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9장: 깨어진 세상에서 의롭게 살기

해설:

이 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부와 가난입니다. 사람이 구할 것은 물질적인 부가 아니라 흠 없이 사는 것입니다(1절, 22절).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직하고 의롭게 사는 것보다 부하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부해지면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관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4절). 게다가, 부하면서도 인색하지 않아서 베풀기에 너그러우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꼬입니다(6절). 가난하면 친척도 싫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7절). 

가난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게으름입니다(15절). 게으름이 지나치면 가난이 도둑처럼 찾아옵니다(24절). 하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도 가난을 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 정의가 무너져 있으면 개인이 아무리 근면하게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악한 사람들이 부자가 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쌓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가난해지더라도 의롭게 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입니다(1절, 22절).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주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며 주님께서 그 선행을 넉넉하게 갚아 주십니다(17절). 또한 경건한 사람들은 주님의 경외하기에 물질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습니다(23절). 그래서 “사람에게서 바랄 것은 성실이다”(22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묵상:

정의로운 사회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부한 사람이 존중 받습니다. 그만큼 성실하게 살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경제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부한 사람은 의심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 사회에서 정도 이상의 부를 모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의와 편법과 부정을 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부는 대물림 되고, 부자는 더욱 쉽게 자신의 부를 불려 나갑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 해집니다. 그 상황이 심해지면 봉기가 일어나고, 혁명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의롭고 거룩하게 사는 것을 목표 삼습니다. 불의하게 부를 쌓느니 가난하게 되기를 선택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경제 정의가 왜곡될 수록 더 어려운 과제가 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의롭게 살면 가난해지고 세상은 그런 사람을 조롱하고 경멸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73편은 경제 정의가 왜곡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신앙인의 고민과 갈등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귀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경제 정의는 점점 심하게 왜곡되고 있습니다. 고위 행정직에 지명되어 청문회장에 서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력을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흔한 일이 되었는지를 알고 놀랍니다. 부정과 편법과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로 취급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는 각자 거룩하고 의롭게 살기를 힘쓰면서 우리 사회의 경제 정의가 바로잡힐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불의와 부정에 손 대지 않고 살아도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 세상이 되도록 그리고 거룩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존중 받는 세상이 되도록!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19장: 깨어진 세상에서 의롭게 살기”

  1.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심해저 갑니다. 가난한 자들을 게으르다고 멸시하고,
    부유한자들은 다 도둑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어렵지만 올바르게 사는 믿음을 원합니다. 하늘의 지혜로 세상의 물질주의 풍조
    를 헤쳐가며 사는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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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가난하여 어려운 시절은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일해야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가족은 서로 끈끈한 정과 사랑으로 뭉쳐 있었지요. 그러나 육신이 늙고 자녀가 떠나고 부부만이 살며서 생계 걱정이 없어지니 식사도 각자가 해결하려고 하니 점점사이가 멀어져가는 느낌 마져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현상은 어찌보면 좋은 점도 있지만 부부가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한달에 한번쯤이야 괜찮겠지요. 그러나 회수가 많으면 사탄이 그틈새를 파고들어 밖으로 눈을 돌릴 기회를 만들어 부부간의 사랑이 식어갈 수 있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주님! 이러한 부정과 부패의 온상, 사랑이 식어가는 세상에서 믿음과 가정을 지키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 뿐임을 믿사오니 성령님께서 마음에 왕으로 오셔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치하시므로 나는 죽고 예수로만 사는 삶이 되도록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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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착하게 사는’ 사람은 법을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며 주변과 화목하고 조화를 이루는 데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손익을 따질 줄 몰라서가 아니라 좋은 관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선한 결정을 하고도 불이익을 입을 수 있습니다. 심각한 손해나 불편이 아닌 경우엔 그럴 수도 있다, 늘 좋기만 할 수 있겠나, 하며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그런 일이 쌓이면 조금씩 방어적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손해를 본 뒤에 더욱 적극적으로 바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가 겪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이나 관행을 고치는 일에 뛰어듭니다. 행동하는 시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됩니다. 사회 정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시위에 앞장을 서지 않아도 (그렇게 못해도) 자기 삶의 바운더리 안에서 정의를 염두에 두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일상만 보고 사는 것 같아도 타인의 상황도 보고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역지사지 할 줄 아는 사람, 내 형편이 중요하듯 남의 사정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에게는 ‘야망’을 가지라고, 큰 꿈을 꾸라고 하면서 정작 어른이 되면 정의, 공정, 평화, 배려, 이런 말들은 뜬구름 같으며 이론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어른이 되면서 도리어 사고의 폭이 좁아지고 상상의 크기가 졸아드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찬은 ‘착하게 사는’ 것을 ‘믿음으로 사는’ 것으로 업그레이드한 사람입니다. 믿음을 고집이나 독선, 자기 확신이나 원칙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에게서 본 것을 행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구합니다. 도와주세요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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