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 25-26절: 용서에 대하여

해설:

기도에 대해 말이 나온 김에 예수님은 용서의 문제를 다룹니다. “서서 기도할 때”(25절)는 유대인들의 독특한 기도 방식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일어서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르며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이라는 말은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 하는 중에 그런 문제가 생각 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불화 중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은 기도하기에 앞서서 자신이 마음에 분노나 앙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요구하신다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씀에서 예수님은 예배 드리기 전에 불화 중에 있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마 5:23-26). 기도 중에 우리는 하나님께 범한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 앞서서 자신이 용서해야 할 사람이 없는지를 찾아 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이 생각 나면 “용서하여라”고 명령하십니다. 큰 상처를 받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용서는 명령한다고 해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하는 용서는 효력이 없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따라서 “용서하여라”는 명령은 우리의 한계를 무시하시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용서하고 싶지만 할 수 없어 끙끙대는 우리의 심정을 잘 아십니다. 따라서 “용서하여라”는 명령은 용서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심으로 용서하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도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가 조건적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는 무조건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한 잘못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면서 정작 자신은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거나 망각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26절은 “만일 너희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개역개정 성경도, 새번역 성경도 (26절 없음)이라고 표시해 놓았습니다. 성경 본문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 26절은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묵상: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존재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외딴 섬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상처를 안고 사는 존재들이 서로 어울려 살다 보니,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뜻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는다는 뜻입니다. 상처 입을 각오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상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성채를 짓고 그 안에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킵니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닫습니다.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사과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인생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입니다. 사과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아를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과도, 용서도 누가 시키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아가 연약한 사람에게는 사과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상처는 커져 가고 분노는 더욱 강해집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어느 한편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관계를 고칠 수 있는 열쇠는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자아를 잠시 내려 놓고 피해 입은 사람에게 찾아가 진실하게 사과를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죽여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보고 싶어하는 일입니다. 만일 피해를 입힌 사람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피해를 입은 사람 편에서 용서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도 자아를 포기하는 일이어서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불타고 있는 분노의 불을 진화시키는 일입니다. 용서는 용서 받는 상대를 위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1장 25-26절: 용서에 대하여”

  1.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내가 알기전에 날 먼저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구원의 하나님의 발 자취를 걷기를 원 합니다만 쉽지가 않습니다. 악한 영이
    섭섭한 마음으로 화를 내게 합니다. 누명과 배반과 수모와 고초를 심하게
    당 하시고 처참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항상 기억하고 사랑하고 용서
    하고 화목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시기와 질투가 만연한 세상에서
    오직 주님의 은혜안에서 살아가는 사귐의 소리 가족들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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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모욕과 매맞음과 십자가상에서 모든 피와 물을 쏟으시고 자신에게 악행을 행한자들을 위해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눅 23:34)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기를 원하오니 성령님! 오늘도 나는 죽고 예수만 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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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주님 앞에서 기도하는 일과 내게 잘못한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이 같이 가는 일이라는 부분을 좀 더 묵상합니다. 기도는 지극히 인간적인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도를 합니다.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종교가 없어도 기도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다를지라도 우리는 기도하며 삽니다. 신자는 기도가 좀 더 생활화된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방식 같은 것도 있고, 기도할 때 쓰는 언어도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청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큰 복이고 선물입니다. 나는 기도할 때 ‘너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는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어머니께 청하듯 청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남을 용서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한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고도 하십니다. 나(우리)의 문제는, 나는 언제라도 용서 받고 싶지만 남을 용서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Just Do It!’ 나이키 문구가 통하지 않습니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아이는 어려우면 안해도 되지만 어른은 어려워도 해야 한다는겁니다. 하기 싫어도 하는 사람은 어른이고, 안 하고 말면 아이입니다. 타인을 용서하는 일 앞에서는 아이가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른으로 대하십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용서하는 일은 한 번에 다 마치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를 용서하기로 했다고 해서 미운 마음이 말끔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처의 기억이 지운듯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올리는 기도는 용서하려고 애쓰겠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지 않겠습니다, 받은 아픔이 잊혀질 때가 올 줄로 믿습니다…라는 기도일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내가 받은 용서가 크게 다가오고 주님의 은혜가 미움을 덮습니다. 용서 받았기에 용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랑 받았기에 사랑할 수 있다는 진실을 확인합니다. 기도의 복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나의 기도를 받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게 하소서. 용서하고 용서 받으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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