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12-21절: 그래도 용서 받을 죄는 없다

해설:

무교절 첫 날(12절) 즉 오늘로 하면 목요일은 유월절 식사를 위해 양을 잡는 날입니다. 유월절 시작하는 시간(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을 일몰 이후로 잡습니다)에 각 가정에서는 가장의 주도 하에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면서 식사를 나눕니다. 조상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먹었던 음식을 먹으면서 조상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찬양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유월절 식사를 어디에서 준비하면 좋겠느냐고 여쭙니다(12절). 예수님은 두 제자를 예루살렘 성 안으로 보내어 미리 준비해 둔 장소를 찾아가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게 하십니다(13-16절). 저녁이 되어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유월절 식사를 나누십니다(17절).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 중 하나가 당신을 넘겨 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18절).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두려워서 “나는 아니지요?”(19절)라고 여쭙니다. 예수님은 직답을 피하시고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18절) 혹은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20절)이 그럴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시편을 잘 아는 사람은 이 말씀이 시편 41장 9절에 대한 암시임을 알 것입니다. 당신이 배반 당하는 것은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간다”(21절)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당신을 배반하는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악한 선택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 사용되었다고 해도 그 악행이 용서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묵상:

향유 옥합을 깬 여인과 가룟 유다의 행동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에게서 받은 은혜와 사랑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가룟 유다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은전 몇 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발휘했던 이적의 능력으로 로마군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도록 몰아 세우려고 대제사장들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위기를 만나면 당신의 정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은 순순히 체포 당하시고 무력하게 고난 당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십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사명을 이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셨지만, 그가 선택한 죄악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 있어 공헌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사랑의 행위로 공헌했고, 다른 한 사람은 죄악을 선택함으로 공헌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택한 선과 악을 통해 당신의 그림을 만들어 가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선택으로 하나님의 뜻에 기여하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오직 그분께 대한 사랑을 따르는 것이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4장 12-21절: 그래도 용서 받을 죄는 없다”

  1. gachi049 Avatar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신말씀 감사합니다. 사탄의 꾀임에 빠져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유다 처럼 “그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라는 저주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옥합을 깬 여인 처럼 “그는 내게 아름다운일을 했다”라고 칭찬 받는 모든 믿음의 공동체가될 수 있도록도와주시고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그 행위가 죄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영원한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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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난날 주님을 인정하지 않거나 부인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것을 고백합니다. 다시는 그런 죄를 짖지 않기를 원 합니다. 주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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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근심하면서 한 사람씩 묻습니다. “설마 제가 그 사람입니까?” 이 장면이 마음에 걸립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모른다는 뜻일까요. 제 정신을 못 차리고 배반하게 될 수도 있을까봐 근심하는 걸까요. 누구라도 배반할것 같다는 위기감이 제자들 사이에 돌고 있었다는 걸까요. 예수님이 가롯 유다라고 지명해 답하지 않으신 것은 유다의 계획을 중간에 끊지 않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유다가 배반하지 않았더라도 제사장 그룹은 예수님을 빌라도 앞에 세웠을 것입니다. 아무도 배반하지 않았더라도 ‘다행히’ 사형을 면하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라는 가정을 하면서 생각을 계속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이미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루셨습니다.유다 (배반자)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 (구원자)가 죽어야 우리에게 좋을 것이라는 말씀과 극명한 대조가 되기도 합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하나인 것처럼 보입니다. 배반과 순종도 하나로 보입니다. 내 작은 경험의 세계 안에서도 이것인줄 알았는데 저것인 경우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판단이 오늘의 판단과 일치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나를 기준으로 삼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내가 나를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뜻도 됩니다. 그러니 지식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으며, 믿음이 있으면 그 또한 얼마나 되겠습니까. 주님의 은총 덕분에 삽니다. 주님이 이끄시니 살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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