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0장: 역사 속의 인간

해설:

창세기 저자는 노아 시대로부터 바벨탑 시대까지의 장구한 세월의 이야기를 족보로 대신합니다. 족보는 축약된 역사입니다. 이 족보는 무엇보다도 노아와 그 가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선언 즉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9:1)는 말씀이 실현 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국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은 많은 자손을 얻고 각각 다른 지역으로 뻗어 나갑니다. 야벳은 지중해 북쪽과 서쪽으로 퍼져나가 여러 민족을 이룹니다(2-5절). 그러니까 유럽 백인들이 야벳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함의 자손은 팔레스타인과 아프리카 북쪽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퍼져 나가 여러 민족을 이룹니다(6-20절). 

이 족보를 소개하면서 니므롯(8-12절)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큰 아픔을 주었던 바벨론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그가 “세상에 처음 나타난 장사”(8절)였고, “주님께서 보시기에도 힘이 센 사냥꾼”(9절)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하여 저자는, 인간의 탁월한 힘이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셈의 자손들은 주로 팔레스타인과 시나이 반도에 퍼져가면서 여러 민족으로 갈라졌습니다(21-31절). 다음 장에서 보듯, 아브라함은 바로 셈의 후손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묵상:

이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이름과 여러 민족들을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이름 한 자 올라 있지만 그들 각자는 그 나름 대로 한 세상을 살다 간 사람들입니다. 그들 각자의 삶을 들여다 본다면 수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민족들 중에 대다수가 이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 민족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은 나름대로 역사를 만들고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살다가 갔고, 그 민족들 또한 그렇게 한 시대를 살다가 사라졌습니다. 수천 년 후에 그들의 낯선 이름을 읽고 있는 우리 또한 그렇게 한 시대를 살다가 갈 것입니다. 그리고 몇 십년이 지나면 우리의 이름조차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겸허히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존재는 한 점도 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영원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존재는 차마 “있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존재가 무엇이라도 된 양, 뭐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들레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우리의 본분을 지키고 분수를 따라 겸손히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고 덧없는 존재인 나를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관심하시고 기억하시고 돌보십니다. 정말, 생각할 수록 믿어지지 않는 진실입니다. 자연인으로서 나는 아무 값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관심하시는 대상이기에 무한한 값을 가집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감사, 감격 하는 것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창세기 10장: 역사 속의 인간”

  1. gachi049 Avatar

    나약한 인간들이 아무리 힘이 장사고 억만 장자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 점으로 보이는 존재들로 수많은 인종으로 태어 났지만 역사속에서 언젠가는 사라져 후세들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특히 인간의 촌수가 사라지는 개인 주의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겸손하게 하나님 만 의지하고 그분이 주신 은총가운데 성령님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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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간의 수명이 100년이라고 치고 인류의 역사를 억만년이라고 치더라도 억만년을 무한으로 나누면 제로가되는것이 수학입니다. 피조물인 인류와 하나님을 비교하는것은 어리석은 수작이고 오직 주님께 영광과 감사하는것이 마땅한 본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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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하루가 쌓여 일년이 되고 일년이 쌓여 십년, 이십년…칠십년, 팔십년…을 삽니다. 지금 선진국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은 기대수명이 140년이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노아의 자손들이 번성해서 여러 지역으로 뻗어 나갑니다. 아담을 묵상하면서 전인류의 조상이요 지구 상의 첫 사람이라기 보다 창조주, 자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본 최초의 ‘인간’이라고 설정해 보았습니다. 아담이 낳은 자손들이 노아 때에 와서 홍수 사건을 겪으며 한 번 정리가 됩니다. 방주 안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아들들은 홍수 뒤에 여러 자녀를 낳아 (10:1) 포스트 플러드 세대를 엽니다. 노아를 기점으로 세대교체는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인간의 역사는 계속 되고, 역사의 중심에는 세대교체라는 엔진이 있습니다. 한 개인의 삶에 하루 하루 일어나는 일들이 쌓여서 그의 개인사가 되듯, 세대가 겪어가는 일들이 쌓여 역사가 되고 시대가 됩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 어떤 일이 미미하고 중요한지를 정하는 기준은 늘 권력이었습니다. 믿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세상 권력에 저항하는 일입니다. 게티 뮤지엄에서 최근에 받은 훈련과정 중에 뮤지엄의 역할과 의무가 있었습니다. 뮤지엄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매우 높습니다. 대학이나 정부기관, 사회 단체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대중은 뮤지엄이 정하는 보관과 기록의 기준을 신뢰하고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뮤지엄의 유명 작품에 훼손을 가하는 시위단체 행동이 뉴스에 올라옵니다. 대중의 무지를 깨우려는 시도이기도 하고, 뮤지엄의 권력에 대한 프로테스트이기도 합니다. 방법은 싫은데 이유는 이해가 됩니다. 전쟁의 승자가 패전국의 문화 유산물을 빼앗아 갑니다. 그것을 자기 나라 것으로 전시합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작품들이 권력 중심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구매되고 전시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종종 잊고 삽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흐르는 권력의 전류를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뜻은 이런 것을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방문 학생들에게 ‘신경을 쓴다’는 것은 목소리 큰 학생,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하는 학생에게만 신경을 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줍어하고 쭈삣 거리는 학생, 혹은 딴 곳을 보고 설명에 귀기울이지 않는 학생, 되레 진행을 방해하는 학생에게도 마음을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어렵습니다. 진지하게 배우려는 학생들만 데리고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방해하는 학생은 열심인 학생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 미울 때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 “한 몸으로 지어진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창세기를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입니다. 소극적이거나 못 따라오는 학생, 관심을 갖고 잘 보는 학생, 딴 데 보고 딴 생각하는 학생…다 한 그룹으로 묶여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 권력에 저항하는 일은 포기하지 않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루 하루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한걸음씩 걷는 것이 권력을 지켜보는 일입니다. 나는 역사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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