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0장 15-33절: 손을 입에 대고

해설:

아굴의 잠언 후반부에는 독특한 형식의 격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새번역에는 “……하는 것이 셋, ……하는 것이 넷이 있으니”라고 번역했는데, 개역개정처럼 “……하는 것이 서넛이 있으니”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굴은 다섯 가지 영역에서 네 가지의 예들을 열거합니다. 

첫째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 네 가지를 말합니다(15-16절). 스올은 바닥이 없는 깊은 구멍을 뜻합니다. 불임의 태는 아무리 많은 씨앗을 쏟아 부어도 생명을 낳지 못합니다. 메마른 땅은 한 없이 물을 흡수해 들이고, 불은 먼지 한 터럭 남기지 않고 모두 태워 버립니다. 이 네 가지를 통해 아굴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둘째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네 가지를 말합니다(18-20절).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간 자취, 뱀이 바위 위로 지나간 자취, 바다 위로 배가 지나간 자취, 남녀가 동침한 자취가 그것입니다. 아굴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합니다. 음행을 한 흔적입니다. 이 예들을 통해 아굴은 죄를 감추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셋째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 네 가지를 말합니다(21-23절). 노예가 왕위를 찬탈하는 것, 어리석은 사람에게 상을 내리는 것, 자신의 치부를 속이고 결혼하는 것, 여종이 안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백성은 고통 당합니다. 

넷째는 작지만 지혜로운 것 네 가지를 말합니다(24-28절). 개미와 오소리와 메뚜기와 도마뱀이 그것입니다. 다섯째로 아굴은 크고 힘 있는 것 네 가지를 말합니다(29-31절). 사자, 사냥개, 숫염소, 강한 임금이 그것입니다. 작은 것들은 그것들 대로 강점이 있고, 큰 것들은 그것들 대로 강점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 사이에 형식이 다른 두 가지의 말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를 조롱하거나 멸시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이고(17절), 다른 하나는 교만에 대한 경고입니다(32-33절).

묵상:

아굴은 세상사와 인생사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생애를 바친 사람입니다. 하지만 평생을 연구한 결과 그가 얻은 결론은 하나님의 비밀은 너무도 깊고 오묘하여 자신의 머리로 모두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깨우쳤다 싶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세상사와 인간사가 너무도 복잡하여 자신의 머리로는 다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저는 지쳤습니다”(1절)라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그는 지혜와 총명에 있어서 당대 최고라 할 만한 사람이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우둔한 짐승”(2절)이라고 고백했습니다.

15절부터 31절까지 나오는 다섯 종류의 잠언들은 세상사와 인간사의 신비에 대한 아굴의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존재의 신비를 풀기 위해 관찰하고 연구하고 분석했을 것입니다. 그런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노력으로 인해 그는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지만, 그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만물의 신비 중 지극히 작은 조각일 뿐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신비를 풀려는 노력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그것을 대면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우쭐대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손으로 입을 막고 존재의 신비 앞에 겸손히 서기로 한 것입니다(32절).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 설명한 끝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롬 11:33) 진실을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면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그분 앞에 입을 다물고 ”주님,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 뿐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30장 15-33절: 손을 입에 대고”

  1. 지금까지 주님께 “주십시오 주십시오” 하며 간구의 기도만 해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간청의 기도만 했습니다. 말씀 듣는 기도를 하는 결단을
    합니다만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서 솔직하고 깊고 귀한
    사귐의 기도를 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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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작가는 30장 후반부에서 자신이 깨달은 것과 모르는 것 -이해하지 못할 기이한 것-을 말합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어리석다고 꾸짖는 일에는 여성이 중심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여기서 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도 여전히 여성 때문에 망치는 일, 여성이 하면 안되는 일,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일…등을 굳이 구분해 표현하는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어제는 가게에서 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 패싸움이 날 뻔 했습니다. 가게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어서 학교가 끝나면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여학생 셋이 먼저 와 있는데 남학생 두 명에 여학생 예닐곱 명이 우루루 뒤따라 들어왔습니다. 손바닥만한 가게가 꽉 찼습니다. 뒤에 온 학생들은 사지 않고 금새 다시 우루루 가게를 나가더니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 중 여학생 하나가 다시 들어와 먼저 앉아 있던 세 명의 여학생들 앞에 서서 큰 목소리로 따지기 시작합니다. 아까 학교에서 니가 나를 째려봤지, 너 나 알어, 왜 기분 나쁘게 굴어…분위기가 나빠집니다. 다른 학생들도 가게 문 손잡이를 잡고 언제라도 들어올 태세입니다. 아기들을 데리고 들어온 다른 손님들도 있는데 이래선 안되겠다 싶습니다. 큰소리 내지 말라고, 여기 아기들도 있는데 너네 그렇게 다투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따지자고 그랬겠지만) 다들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가더니 이번엔 가게 바로 앞에서 출입문을 막아선 채 말싸움을 계속 합니다. 몰 경비원을 불러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몸싸움으로 번지지는 않고 조금 뒤에 흩어졌습니다. 이를 보는 동안 내 머리엔 ‘여자애들이 왜 이리 사나울까’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그냥 학생들이라 하지 않고 굳이 여학생들이라고 씁니다. ‘이해하지 못할 기이한 일’ 중에는 이처럼 뿌리 깊은 편견도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끝부분에는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위풍당당하게 걷는 것으로 사자와 수탉 숫염소를 꼽습니다. 나는 ‘여학생’이라고, 아굴은 ‘수탉, 숫염소’라고 씁니다. ‘사실대로’ 표현하느라 여학생이라고 썼지만 내 눈에는 여학생들 패싸움인 것이 더 크게 보인겁니다. 부정적인 일에는 더욱 그렇고, 긍정적인 일 앞에서도 편견의 무게에 눌려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아보면 부족하고 어수룩한 일 투성입니다. 잘해야지 결심하고도 야무지지 못합니다. 주님, 겸손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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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창조주가 만드신 피조물의 비밀을 어찌 알아낼 수 있나요? 유한한 인간의 두뇌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비밀을 안다는 것은 교만하기가 이를데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말씀을 온전히 믿고 따지지 않는 겸손한 피조물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영혼을 만져주시고 인도하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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