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장 12-13절: 일인칭의 믿음

해설:

마가복음의 첨가자는 누가복음 24장 13-35절의 내용을 두 절로 요약합니다. 누가는, 두 제자가 실망한 채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첨가자는 예수님이 “다른 모습으로”(12절) 나타나셨다고 표현합니다. 부활 후의 예수님의 몸은 인간의 경험적 언어로 묘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상당히 자세하게 이 이야기를 묘사하면서 두 제자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첨가자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렸으나 그들이 여전히 “믿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완고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묵상:

첨가자가, 제자들이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 까닭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첨가한 사람은 초대 교회의 지도자로서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그는 사람들로부터 완고한 불신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 어떤 논리로도, 그 어떤 간증으로 불신의 마음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은 일인칭이다”라는 사실을 뼈져리게 경험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고 들은 것으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첨가자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완고한 불신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록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랬다면 보통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첨가자는 그 기록을 읽는 독자들이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갈망하게 되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나에게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야기가 있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삼인칭 믿음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만났습니다”라는 일인칭의 고백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입 다물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길에서 주님을 만난 두 제자처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알리고 싶은 열정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마음을 열고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문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우리의 마음이 굳어 있어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때로는 미풍으로, 때로는 돌풍으로, 때로는 속삭이는 음성으로, 때로는 사자후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6장 12-13절: 일인칭의 믿음”

  1. gachi049 Avatar
    gachi049

    예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께서 내마음에 계심을 믿습니다. 한번은 아침에 혼자 걷고 있는데 앞에서 흑인과 마주쳤습니다. 가게를 운영할때 그들은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그것을 빼앗으면 폭행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흑인을 증오했습니다. 그런데 내마음속에서 “그도 내 백성이다” 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 알겠습니다. 라고 답하고 그들에 대한 증오심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분명히 성령님의 음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성령을 통해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파하는 일응 멈추지 않고 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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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의 제자 도마와 같은 믿음으로 23년전까지 살아 왔습니다.새로 주님께 인도한 초신자 부부와 성경 공부를 하는데 요한복음에서 주님의 부활에 대해 공부룰하는데 솔직하게 주님의 부활을 믿기어렵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새신자 자매가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전지전능 하시다고 가르쳤지않아요?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시지 않겠어요?” 라는 반문으로 부활신앙을 갖게되었습니다. 제가 전도한 새신자부부가 아니라 주닝이 저의 반신 반의하는 부활의 믿음을 위해 엠마오로가는 부부를 저에게 보내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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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신앙의 성장에는 사람의 성장 과정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아이에서 성인이 되기 까지 긴 세월이 걸립니다. 아이지만 속이 어른 같은 아이도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 아이 때 하는 말과 행동은 성인이 되면 달라집니다. 부모를 대하는 태도 또한 아이였을 때와 성인일 때가 다릅니다. 부모의 입장에선 품 안의 자식일 때가 그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부모의 바램은 자녀가 독립적인 인격으로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녀가 이제 ‘다 컸다’고 느낄 때는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느낄 때입니다. ‘자기 혼자 큰 줄 알던’ 자녀가 부모의 수고를 헤아릴 줄 알 때, 자기를 위해 부모가 최선을 다해 애썼다는 것을 알 때, 자기가 부모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할 줄 알 때 부모는 자녀가 이제 아이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오늘 해설에 맞추면, 부모의 입장을 일인칭으로 생각할 줄 아는 때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신앙의 여정에서 주님의 시선과 마음에 나를 맞추려고 애쓰기 시작하면 아이의 시절을 지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팬데믹으로 중단한 합창 모임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합창단은 1년 전부터 다시 모였지만 가게 스케쥴도 그렇고 또 자동차도 한 대로 줄여서 남편과 같이 쓰기 때문에 연습에 갈 차편이 없어서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할 수 있게 되니 얼마나 기쁘던지요. 원래 합창단이나 성가대에 서 본 일이 많지 않지만 합창하는 기쁨의 특별함을 알고 있습니다. 합창할 때 내가 ‘있는 듯 없는 듯’ 해지는 상태가 참 좋습니다. 화장을 참 잘 했다고 할 때 ‘한듯 안한듯’이라는 말을 합니다. 합창할 때 큰 소리로 열심히 부르지만 서로 음색이 블렌딩이 되고 파트 간의 조화와 특징이 잘 살아나서 어우러진 둥근 소리가 날 때 얼마나 좋은지요. 잘 어우러진 소리가 울림이 큽니다.주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일도 조화와 질서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작업일 것입니다. 신앙에 소리가 있다면 그 소리 또한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야 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소리를 낼 줄도 알고, 죽일 줄도 알아야 만들어집니다. 합창하는 시간이 내겐 묵상하는 시간과 닮았습니다. 가슴을 열어야 발성이 되고 소리가 나는 원리 또한 신앙의 원칙을 닮았습니다. 뮤지엄에서 작품을 볼 때도 성서의 텍스트를 대하는 것과 같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합창을 할 때도 주님의 지휘를 따르는 것 처럼 느끼곤 합니다. 며칠 째 부활을 불신하는 제자들에 대해 읽고 있습니다. 듣는 것으로는 믿지 못하는 제자들입니다. 아이 때 우리도 그랬습니다. ‘말 잘 듣는’ 아이라고 해도 하루 아침에 어른이 되는 아이는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다는 것, 그분을 만난다는 것은 내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장과 성숙의 변화는 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바라고 원할지라도 주님의 지휘를 따라야 하는 일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믿음 없는 나를 불쌍하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잘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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