. 하갈은 “나의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하여 나오는 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아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사는 하갈에게, 주인의 집으로 돌아가 참고 살라고 하시면서(9절), 그의 자손이 크게 불어날 것이고 강인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약속 하십니다(10-12절). 천사는,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가 섬기는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그분을 “보시는 하나님”(13절)이라고 부릅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지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났던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14절)라고 짓습니다. “나를 보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그 만남 이후에 하갈은 사래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간 하갈의 태도는 과거와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의 뒷배임을 알기에 웬만한 일은 견디고 참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래는 하갈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을 것입니다. 더 이상 주인을 깔보지도 않고 함부로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겸손히 고개 숙여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낳고 천사가 말한 대로 이스마엘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아브람의 나이 86세 때의 일입니다(15-16절).

묵상: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의 집에서 주인이 드리는 예배를 자주 보았을 것입니다. 다신교인 이집트의 종교적 전통에 따라 하갈은 주인이 섬기는 하나님이 자신과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믿어 왔던 자신의 신을 따로 섬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몸종으로 살아야 했던 하갈로서는 사래의 제안을 받고 무척 기뻤을 것입니다. 사래와 동등한 아내가 되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면 자신도 그 땅에 정착하고 번성할 수 있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젊고 아브람은 늙었지만, 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을 낳는다면 인생 역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의 바램대로 얼마 후에 그의 태중에 아기가 생겼습니다. 하갈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을 것입니다. 커져가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그 자신도 모르게 언행을 달라지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사래로부터 혹독한 학대를 받아야 했고, 결국 견딜 수 없어서 가출을 결행합니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막다른 골목, 인생의 바닥에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자신과는 상관 없다고 여겼던 아브람과 사래의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하나님이 자신의 고통을 보셨고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미래를 책임 지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 만남은 하갈의 인생 궤도를 바꾸어 놓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보고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주인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물도 보시고 우리의 고민도 보시고 우리의 죄악도 보십니다. 또한 우리의 하나님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찬양도 들으십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하는 모든 말도 들으십니다. 그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Comments

4 responses to “창세기 16장: 보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

  1. gachi049 Avatar
    gachi049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들으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지금까지 함께하시고 인도하신 나의 주인되신 하나님 아버지!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 감사, 합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남은 여정 가운데에서도 성령님께서 함께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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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브람에게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사래와 하갈 사이에 이미 다툼이 일어납니다. 좋은 일을 앞두고도 마음이 아프고 깨지는 일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들 사이에도 불화는 일어납니다. 잘잘못을 가리는 일이 상처를 더 깊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브람과 사래, 하갈이 그룹 테라피를 받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이 가정의 불행의 ‘원인’은 사래의 불임일테고, 세 사람 사이의 불화의 원인 역시 사래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래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온 것만 봐도 사래는 불쌍합니다. 그렇지만 하갈보다 더 안됐다고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사래는 남편의 사랑과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큰 부자입니다. 몸종을 통해 아들을 얻는 옵션을 생각해내고 실행했다는 것은 그녀가 강자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하갈은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주인의 눈치를 보며 마님의 심기에 따라 그날 그날 삽니다. 그러던 중에 인생이 바뀌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제는 하루 하루 사는게 아니라 계획을 갖게 되었습니다. 태중의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자기의 필요가 달라지고, 그 필요에 따라 요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어떤 호강을 하게 될 지 상상만해도 미소가 떠오릅니다. 16장의 제목을 쉬운성경은 ‘하갈과 이스마엘’이라고 붙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하갈’이라고 다시 붙이고 싶습니다. 하갈에게 찾아온 천사와 하갈의 대화는 감동적입니다. 그룹 테라피가 아니라 일대일의 카운슬링이고, 깊고 내밀한 대화입니다. 하갈은 사래에게 돌아가라는 명령도 듣습니다. 당연합니다. 가서 아기를 낳아 사래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하면서 잘 길러야 합니다. 하갈은 이제 한 여성이 아니라 엄마로 살아야 합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여호와를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메세지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씁니다. “Yes! He saw me; and then I saw him!” 너무나 멋진 고백입니다. 그렇지만 이 고백이 고통에 대한 백신은 아닌가 봅니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 하갈은 또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처럼 사람들과 불화하는 일이 계속됩니다. 그래도 오늘의 아픔은 오늘로 충분합니다. 사래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듣게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피해서 도망 나왔는데 다시 그곳으로 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아픔은 늘 우리와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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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kkim2 Avatar

    항상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들립니다. 동행한다는 사실, 절대로 잊지 않기를 원하며, 제 뜻데로 하나님을 너무 앞으로, 혹은 저만치 뒤로 보내버리는 하루가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현재의 하나님,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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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네잎 크로바의 그림을 보고도 십자가로 생각하며 경계하는 므슬림 여인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다시금 십자가 밖에서는 평화가 없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 은혜를 허락하신 사랑에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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