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7장: 외로움의 질병

해설:

이 장에도 여러 가지 주제의 격언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자주 반복되는 주제는 가정에 대한 격언입니다. 가정은 고난을 함께 나누는 운명 공동체입니다(17절). 가정에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가족 간의 화목입니다(1절).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패가망신의 원인이 됩니다(19절).  당시 문화권에서 종은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 받았지만, 지혜로운 종은 가족의 한 사람으로 존중 받습니다(2절). 여러 세대가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6절). 하지만 가족의 구성원 중 일부가 어리석으면 가족 모두의 근심이 됩니다(21절, 25절). 악으로 선을 갚는 것은 집안에 재앙을 불러 들이는 일이 됩니다(13절). 

우정은 “사랑이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17절). 친구 사이의 사랑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 줍니다(9절). 친구 사이의 싸움은 일어나기 전에 그만 두는 것이 좋습니다(14절). 친구 사이에 서약을 하거나 빚 보증을 서는 것은 서로를 원수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18절). 친구 사이에는 서약이 필요 없고, 우정은 도움이 필요할 때 그냥 주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오래 두고 생각해 봄 직한 경구들이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5절)이라는 말씀은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금언입니다. “뇌물을 쓰는 사람의 눈에는 뇌물이 요술방망이처럼 보인다”(8절)는 말씀은 경고성 금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23절에서는 뇌물을 받는 것에 대해 경고합니다. “어리석은 일을 하는 미련한 사람”(12절)처럼 위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의 눈은 지혜를 가까이에서 찾지만, 미련한 사람은 눈을 땅 끝에 둔다”(24절)는 말씀은 지혜의 핵심을 찌릅니다. 

묵상: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살아간다는 말은 곧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조건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16)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하나님 없이는 참된 사랑은 없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는 육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살을 가진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몸으로 사랑하고 사랑 받기를 갈망합니다. 그것은 ‘살 없는 사랑’을 향한 갈망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기에 살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찾습니다. ‘살을 가진 사랑’은 불완전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그 사랑이 필요합니다. 불완전하나마 그런 사랑을 나누며 완전한 사랑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을 가진 사랑’을 보장해 주는 것이 가정이고 친구입니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랑 안에서 자랍니다. 가정 바깥에서는 친구를 만나 사랑의 관계를 확장합니다. 사랑의 네트워크가 촘촘하고 든든할 수록 우리의 인생은 안전하고 풍요롭습니다. 화목한 가정과 든든한 우정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꾸어 나아가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정을 황폐하게 만들고 우정을 증발시키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사회적 불안정이 심해지니 비혼주의가 늘어나고 저출생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친구 간의 우정은 보기 드문 현상이 되었습니다. 모든 관계를 이익의 관점에서 맺기 때문입니다. “혼밥”, “혼술”이 멋이 되었고, “혼생”이 가장 행복한 선택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무인도 안에 가두는 일입니다. 사랑 받고 사랑할 대상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질병은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17장: 외로움의 질병”

  1. 오직 십자가 은혜 안에서만 하나님과 가족들과 친족들과 화목할수
    있는것을 고백 합니다. 심지어는 원수까지 사랑하며 화목 하라는
    주님의 분부를 지키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성 소수자 문제로 사회와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께서 피로사신 교회가 갈라지지 않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도록 기도 또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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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아낌 없이 가족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하였슴을 회개합니다. 이제라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전할 수 있도록 주님의 마음을 닮기를 원하고 기도하오니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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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우리가 살면서 이런 저런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몸에 피가 돌면서 심장을 뛰게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관계망, 소셜 네트워크, 줄서기, 연결고리…등은 살면서 맺는 ‘인연’을 설명합니다. 건강한 신체가 혈관이 튼튼하고 깨끗해서 혈액의 공급과 순환이 원활하게 일어나는 데 달린 것처럼 우리가 맺은 인연을 유지하는 사회적인 순환도 막힌 데 없이 진행이 되어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몸과 원만한 관계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가 늘 일어납니다. 몸에 이상이 생겼다 자연히 없어지기도 하고, 좀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안다고한들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세술이나 인간관계 비법 책들대로 풀린다면 다툼이나 싸움은 확 줄어들겠지요. 잠언서대로 살아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내 마음의 완고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바이어스 bias, 편향, 편견 같은 주관적인 판단이 켜켜이 쌓이면 완고함이 됩니다. 이런 완고함이 관계가 원만하게 흐르는 것을 막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완고함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착각도 합니다. 내 경험과 거기에서 얻은 교훈이 다인줄 압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믿습니다. 원칙과 습관은 참 좋은 것이지만 수시로 성찰하고 점검하지 않으면 이보다 더 무서운 독재자가 없습니다. 10절 말씀이 나의 완고함을 지적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한 마디 책망에 깨우치나, 어리석은 자는 매를 백 대 맞아도 알지 못한다.” 한 마디 책망에 깨우치는 사람은 자기의 집을 허물줄 아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노력이 성공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자신을 바꾸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일을 하는게 인생인지 모릅니다. 죽을 때까지 배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고 싶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한 마디 책망에 깨우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독선과 안일의 완고함을 회개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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