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0장: 절제의 미덕

해설:

이 장에서 강조되는 미덕 중 하나는 ‘절제’입니다. 절제력을 잃고 술을 탐하면 낭패를 당합니다(1절). 인간 관계에서 분노의 감정을 절제하지 않으면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됩니다(3절). 일에 중독되는 것도 나쁘지만 게으름도 피할 일입니다. 자는 것, 쉬는 것, 노는 것에는 언제나 절제가 필요합니다(4절, 13절). 분노의 감정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감정을 제어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바로잡으심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원한을 갚으려 합니다(22절).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지나치면 자아 도취에 빠지고 헛된 자의식에 사로잡힙니다(6-9절). 

언어 생활에 있어서도 절제는 중요합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언을 하게 되고 험담을 즐기게 됩니다(15절, 19절).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지나치면 불의하고 부정한 수단에 손을 댑니다(10절, 23절). 심지어 서원하는 일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마음 가는 대로 서원해 놓았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빠집니다(25절).  

왕에 대한 금언도 자주 나옵니다. 불의에 대한 “왕의 노여움은 사자의 부르짖음”(2절)과 같아야 합니다. 왕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진 것은 불의를 억압하고 정의를 세우라는 뜻입니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악을 가려내는 통찰력과 분별력입니다(8절). 어리석은 왕은 악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함께 악을 도모합니다. 반면, 지혜로운 왕은 악인들을 가려내어 엄하게 응징합니다(26절). 왕이 도모할 것은 오직 인자와 진리와 정의입니다. 그럴 때 그의 왕권은 든든히 서 있을 것입니다(28절). “상처가 나도록 때려야 악이 없어진다. 매는 사람의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30절)는 말은 악을 뿌리 뽑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뜻이며, 따라서 왕은 악한 사람들을 엄중하게 심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묵상:

우리의 본성은 죄에 물들어 있어서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먹다 보면 점점 더 많이 먹게 되고 몸은 망가집니다. 놀고 싶은 대로 놀다 보면 더 놀고 싶어집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한 없이 뒹굴고 싶어집니다. 고급 진 물건을 구입하다 보면 더 고급 진 물건을 찾게 됩니다. 진한 쾌락을 맛보고 나면 더 진한 쾌락을 즐기고 싶어집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함부로 내뱉다 보면 “입을 벌리고 다니는”(19절) 사람이 되어 버리고, 생각 없이 뱉은 말로 인해 어려움을 당합니다. 입에 욕설을 올리다 보면 어느 새 욕설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성령의 열매 중 하나가 절제입니다(갈 5:23). 절제의 미덕은 죄 된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합니다. 절제는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와 금욕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금욕은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고, 절제는 욕망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식욕, 성취욕, 명예욕, 성욕 등의 욕망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선물입니다. 욕망이 사라지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욕망은 부정이 대상이 아니라 향유의 대상입니다. 다만 우리의 욕망이 죄성에 의해 지배 당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죄 된 욕망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20장: 절제의 미덕”

  1. 인류에게 욕망을 허락하신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감사와
    절제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삶을 원합니다. 헛되고 순간적이고 세속적인
    쾌락에 집착하지 않는 분별력을 원합니다. 오직 주야로 말씀 묵상과
    순종이 세상이 줄수없는 기쁨 이라는것을 깨닫고 사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때에 따라 열매를 맺는 시냇가의 나무같은 사귐의 소리 가족들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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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인간이 각종 욕망을 향유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신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다면 로버트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욕망 중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 하기 때문에 절제하지 못하여 지울 수 없는 죄로 인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고통과 수고가 따르지 않으면 살 수 없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욕망을 절제하지 않으면 욕망(사탄)의 올가미에 걸려 옴짝 달싹 못하게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 죄성 때문에 주신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오니 성령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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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절제라는 말을 들으면 중용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학교 다닐 때 유교적 가치를 듣고 배웠기때문일 것입니다. ‘중용의 도’를 지킨다, 혹은 ‘중용의 덕’을 추구한다는 말을 흔하게 들었는데 이는 극단적인 것을 피하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알맞은’ 상태를 취한다는 뜻입니다. ‘중용’을 분석하면 중이란 양극의 합일점이고, 용은 상용성을 뜻한다는 설명도 있고,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이요 바뀌지 않는 것을 용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중과 용 즉 알맞음과 꾸준함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the doctrine of the mean 이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덕은 결핍과 과잉을 피해 균형을 잡아야 세울 수 있는 것이니 “middle way” 를 선택하는 것이 바른 습관이고 태도라고 보았습니다. 동서고금 가릴 것 없이 이처럼 절제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길들이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잠언서의 말씀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우리 마음이 한 편으로 쏠려야 한다면, 치우쳐야 한다면 하나님을 향해야 마땅하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길 만을 선택하라고 권합니다. 사람이나 세평, 상황에 맞추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잠언에서 어리석다고 하는 방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중심을 못 잡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먹음직해 보이는 것에 확확 쏠립니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하는 말이 달라도 아무렇지 않게 여깁니다. “일확천금은 결과적으로 복이 되지 아니한다 (21절)”고 경고해도 돈벼락을 맞아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쉽게들 합니다.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는 일보다 극단으로 치우칠수록 멋있고 똑똑하고 근사하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습니다. 창작과 예술의 세계에서 통하는 ‘파격’을 소화하려면 몇 십배, 몇 백배의 내공이 필요한데도 성찰 없이, 돌봄 없이 열매 만을 찾습니다. 절제를 묵상하며 비워냄을 연습합니다. 건강한 새 잎을 내려면 잎새를 다 떨구고 빈 모습으로 지내는 겨울이 필요하다는 지혜를 나무에게서 배웁니다. 채움과 덜어냄의 순환이 절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진실을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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